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정권 (武臣政權 ) =5=이의민 李義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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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4-29 18:56 조회1,776회 댓글0건본문
이의민 李義旼 [?~1197]
본관 경주(慶州). 천민 출신으로 기골이 장대하여 안찰사(按察使) 김자양(金子陽)에게 발탁되어
경군(京軍)에 편입되었다. 수박(手搏)을 잘 하여 의종의 총애를 받아 별장(別將)이 되었다.
1170(의종 24) 정중부(鄭仲夫)의 난에 가담하여 공을 세워 중랑장(中郞將)이 되고 이어 장군에
승진하였다.
1173년(명종 3) 김보당(金甫當)·장순석(張純錫) 등의 의종 복위음모를 평정한 공으로 대장군이 되었다.
이듬해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평정하여 상장군에 올랐다. 1178년 경대승(慶大升)이 정중부를 죽이자
그를 두려워하여 병을 핑계로 고향 경주에 은거해 있다가 경대승이 죽은 후 공부상서(工部尙書)·
중서문하평장사를 거쳐, 1191년 병부판사(兵部判事)에 이르렀다.
참위설(讖緯說)을 믿고 역모(逆謀)할 뜻으로 명사들을 포섭하고 적도(賊徒) 김사미(金沙彌)·
효심(孝心) 등과 은밀히 결탁하였으며, 벼슬을 팔고 백성의 재물을 착취하는 등 관기를 문란하게
하다가 미타산(彌陀山) 별장에서 최충헌(崔忠獻)에게 살해되었다.
KBS, 대하드라마 [무인시대]에서 이의민
경주이씨.
-아버지는 소금행상 이선이었고 어머니는 옥령사 노비였다.
-이선은 이의민이 청의(靑衣)를 입고 황룡사9층탑에 오르는 꿈을 꾼뒤로 큰 인물이 될 것을 예견하고 삼형제중 막내였던 그를 특별히 아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꿈이야기를 듣고 자란 그는 자신이 ‘선택받은 귀인’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평생 지니고 살았다. 아무것도 꺼릴것이 없는 호방함과 두려움 모르는 용맹한 천성, 여기에 호걸의 용모와 절등한 용력등이 어울어져 사람들은 그를 감히 바로 쳐다보지 못할정도였다.
-경주사람들은 이의민삼형제가 장차 개경에 반란하는 장수들이 될 것이라고 수근거렸다.당시 삼형제는 천출이라는 이유로 그 울분을 술로 달래며 횡행하였는데 경주안렴사 김자양은 그들을 관내의 우환거리로여겨 체포하였다.가혹한 고문으로 이의민의 두 형이 죽고 그 혼자 살아남았다. 김자양의 가혹한 횡포에 경주사람들이 술렁거리자 일을 무마시키고자 김자양은 자신이 취했던 노비 최씨를 이의민에게 주어 성혼시킨다. 그런뒤 선심쓰듯 경군에 추천하여 이의민을 경주에서 축출한다. 이 일로 이의민은 개경관리들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된다.
-처 최씨와 개경에 도착한 이의민은 궁궐에서 성문까지 뻗친 사다리를 타고 궁궐로 들어가는 꿈을 꾼다.
-출중한 용력과 무예실력때문에 군중에서 그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이후 친위대에 발탁되었다.
-무신정변당시 별장으로 참여하여 부월(斧鉞-쌍도끼)로 문신들을 참살하였기에 그가 죽인 숫자가 가장 많았고 시신들 또한 참혹하였다. 그 일로 장군에 오른다.
-이의방의 명을 받고 무비를 개경으로 압송한 일로 이의방의 신임을 얻고 이고와 채원을 제거하는데 공을 세워 이의방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이 된다. 정중부가 이의방을 섯불리 칠수 없었던 것도 이의민의무력때문이었다. 이의민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경계대상이었다.
-그러한 이의민도 아내 최씨만큼은 당해내지 못했다. 최씨는 경주시절 그가 김자양에게 죽임을 당할뻔 했던일을 들먹이며 자신이 이의민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임을 자처하며 패악을 부려댔기 때문이었다.
-김보당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 비승비속의 광인(狂人)이 이의민의 앞을 막고 ‘鷄林黃龍’글귀를 던져주고 간다. 그는 문자를 몰랐기에 그 뜻을 알지는 못하였으나 글귀를 깊이 간직한다. 이것이 이의민과 두두을(豆豆乙)의 첫대면이었다.
