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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퇴계(退溪) (04) - 퇴계의 학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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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4-21 21:44 조회1,6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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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퇴계(退溪) (04) - 퇴계의 학문2





■ 디지털한국학



3. 학문 (계속)





임진왜란 후 ●이황의 문집은 일본으로 반출되어 도쿠가와가 집정(執政)한 에도(江戶)시대에 그의 저술 11종 46권 45책이 일본각판으로 복간되어 일본 근세유학의 개조(開祖) ★후지와라(藤原惺窩)이래로 이 나라 유학사상의 주류인 기몬학파 및 구마모토학파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고, ●이황은 이 두 학파로부터 대대세세(代代世世)로 신명(神明)처럼 존숭을 받아왔다.





기몬학파의 창시자 ★야마사키(山崎暗齋)는 그를 “주자의 직제자(直弟子)와 다름 없다.” 하고 ‘조선의 일인(一人)’이라 평가하였고, 그의 고제(高弟) ★사토(佐藤直方)는 “그의 학식이 이룬 바는 크게 월등하여 원명제유(元明諸儒)의 유(類)가 아니다.”라고 찬양하였다.





★이나바(稻葉默齋)는 ‘주자의 도통(道統)’·‘주자 이래의 일인(一人)’이라 하여 존신(尊信)하였으며, 구마모토 학파의 시조 ★오쓰카(大塚退野)는 “만약에 이 사람이 없었다면 주자의 미의(微意)는 불명하여 속학(俗學)이 되어버렸을 것이라 생각된다.”고 하였고,

도쿠가와 말기의 ★요코이(橫井小楠)는 그를 원·명시대를 통하여 ‘고금절무(古今絶無)의 진유(眞儒)’라 절찬하였고,

역시 이 계통에 속하는 막부(幕府)말 메이지(明治)시대의 ★구스모토(楠本碩水)는 “명대의 대유(大儒) 설경헌(薛敬軒)·호경재(胡敬齋)와 명말 청초의 육가서(陸稼書)·장양원(張楊園)과 비교하면 훨씬 탁월하다.”라고 단언하였다.





★마쓰다(松田甲)의 《일선사화 日鮮史話》에 의하면, 여코이의 친구이자 제자였던 메이지제일의 공신이며 교육칙어(敎育勅語)의 기초자인 ★모토다(元田東野)는 “정주(程朱)의 학은 조선의 이퇴계(李退溪)에게 전하여졌고,

★타이야(退野) 선생이 그 소찬(所撰)의 《주자서절요》를 읽고 초연히 얻은 바 있었으니, 내 지금 타이야의 학을 전하여 이것을 금상황제(今上皇帝)에게 봉헌하였다.”라고 술회하였다 한다.





뿐만 아니라, 1926년 중국의 북경(北京) 상덕여자대학(尙德女子大學)에서 대학의 증축·확장기금에 충당하기 위하여 《성학십도》를 목판으로 복각(復刻)하여 병풍을 만들어서 널리 반포(頒布)하였을 때, 중국 개화기의 대표적인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는 찬시(贊詩)를 써 그 제1연에서 “아득하셔라 이부자(李夫子) 님이시여”라고 그를 거리낌 없이 성인이라 호칭하였다.





일본유학에의 영향을 제외하면 다음과 같은 ★조호익의 말은 ●이황의 학적 지위를 간결히 표현한 매우 적절한 평가라 볼 수 있다.

즉, “주자가 작고한 뒤……도(道)의 정맥은 이미 중국에서 두절되어버렸다. 퇴계는……한결같이 성인의 학으로 나아가 순수하고 올바르게 주자의 도를 전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비교할만한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이만한 인물을 볼 수 없다. 실로 주자 이후의 제일인자이다.” 1609년 문묘(文廟)에 종사(從祀)되었고, 그뒤 그를 주사(主祀)하거나 종사하는 서원은 전국 40여개처에 이르렀으며, 그의 위패가 있는 도산서원은 8·15광복 후 제5공화국 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하여 국비보조로 크게 보수, 증축되어 우리나라 유림의 정신적 고향으로서 성역화되었다.







