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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정권 (武臣政權 ) -3- 정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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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4-26 19:03 조회1,6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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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 반란의 주역 정중부

정중부 鄭仲夫 [1106~1179]



개요

고려시대의 무신.

본관 : 해주(海州)

활동분야 : 군사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본관 해주(海州). 인종 때 견룡대정(牽龍隊正)이 되고, 의종 초 교위(校尉)를 거쳐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1164년(의종 18) 왕이 무신을 차별하는 데 불만을 품고, 1170년 왕의 보현원(普縣院) 거둥 때



대장군 이소응(李紹膺)이 문신 한뇌(韓賴)에게 구타당하자 격분, 문신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어 의종을 폐하고 왕제 익양공(翼陽公) 호(晧:明宗)를 즉위시키는 한편, 의종과 태자를 유배시켰다.



이의방(李義方) ·이고(李高)와 함께 전왕의 사제(私第)를 분점(分占), 스스로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고 벽상공신(壁上功臣)에 올랐으며, 이어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문하평장사 ·서북면판사 ·



행영병마 겸 중군병마판사 등을 지냈다.



1173년 동북면 병마사간의대부(諫議大夫) 김보당(金甫當)이 의종의 복위와 무신의 집권을 타도하려고



난을 일으키자, 이를 토벌하고 의종을 살해하였다. 이듬해 서경유수 조위총(趙位寵)이 난을 일으키자



토벌, 문하시중이 되고 1175년 궤장( 杖)을 하사받은 뒤 치사(致仕)하였다.



1179년 같은 무신인 경대승(慶大升)에게 일가족이 몰살되었다.





대하드라마[무인시대]에서 정중부



-7척의 위풍당당한 체구, 우람한 용모에 특히 수염이 아름다웠다.

거만하게 비춰졌을 만큼 자존심이 강했으나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널 만큼 처신에 신중했다.



-이의방이 상장군이자 무신들의 수장격인 그에게 거사계획을 알렸을때도 선뜻 동조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처벌하지도 않고 추이를 관망했다. 오랜 친구였던 이소응이 한뢰에게 뺨을 맞고 조롱당했을 때 의종앞에 나서서 한뢰를 꾸짖는 사자후를 토해냈지만 정작 그 자리에서 이고가 거사를 벌이려고 했을때는 만류하였다. 보현원에서 참살이 벌어졌을 때 의종을 시해하려던 이고를 제지한 것도 그였으며 의종이 환궁할 때는 어가를 호위하였다.



-그가 과감하게 검을 휘두른 것은 보현원의 참변을 피해 감악산으로 도망쳤던 김돈중의 목을 베었을때였다. 선왕 인종시절 김돈중이 정중부의 자부심이었던 수염을 촛불로 태운 일이 있었다. 당장에 요절을 내고 싶었지만 김돈중은 당대의 문벌귀족 김부식의 아들이었기에 그 일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지금 꿈에도 잊지 못하던 수모를 되갚은 것이다.



-세간에서는 그를 정변을 이끈 주역으로 두려워했지만 실상 이번 정변은 이의방과 이고,채원등의 하급장교들이 주도한 것이었으며 그가 1등 공신에 오른 것은 어찌보면 무신들의 수장격인 노장에 대한 예우에 다름아닐 만큼 정중부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 역시 이의방과 이고,채원의 차후 행보를 은인자중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의방이 결의형제인 이고와 채원을 제거한 후 정국은 긴장감에 휩싸인다. 아들인 정균과 사위 송유인은 세력을 집결하여 이의방을 제거하자고 종용하지만 그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정균과 송유인을 꾸짖는다.그리고 그의 판단이 옳다는 것이 입증된다. 바로 그날 이의방이 찾아와 부자결의를 청한 것이다. 그러나 두사람 모두 허울뿐인 부자결의로 맺어진 화친은 오래가지 못할 것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관북택(정중부의 집)에서 은인자중하며 명종과 공예태후의 신임을 얻는 일에만 마음을 쓰는 듯 보였지만 실상 수족인 정균과 눈과 귀노릇을 하는 송유인을 통해 이의방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무비와 사통하고 귀법사승려들의 폭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일로 이의방에 대한 반감이 커져가고 있었다. 그는 이의방을 쳐야할 때가 가까워오고 있음을 느꼈다.



-이런 와중에 의종 복위를 내건 김보당의 난은 그를 당황케 만들었다. 우선은 이의방과 손잡고 김보당을 치는 일이 급선무로 떠오른 것이다.



-이의방이 의종시해의 뜻을 밝히자 그는 반대한다. 그러나 서슬 푸른 이의방 결단을 막을수가 없었다.아니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의종시해가 반란을 진압하는 최선책임을, 또한 명종과 공예태후의 뜻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김보당의 난 진압후 이의방의 전횡은 점차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애꿎은 문신들을 주살하고, 공예태후의 동기를 겁간하고, 자기딸을 태자비로 바치는 등..거기다 대낮에 황궁에서 형제간에 칼부림을 부렸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그는 아들 정균에게 장사들을 모으고 평소 이의방에게 반감을 지닌 승려들을 규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드디어 이의방을 제거할 때가 무르 익은 것이다.