-김보당 난의 와중에서 그는 의종을 시해하라는 이의방의 밀명을 받고 경주로 향한다. 문신들을 잡초베듯 참살했던 이의민도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각별히 총애했던 왕을 자기 손으로 살해해야 한다니?! 차라리 의종을 앞세우고 개경으로 진격하여 이의방과 정중부를 박살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불끈불끈 들었다. 그러나 아직은 이의방과 정중부의 병력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란 것을 그도 잘알고 있었다. 이의민은 경주에 입성한후 두두을을 다시 만나게 된다. 두두을은 이의민에게 신라제국를 재건하고 황제로 등극할분이라며 예를 갖춘다. 아버지가 꾼 황룡사의 꿈, 개경에 도착하던날 성벽에서 이어진 사다리를 타고 황궁에 들어가던 꿈..이 모두가 그가 황제가 될 것을 예언하는 선몽이었다.이의민은 용단을 내린다. 그는 곤원사에서 의종의 등뼈를 꺽어 시해한 뒤 그 시신을 연못에 던져버린다. 이 일로 이의민은 대장군이 되었지만 항상 ‘왕을 시해한 자’로 낙인찍혔다. 사람들은 이의민을 두려워했지만 등뒤에선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며 침을 뱉었다. 그는 세간의 멸시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에는 황제의 꿈이 꿈틀거리고있었다.
-의종시해를 계기로 이의민은 단지 출중한 무력을 갖춘 무장이 아니라 개경의 정치군인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김보당난의 진압으로 위상이 높아진 이의방을 견제하기 위해 정중부는 이의민에게 손을 내민다. 그러나 이의민은 두두을의 조언대로 양측 모두에게 불가근불가원의 거리를 유지한다.
-서경에서 조위총의 반란이 일어나고 윤인첨과 정균이 패퇴하자 이의민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두경승,석린등과 출전한다. 진압군의 선봉장군으로 얼굴에 반군의 화살을 맞아 광대뼈가 으스러지는 부상을 입고도 반군을 격파했다. 연주전투에서는 필마단기로 수천명의 반군
진영을 헤치고 들어가 적장의 수급을 베어 승전을 올린다. 이때부터 반군들은 이의민의 군대가 온다는 말만 들으면 겁을 먹고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연주전투를 계기로 조위총 반군의 기세는 꺽이기 시작했다. 이의민은 승승장구하였다. 이것은 그의 용맹과 더불어 참모였던 두두을이 이루어낸 합작품이었다.
-정중부가 이의방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을때 그는 조위총의 반군들과 격전중이었다. 정중부가 이의방제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위해 의종의
국상을 선포했을 때 이의민은 당장 군대를 몰아 개경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두두을의 만류로 울분을 눌러야했다. 의종이 복권되자 왕을 시해한 이의민의 정치적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믿을수 있는 측근이자 의종을 시해할 때 함께했던 박존위가 운주에서 피살당했다는 소식은 이의민을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정중부집권기동안 이의민은 떠돌이 장수가 되어 조위총의 잔당과 대적하며 양민을 약탈하여 연명하는 비참한 처지였다. 두두을은 때가 올것이라 위로하였고 이의민은 절치부심하며 후일을 기약했다.
-경대승이 정중부를 제거하였을 때 이의민에게도 서광이 비치는 듯 하였다. 그러나 경대승은 그를 ‘선왕을 시해한 대적’으로 지칭하며 이의민 처형을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거병하여 경대승과 생사를 건 항쟁뿐이었다. 그의 곁에는 끝까지 생사고락을 함께한 믿음직한 무장들과 고려의 최정예병사들, 게다가 믿음직한 장자방 두두을이 있지 않은가? 이것은 반역이였다.그러나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런 와중에 명종의 밀서가 전해진다. 개경으로 돌아와 안위를 지켜달라는 내용이었다. 의종을 시해한 이의민과 명종은 동병상련의 처지였다.
