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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1321년에 진주태수를 지내신 상락공의 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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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4-24 05:41 조회1,4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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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1년에 진주태수를 지내신 상락공의 아들은?





윤만 형님의 분석대로 상락공(휘방경)의 아들중 1321년에 진주태수를 지내신 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 추론1



다만, 휘방경 할아버지 외에 상락공에 봉해진 선조님을 살펴보니

둘째 아들이신 휘흔 선조님께서 ---아버지를 이어 상락공(上洛公)에 습봉(襲封)되었다. 성품이 활달하면서도 인자하였다고 한다. ---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휘흔 할아버지 아들중 한분이 1321년에 진주태수를 지내시면서 진주 남강 돌벼랑 위에 누정(樓亭) 함벽루(涵碧樓)를 세우고 함벽(涵碧)이라 이름 지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휘흔 할아버지의 아들은 承固(승고) 한분이 있으므로

상락공이 휘흔 할아버지가 맞다면



1321년 진주태수로 있으면서 진주 남강 벼랑 위의 누정 함벽루를 세우고 함벽이라 이름지은 상락공의 아들은 휘承固(승고) 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 족보에 김흔 장군은 初名은 綬(수)라 하였고, 충렬공(김방경)의 유명에 따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萬戶 벼슬을 형(김선)의 아들인 承用에게 넘겨준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



슬하에 1남(승고), 2녀(민적, 조련)를 두었는데

1남 承固(승고)는 평리상호군 행숭복도감판관에 추봉되었고 1녀를 두었는데 의성인 金台權 (문좌사윤 瑞之의 아들)에게 출가하여 김흔장군의 世系는 끊기게 됩니다.









■ 추론2



또한 휘흔 할아버지는

---(24세) 1274년 일본원정 때는 지병마사(知兵馬事)로 참가하였고, 진주목사를 지냈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함벽루 창건기록인

---고려 충숙왕 8년(1321년)에 군수 김모가 창건했으며,--- 라는 기록이 잘못 기록되었을 수도 있으므로





진주목사를 지내신 바 있는 상락공(휘방경)의 아들은 휘흔 선조님이므로

휘흔 선조님께서 (24세) 1274년경에 진주목사를 지내시면서 함벽루를 세우고 이름을 지었다고 추론해 볼 수도 있습니다.







▣ 김윤만 - 먼저 기문을 쓰신 안진(安震)<安縝(1617-1685)이 아님>이란 분을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다음 기문에 안진은 과거보러 정사년(*1317년)가을에 중국을 갔고 5년 뒤(1321년?, 1322년?) 진주목사로 왔다했으며, "저 누(樓)가 언제 창건됐나"하니 "지금 태수가 신축한 것이다."로 보아 1274년 진주목사 흔 할아버지는 좀 무리일 듯 싶습니다."

▣ 김은회 -

▣ 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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