-그러나 서경에서 일어난 조위총의 반란소식은 그를 다시한번 망설이게 만들었다. 윤인첨과 정균이 이끄는 진압군이 반란군에게 패퇴하고 전세는 팽팽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정국이었다.

-이런 와중에 이의방이 대대적인 진압군을 조직하였다. 이런 규모라면 서경의 반란군을 토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이후엔 지난번 김보당의 난때처럼 이의방의 권세는 하늘을 찌르게 될 것이다.그는 결단을 내려야 할때라고 생각했다. 지금 실기한다면 두 번 다시기회가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서경의 반란군보다 정적을 우선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정균에게 이의방을 제거하라는 밀명을 내린다.



-정균이 이의방형제들을 살해했지만 아직 이의방의 추종세력들이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이영령과 고득시등은 정중부정권에 반기를 들고 정중부 암살을 모의하다가 체포되었다. 더구나 서경반군과의 내란중에 개경권력의 핵심 이의방이 살해된 사건은 진압군내의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정중부는 이의방제거의 명분확보와 국면전환을 위해 명종에게 시해된 의종의 국상을 반포하도록 종용했다. 복상기간 사흘동안 모든 관리들이 검은 갓에 흰상복을 입도록 치러진 형식적인 국상이었지만 의종은 시해된지 1년 7개월만에 고려의 18대 왕으로써 복권된 것이었다. 의종의 국상이후 정중부 정권은 안정되어 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설상가상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 망소이형제가 주도하는 민란이 일어나 공주가 함락되었다.윤인첨과 두경승이 이끄는 정예군이 서경의 반군세력과 대치하고 있는 시점에서 민란발생은 새로 들어선 정권에 큰 부담이 되었다. 정황재가 이끄는 급조된 민란토벌군이 투입되었으나 참패하였다. 정중부정권은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시켜주겠다는 요구조건을 수용하겠다는 적극적인 회유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윤인첨과 두경승이 서경을 함락시키고 조위총을 참수시켰다는 승전보가 들렸다. 문제는 망이,망소이의 민란을 수습하는 일이었다. 개경정부내에서는 민란 진압에 대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정중부는 망이,망소이를 개경으로 불러들여 병장기를 버리고 생업으로 돌아가면 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타협을 한다. 그러나 개경정부와 민란지도자들간의 화해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민란지역에 주둔한 진압군이 토벌을 감행하고 망이의 어미와 아내를 인질로 잡아들이자 망이,망소이형제는 재봉기를 감행하였다. 개경정부는 충순현을 삭제하고 전면적인 토벌을 벌여 망이형제를 사로잡는다. 이로써 망이형제가 주도한 민중봉기는 1년 6개월만에 막을 내리게 되지만 이후 전국적으로 발발한 민란들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된다.



-서경반란과 명학소의 민란이라는 불안한 정국에서 이의방을 제거하고 출범한 정중부 정권은 고위무신들을 중심으로 하였기에 하급장교들의 거센 도전을 받게 된다.



-같은 하급장교 출신 권력자였던 이의방을 추종하였던 하급장교들은 정중부정권에 대한 불만과 적대감을 권력자들의 신변에 대한 집단폭행과 위협으로 폭발시켰다.명령체계가 생명인 군조직에서 하극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속에서 정중부는 70세가 넘은 재상은 물러나는 관례를 깨고 ‘왕이 궤장(?杖)을 주면 재상직을 물러나지 않는다’는 한나라 공광의 전례에 따라 명종을 부추켜 궤장을 받는다. 70이 되어 천하를 쥔 늙은 장군이 권력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또한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그의 아들 정균과 사위 송유인은 권력형 부정축재등으로 사리사욕을 채워나갔으며 전횡과 횡포를 부렸다. 심지어 정중부 집의 노비조차 관리들을 구타할 정도로 위세를 부렸다.



-기고만장해진 정균은 명종이 애지중지했던 수안궁주를 취하기 위해 왕실을 공공연하게 협박하였다. 명종은 전전긍긍하였으며 수안궁주는 마음속으로 연모하던 경대승에게 이런 사실을 털어놓았다.



-26세에 이미 장군의 반열에 오른 경대승은 3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궁을 수비하던 정중부의 친위군을 참살한후 정균과 송유인, 정중부등을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한다. 70을 넘긴 노장 정중부는 20대 청년장군 경대승에게 권력을 넘기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위의 글은 KBS 대하드라마 [무인시대]에서 정중부에 대해 설정한 것이니 역사상 상이한 경우도 있을 것이며, 윤색되거나, 미화된 부분도 있을 것이나, 무인시대를 감상하는 자료로서 올린 것이오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 김태서 -

▣ 김재익 -

▣ 김윤식 - 감사합니다. 무인시대 말기가 곧 다가오겠네요.

▣ 김항용 -

▣ 김태영 -

▣ 김윤만 -

▣ 김주회 -

▣ 김은회 -

▣ 김상석 - 우와!,어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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