그러나 무슨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섯불리 개경으로 돌아갈수는 없었다. 경대승이 명종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허승과 김광립을 제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의민은 더욱 위기감을 느꼈다. 명종 또한 다급한 처지였다. 명종은 이의민에게 형부상서(정3품)를 제수했다. 이것은 서북면의 군진에 머물던 이의민에게 개경으로 돌아오라는 왕명을 내린 것이다. 왕명을 거역하면 반역자가 될것이고 개경으로 돌아가면 경대승의 비수가 기다릴 것이다. 이의민은 결단을 내려 개경으로 올라가기로 한다. 경대승의 얼굴에 도끼날을 박아주겠다고 호언하였지만 개경으로 향하는 이의민의 내심은 범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듯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개경에 돌아와 왕을 알현한지 열흘이 지나도록 경대승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애송이놈이 감히 날?’ 하는 심정으로 긴장이 풀어져 술잔을 기울이는데 두경승이 찾아와 경대승이 도방장사들을 동원하여 이의민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알려준다.싸울것인가 피할 것인가? 이의민은 결전을 택하지만 두두을은 한신의 고사를 인용하며 경주로 내려갈 것을 종용한다.
-드디어 경대승과 도방군사들이 이의민의 거처로 들이친다. 이의민의 무장들은 격렬한 저항 끝에 모두 참살당한다.그러나 그 무렵 이의민은 두두을과 함께 개경을 벗어나고 있었다. 경대승과 도방군사들이 이의민을 쫓아 임진나루에 이르렀을 때 이의민은 조그만 배에 몸을 의지한채 임진강을 건너고 있었다. 다른 배들은 이미 두두을이 파손시켜놓았기에 경대승은 떠나는 이의민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의민은 뿌리가 있는 경주로 내려가 신라제국의 기치를 내걸고 개경정부와 전쟁을 벌이기로 결심한다. 사리사욕과 탐욕을 절제하면서 친족들의 도움으로 경주의 지방군을 장악해나가면서 군사력을 재정비하고 경대승의 도방에 대응하여 별초(別抄)를 조직한다. 착취를 일삼는 지방관과 토착세력을 징계하면서 점차 경주지역의 민심을 얻어나간다. 경주는 이의민에게 철벽같은 성벽이자 황궁이었다.
-경대승이 급사하자 이의민은 허탈에 빠진다.
-명종은 혼란스런 정세속에서 불안을 느끼고 자신의 즉위시킨 무신들중 최후의 생존자 이의민을 개경으로 불러들인다. 명종은 이의민이 경주에서 반란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의민은 지금 거병하여 개경정부와 전쟁을 벌여야한다는 두두을의 충언을 듣지않고 개경으로 올라간다. 경주로 낙향한지 3년만이었다.
-이의민은 무주공산이었던 개경정부의 일인자로 군림한다. 천민의 자식이 고려의 최고 집권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의민은 ‘국왕 시해범’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두호해 줄 정치세력이 필요했고 의도적으로 천민출신의 무신들과 교류를 돈독히 하며 그들을 키워나갔다. 최세보, 박순필, 이영진, 석린, 조원정등이 그들이었다.
- 이어진 <의종실록> 편찬은 이의민에게나 편찬을 주도하는 문극겸에게도 골칫거리였다. 의종을 시해한 이의민이 지금 최고권력자였기 때문이다. 이의민은 천출 무신이었던 최세보를 <의종실록>의 총책임자인 동수국사에 임명되도록 하여 실록편찬을 감시토록 하였다. 실록편찬에 무신이 참여하는 사상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의민은 천출 무신들을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확보하면서 일인자의 자리를 굳혀나갔다. 명종은 이의민을 견제하기위해 두경승의 관직서열을 항상 이의민보다 윗줄에 임명했으며 드디어는 벽상공신으로 책봉한다. 당대의 일인자였던 이의민에게는 분통 터지는 일이었지만
두경승은 껄그러운 상대였다. 공명정대한 성품으로 하급장교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고 용력과 무예에 있어서도 이의민과 자웅을 겨룰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또한 두경승은 경대승의 암살계획을 통기하여 자기의 목숨을 구해준 인물이었다. 이의민은 두경승에게 큰 빚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군사를 풀어 두경승을 제거할수도 있었지만 정치적 야심이 없었던 두경승이 정적이 아니라는 것을 이의민은 잘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의민의 불편한 심기는 종종 두경승과의 개인적 주먹대결로 이어졌고 개경에 널리 회자되었다.