●이황의 학덕은 그의 생시(生時) 및 한일 양국의 역사에서 크게 선양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있어서도 국제적 규모로 널리 부흥, 재검토되고 있다.



1970년 서울에 ▲퇴계학연구원이 창립되었고, 1972년 퇴계400주기기념논문집 《퇴계학연구》가 간행되기 이전부터 발행된 계간학술지 《퇴계학보》는 1990년 3월 현재로 64집에 이르렀다.



경북대학교에 ▲퇴계연구소가 부설되었는가 하면, 서울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일본 동경에 ▲이퇴계연구회가 설립되었다. 대만에도 국립사범대학 안에 ▲퇴계학연구회가 부설되었고, 근래에는 미국의 워싱톤·뉴욕·하와이에 ▲이퇴계연구회가 조직되었으며, 서독 함부르크 및 본에 ▲퇴계학연구회가 생겼다.



1986년에는 단국대학교에서 ▲퇴계기념중앙도서관이 낙성되어 그 안에 ▲퇴계학연구소를 부설하였다.

또한, ▲국제퇴계학회가 창설되어 1976년 이래로 거의 해마다 한국·일본·대만·미국·서독·홍콩 등지에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여 세계 각국의 이 방면의 석학들이 회동하여서 주제논문을 발표하며 진지한 토론을 거듭해왔다.



특히, 1989년 10월 국제퇴계학회와 중국인민대학이 공동주최한 제11차국제학술대회가 북경에서, 그리고 1990년 8월 제12차국제학술대회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바 있다.







참고문헌



退溪全書, 陶山全書(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

日本刻版李退溪全集(退溪學硏究院, 1975)

退溪의 生涯와 學問(李相殷, 瑞文堂, 1973)

退溪의 生涯와 思想(柳正東, 博英社, 1974)

退溪哲學의 硏究(尹絲淳, 高麗大學校出版部, 1980)

退栗性理學의 比較硏究(蔡茂松, 景仁文化社, 1982)

李退溪哲學―그 深層硏究 및 理論―(全斗河, 國民大學校出版部, 1987)

退溪와 栗谷의 哲學(劉明鍾, 東亞大學校出版部, 1987)

李退溪―글글行動글思想(阿部吉雄, 評論社, 1977)

李退溪글敬글哲學(高橋進, 東京東洋書院, 1985)

退溪書節要(張立文, 中國人民大學出版社, 1989)

李退溪와 그의 學說(李丙글, 韓國學硏究叢書, 成進文化社, 1971)

退溪敎育思想의 現代的意義(丁淳睦, 새교육 23―2, 대한교육연합회, 1971)

李글―性理學의 眞髓―(朴鍾鴻, 韓國의 人間像 4, 新丘文化社, 1971)

退溪의 詩歌文學硏究―短歌의 歌辭에 대하여―(李家源, 退溪學硏究, 1972)

退溪先生과 奇高峯(李乙浩, 退溪學硏究, 1972)

退溪의 敬思想(李楠永, 韓國人의 人間觀, 한국교육개발원, 1977)

退溪哲學의 根本問題(柳承國, 退溪學報 19, 退溪學硏究院, 1978)

儒敎의 憂患意識과 退溪의 敬(安炳周, 退溪學報 25, 退溪學硏究院, 1980)

退溪先生의 人性論(裵宗鎬, 退溪學報 32, 退溪學硏究院, 1981)

陶山十二曲글(崔珍源, 陶山學報 7·8, 陶南學會, 1985)

退溪의 家庭觀(琴章泰, 退溪學硏究 1, 檀國大學校東洋學硏究所, 1987). 〈全斗河〉







▣ 솔내영환 -

▣ 김발용 -

▣ 김재익 -

▣ 김항용 -

▣ 김윤만 - 우리나라 유학자 중 성인의 칭호를 받은이가 송자 송시열 한분이신 줄 알았는데 퇴계 선생도 이부자란 성인 호칭을 받았군요. 송자는 사계문인을 중심으로 하는 기호학파(서인)에서 칭호한 것이니 만큼 그 격이 아주 다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 김은회 -

▣ 김태영 - 잘 읽었습니다.

▣ 김정중 -

▣ 김태서 -

▣ 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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