-이의민에게 뇌물과 청탁이 쏟아졌다. 황궁을 방불케하는 집에는 재물이 넘쳐났고 문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토지를 강탈하거나 양가처녀들을 취하여도 누구도 감히 신도재상(新道宰相)을 질책하지 못했다. (당시 이의민은 낙타교에서 저교까지 뚝을 쌓고 버들을 심은 일로 신도재상으로 불렸다) 두두을조차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있던 이의민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두두을은 통곡을 한 연후에 신라황제의 꿈을 내버린 이의민 곁을 떠난다.
천노에서 일약 최고권력자의 안주인이 된 최씨는 개경에 지맛바람을 일으켰다. 문무신료들의 처첩들의 상전으로 군림하였으며 심지어 이의민보다 최씨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출세하는 지름길이라는 소문이 있을만큼 위세가 당당했다. 이의민이 취한 처첩들을 폭행하였으며 심지어 살해하기까지 했다. 최씨는 이의민의 바람기에 종과 사통을 하는 것으로 맞서다가 결국 내쫓기고만다.
-김사미와 효심이 민란을 일으킨다. 이의민의 근거지였던 경주세력이 중심이 된 봉기였다. 이의민은 당혹스러웠으나 정권에 대한 도전은
용납할수없었다. 대장군 전존걸이 이끄는 진압군을 급파했다.
-진압군은 연전연패하였다. 진압군의 일거수일투족이 적당에게 알려지는것이다. 전존걸은 진압군 동정을 유출하여 적당과 내통한 자를 적발하였는데 범인은 놀랍게도 장군 이지순이었다. 그는 이의민의 장남이었다. 전존걸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지순을 군법으로 처형한다면 자신은 이의민 손에 죽임을 당할것이고 모른척한다면 적당에게 궤멸될 것이었다. 전존걸이 택한 것은 자결이었다.
-이지순이 민란세력과 내통한 것은 두두을때문이었다. 두두을은 이번 민란의 배후였다. 두두을은 아버지의 책사이자 자신에게 병법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이지순은 두두을의 밀서를 가지고 개경으로 돌아간다. 신라제국재건의 포부를 버리지 말라는 간절한 충언과 약조를 해준다면 해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의민은 약조하겠다는 밀서를 두두을에게 보낸다. 얼마후 새롭게 편제된 진압군이 파견되었고 민란은 진압된다.
-이의민은 벽상공신으로 책봉되어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명실상부한 일인자가 된다. 차남 이지영과 3남 이지광은 쌍도자(雙刀子)로 불릴만큼 횡포가 심하였다.특히 장군 이지영은 황궁내에서 칼부림 난동을 벌일만큼 방자하였으며 미모있는 여인은 부인,처녀를 가리지 않고 겁간하였고 심지어 명종의 애첩과도 사통하였는데도 명종은 감히 처벌치 못했을 정도였다.
-이지순은 아우들의 전횡이 화를 부를 것이라며 대의멸친하라는 충언을 올린다.이의민은 이지영,이지광을 불러들여 크게 꾸짖으며 부월로 목을 치려다가 간신히 화를 억누른다.
그날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鷄林黃龍」이란 글귀를 꺼내 보며 이의민은 감회에 젖는다.
-이의민은 명종이 보제사로 행차할 때 병을 핑계로 호종하지 않고 미타산으로 간다. 그곳에서 두두을을 만나기로 한 것이다. 이의민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그는 명종을 시해하고 고려를 멸한뒤 신라제국을 재건하고 황제에 오르기로 용단을 내린 것이다.
이의민의 부월에 목이 떨어질뻔한 이지영은 아버지의 신임을 회복할 만한 공을 세우고자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는 근자에 정변을 모의한다는 소문이 들리는 최충헌,최충수형제를 감시하던 중 최충수의 전서구(傳書鳩)를 강탈한다. 최충헌형제는 정변이 발각될 것을 우려하여
거사를 서두른다. 최충헌형제는 장수들을 모아 미타산으로 달려간다. 미타산에서 두두을을 기다리던 이의민은 최충헌의 칼에 목이 떨어진다. 천출로 태어나 왕을 시해하고 권력의 정점에 우뚝 섰던 거인의 죽음이었다. 신라제국의 황제등극을 꿈꾸던 이의민의 죽음으로 신라는 진정한 종말을 한 것이다.
▣ 김태영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주회 -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
▣ 김윤만 - 천출로서 입신출세하여 신라제국의 황제를 꿈꾼 이의민. 대단합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두두을도 흥미로운 인물이네요.
▣ 김발용 - 잘 읽었습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본관 경주(慶州). 천민 출신으로 기골이 장대하여 안찰사(按察使) 김자양(金子陽)에게 발탁되어
경군(京軍)에 편입되었다. 수박(手搏)을 잘 하여 의종의 총애를 받아 별장(別將)이 되었다.
1170(의종 24) 정중부(鄭仲夫)의 난에 가담하여 공을 세워 중랑장(中郞將)이 되고 이어 장군에
승진하였다.
1173년(명종 3) 김보당(金甫當)·장순석(張純錫) 등의 의종 복위음모를 평정한 공으로 대장군이 되었다.
이듬해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평정하여 상장군에 올랐다. 1178년 경대승(慶大升)이 정중부를 죽이자
그를 두려워하여 병을 핑계로 고향 경주에 은거해 있다가 경대승이 죽은 후 공부상서(工部尙書)·
중서문하평장사를 거쳐, 1191년 병부판사(兵部判事)에 이르렀다.
참위설(讖緯說)을 믿고 역모(逆謀)할 뜻으로 명사들을 포섭하고 적도(賊徒) 김사미(金沙彌)·
효심(孝心) 등과 은밀히 결탁하였으며, 벼슬을 팔고 백성의 재물을 착취하는 등 관기를 문란하게
하다가 미타산(彌陀山) 별장에서 최충헌(崔忠獻)에게 살해되었다.
KBS, 대하드라마 [무인시대]에서 이의민
경주이씨.
-아버지는 소금행상 이선이었고 어머니는 옥령사 노비였다.
-이선은 이의민이 청의(靑衣)를 입고 황룡사9층탑에 오르는 꿈을 꾼뒤로 큰 인물이 될 것을 예견하고 삼형제중 막내였던 그를 특별히 아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꿈이야기를 듣고 자란 그는 자신이 ‘선택받은 귀인’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평생 지니고 살았다. 아무것도 꺼릴것이 없는 호방함과 두려움 모르는 용맹한 천성, 여기에 호걸의 용모와 절등한 용력등이 어울어져 사람들은 그를 감히 바로 쳐다보지 못할정도였다.
-경주사람들은 이의민삼형제가 장차 개경에 반란하는 장수들이 될 것이라고 수근거렸다.당시 삼형제는 천출이라는 이유로 그 울분을 술로 달래며 횡행하였는데 경주안렴사 김자양은 그들을 관내의 우환거리로여겨 체포하였다.가혹한 고문으로 이의민의 두 형이 죽고 그 혼자 살아남았다. 김자양의 가혹한 횡포에 경주사람들이 술렁거리자 일을 무마시키고자 김자양은 자신이 취했던 노비 최씨를 이의민에게 주어 성혼시킨다. 그런뒤 선심쓰듯 경군에 추천하여 이의민을 경주에서 축출한다. 이 일로 이의민은 개경관리들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된다.
-처 최씨와 개경에 도착한 이의민은 궁궐에서 성문까지 뻗친 사다리를 타고 궁궐로 들어가는 꿈을 꾼다.
-출중한 용력과 무예실력때문에 군중에서 그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이후 친위대에 발탁되었다.
-무신정변당시 별장으로 참여하여 부월(斧鉞-쌍도끼)로 문신들을 참살하였기에 그가 죽인 숫자가 가장 많았고 시신들 또한 참혹하였다. 그 일로 장군에 오른다.
-이의방의 명을 받고 무비를 개경으로 압송한 일로 이의방의 신임을 얻고 이고와 채원을 제거하는데 공을 세워 이의방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이 된다. 정중부가 이의방을 섯불리 칠수 없었던 것도 이의민의무력때문이었다. 이의민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경계대상이었다.
-그러한 이의민도 아내 최씨만큼은 당해내지 못했다. 최씨는 경주시절 그가 김자양에게 죽임을 당할뻔 했던일을 들먹이며 자신이 이의민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임을 자처하며 패악을 부려댔기 때문이었다.
-김보당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 비승비속의 광인(狂人)이 이의민의 앞을 막고 ‘鷄林黃龍’글귀를 던져주고 간다. 그는 문자를 몰랐기에 그 뜻을 알지는 못하였으나 글귀를 깊이 간직한다. 이것이 이의민과 두두을(豆豆乙)의 첫대면이었다.
-김보당 난의 와중에서 그는 의종을 시해하라는 이의방의 밀명을 받고 경주로 향한다. 문신들을 잡초베듯 참살했던 이의민도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각별히 총애했던 왕을 자기 손으로 살해해야 한다니?! 차라리 의종을 앞세우고 개경으로 진격하여 이의방과 정중부를 박살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불끈불끈 들었다. 그러나 아직은 이의방과 정중부의 병력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란 것을 그도 잘알고 있었다. 이의민은 경주에 입성한후 두두을을 다시 만나게 된다. 두두을은 이의민에게 신라제국를 재건하고 황제로 등극할분이라며 예를 갖춘다. 아버지가 꾼 황룡사의 꿈, 개경에 도착하던날 성벽에서 이어진 사다리를 타고 황궁에 들어가던 꿈..이 모두가 그가 황제가 될 것을 예언하는 선몽이었다.이의민은 용단을 내린다. 그는 곤원사에서 의종의 등뼈를 꺽어 시해한 뒤 그 시신을 연못에 던져버린다. 이 일로 이의민은 대장군이 되었지만 항상 ‘왕을 시해한 자’로 낙인찍혔다. 사람들은 이의민을 두려워했지만 등뒤에선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며 침을 뱉었다. 그는 세간의 멸시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에는 황제의 꿈이 꿈틀거리고있었다.
-의종시해를 계기로 이의민은 단지 출중한 무력을 갖춘 무장이 아니라 개경의 정치군인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김보당난의 진압으로 위상이 높아진 이의방을 견제하기 위해 정중부는 이의민에게 손을 내민다. 그러나 이의민은 두두을의 조언대로 양측 모두에게 불가근불가원의 거리를 유지한다.
-서경에서 조위총의 반란이 일어나고 윤인첨과 정균이 패퇴하자 이의민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두경승,석린등과 출전한다. 진압군의 선봉장군으로 얼굴에 반군의 화살을 맞아 광대뼈가 으스러지는 부상을 입고도 반군을 격파했다. 연주전투에서는 필마단기로 수천명의 반군
진영을 헤치고 들어가 적장의 수급을 베어 승전을 올린다. 이때부터 반군들은 이의민의 군대가 온다는 말만 들으면 겁을 먹고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연주전투를 계기로 조위총 반군의 기세는 꺽이기 시작했다. 이의민은 승승장구하였다. 이것은 그의 용맹과 더불어 참모였던 두두을이 이루어낸 합작품이었다.
-정중부가 이의방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을때 그는 조위총의 반군들과 격전중이었다. 정중부가 이의방제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위해 의종의
국상을 선포했을 때 이의민은 당장 군대를 몰아 개경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두두을의 만류로 울분을 눌러야했다. 의종이 복권되자 왕을 시해한 이의민의 정치적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믿을수 있는 측근이자 의종을 시해할 때 함께했던 박존위가 운주에서 피살당했다는 소식은 이의민을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정중부집권기동안 이의민은 떠돌이 장수가 되어 조위총의 잔당과 대적하며 양민을 약탈하여 연명하는 비참한 처지였다. 두두을은 때가 올것이라 위로하였고 이의민은 절치부심하며 후일을 기약했다.
-경대승이 정중부를 제거하였을 때 이의민에게도 서광이 비치는 듯 하였다. 그러나 경대승은 그를 ‘선왕을 시해한 대적’으로 지칭하며 이의민 처형을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거병하여 경대승과 생사를 건 항쟁뿐이었다. 그의 곁에는 끝까지 생사고락을 함께한 믿음직한 무장들과 고려의 최정예병사들, 게다가 믿음직한 장자방 두두을이 있지 않은가? 이것은 반역이였다.그러나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런 와중에 명종의 밀서가 전해진다. 개경으로 돌아와 안위를 지켜달라는 내용이었다. 의종을 시해한 이의민과 명종은 동병상련의 처지였다.
그러나 무슨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섯불리 개경으로 돌아갈수는 없었다. 경대승이 명종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허승과 김광립을 제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의민은 더욱 위기감을 느꼈다. 명종 또한 다급한 처지였다. 명종은 이의민에게 형부상서(정3품)를 제수했다. 이것은 서북면의 군진에 머물던 이의민에게 개경으로 돌아오라는 왕명을 내린 것이다. 왕명을 거역하면 반역자가 될것이고 개경으로 돌아가면 경대승의 비수가 기다릴 것이다. 이의민은 결단을 내려 개경으로 올라가기로 한다. 경대승의 얼굴에 도끼날을 박아주겠다고 호언하였지만 개경으로 향하는 이의민의 내심은 범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듯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개경에 돌아와 왕을 알현한지 열흘이 지나도록 경대승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애송이놈이 감히 날?’ 하는 심정으로 긴장이 풀어져 술잔을 기울이는데 두경승이 찾아와 경대승이 도방장사들을 동원하여 이의민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알려준다.싸울것인가 피할 것인가? 이의민은 결전을 택하지만 두두을은 한신의 고사를 인용하며 경주로 내려갈 것을 종용한다.
-드디어 경대승과 도방군사들이 이의민의 거처로 들이친다. 이의민의 무장들은 격렬한 저항 끝에 모두 참살당한다.그러나 그 무렵 이의민은 두두을과 함께 개경을 벗어나고 있었다. 경대승과 도방군사들이 이의민을 쫓아 임진나루에 이르렀을 때 이의민은 조그만 배에 몸을 의지한채 임진강을 건너고 있었다. 다른 배들은 이미 두두을이 파손시켜놓았기에 경대승은 떠나는 이의민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의민은 뿌리가 있는 경주로 내려가 신라제국의 기치를 내걸고 개경정부와 전쟁을 벌이기로 결심한다. 사리사욕과 탐욕을 절제하면서 친족들의 도움으로 경주의 지방군을 장악해나가면서 군사력을 재정비하고 경대승의 도방에 대응하여 별초(別抄)를 조직한다. 착취를 일삼는 지방관과 토착세력을 징계하면서 점차 경주지역의 민심을 얻어나간다. 경주는 이의민에게 철벽같은 성벽이자 황궁이었다.
-경대승이 급사하자 이의민은 허탈에 빠진다.
-명종은 혼란스런 정세속에서 불안을 느끼고 자신의 즉위시킨 무신들중 최후의 생존자 이의민을 개경으로 불러들인다. 명종은 이의민이 경주에서 반란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의민은 지금 거병하여 개경정부와 전쟁을 벌여야한다는 두두을의 충언을 듣지않고 개경으로 올라간다. 경주로 낙향한지 3년만이었다.
-이의민은 무주공산이었던 개경정부의 일인자로 군림한다. 천민의 자식이 고려의 최고 집권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의민은 ‘국왕 시해범’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두호해 줄 정치세력이 필요했고 의도적으로 천민출신의 무신들과 교류를 돈독히 하며 그들을 키워나갔다. 최세보, 박순필, 이영진, 석린, 조원정등이 그들이었다.
- 이어진 <의종실록> 편찬은 이의민에게나 편찬을 주도하는 문극겸에게도 골칫거리였다. 의종을 시해한 이의민이 지금 최고권력자였기 때문이다. 이의민은 천출 무신이었던 최세보를 <의종실록>의 총책임자인 동수국사에 임명되도록 하여 실록편찬을 감시토록 하였다. 실록편찬에 무신이 참여하는 사상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의민은 천출 무신들을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확보하면서 일인자의 자리를 굳혀나갔다. 명종은 이의민을 견제하기위해 두경승의 관직서열을 항상 이의민보다 윗줄에 임명했으며 드디어는 벽상공신으로 책봉한다. 당대의 일인자였던 이의민에게는 분통 터지는 일이었지만
두경승은 껄그러운 상대였다. 공명정대한 성품으로 하급장교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고 용력과 무예에 있어서도 이의민과 자웅을 겨룰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또한 두경승은 경대승의 암살계획을 통기하여 자기의 목숨을 구해준 인물이었다. 이의민은 두경승에게 큰 빚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군사를 풀어 두경승을 제거할수도 있었지만 정치적 야심이 없었던 두경승이 정적이 아니라는 것을 이의민은 잘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의민의 불편한 심기는 종종 두경승과의 개인적 주먹대결로 이어졌고 개경에 널리 회자되었다.
-이의민에게 뇌물과 청탁이 쏟아졌다. 황궁을 방불케하는 집에는 재물이 넘쳐났고 문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토지를 강탈하거나 양가처녀들을 취하여도 누구도 감히 신도재상(新道宰相)을 질책하지 못했다. (당시 이의민은 낙타교에서 저교까지 뚝을 쌓고 버들을 심은 일로 신도재상으로 불렸다) 두두을조차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있던 이의민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두두을은 통곡을 한 연후에 신라황제의 꿈을 내버린 이의민 곁을 떠난다.
천노에서 일약 최고권력자의 안주인이 된 최씨는 개경에 지맛바람을 일으켰다. 문무신료들의 처첩들의 상전으로 군림하였으며 심지어 이의민보다 최씨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출세하는 지름길이라는 소문이 있을만큼 위세가 당당했다. 이의민이 취한 처첩들을 폭행하였으며 심지어 살해하기까지 했다. 최씨는 이의민의 바람기에 종과 사통을 하는 것으로 맞서다가 결국 내쫓기고만다.
-김사미와 효심이 민란을 일으킨다. 이의민의 근거지였던 경주세력이 중심이 된 봉기였다. 이의민은 당혹스러웠으나 정권에 대한 도전은
용납할수없었다. 대장군 전존걸이 이끄는 진압군을 급파했다.
-진압군은 연전연패하였다. 진압군의 일거수일투족이 적당에게 알려지는것이다. 전존걸은 진압군 동정을 유출하여 적당과 내통한 자를 적발하였는데 범인은 놀랍게도 장군 이지순이었다. 그는 이의민의 장남이었다. 전존걸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지순을 군법으로 처형한다면 자신은 이의민 손에 죽임을 당할것이고 모른척한다면 적당에게 궤멸될 것이었다. 전존걸이 택한 것은 자결이었다.
-이지순이 민란세력과 내통한 것은 두두을때문이었다. 두두을은 이번 민란의 배후였다. 두두을은 아버지의 책사이자 자신에게 병법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이지순은 두두을의 밀서를 가지고 개경으로 돌아간다. 신라제국재건의 포부를 버리지 말라는 간절한 충언과 약조를 해준다면 해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의민은 약조하겠다는 밀서를 두두을에게 보낸다. 얼마후 새롭게 편제된 진압군이 파견되었고 민란은 진압된다.
-이의민은 벽상공신으로 책봉되어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명실상부한 일인자가 된다. 차남 이지영과 3남 이지광은 쌍도자(雙刀子)로 불릴만큼 횡포가 심하였다.특히 장군 이지영은 황궁내에서 칼부림 난동을 벌일만큼 방자하였으며 미모있는 여인은 부인,처녀를 가리지 않고 겁간하였고 심지어 명종의 애첩과도 사통하였는데도 명종은 감히 처벌치 못했을 정도였다.
-이지순은 아우들의 전횡이 화를 부를 것이라며 대의멸친하라는 충언을 올린다.이의민은 이지영,이지광을 불러들여 크게 꾸짖으며 부월로 목을 치려다가 간신히 화를 억누른다.
그날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鷄林黃龍」이란 글귀를 꺼내 보며 이의민은 감회에 젖는다.
-이의민은 명종이 보제사로 행차할 때 병을 핑계로 호종하지 않고 미타산으로 간다. 그곳에서 두두을을 만나기로 한 것이다. 이의민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그는 명종을 시해하고 고려를 멸한뒤 신라제국을 재건하고 황제에 오르기로 용단을 내린 것이다.
이의민의 부월에 목이 떨어질뻔한 이지영은 아버지의 신임을 회복할 만한 공을 세우고자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는 근자에 정변을 모의한다는 소문이 들리는 최충헌,최충수형제를 감시하던 중 최충수의 전서구(傳書鳩)를 강탈한다. 최충헌형제는 정변이 발각될 것을 우려하여
거사를 서두른다. 최충헌형제는 장수들을 모아 미타산으로 달려간다. 미타산에서 두두을을 기다리던 이의민은 최충헌의 칼에 목이 떨어진다. 천출로 태어나 왕을 시해하고 권력의 정점에 우뚝 섰던 거인의 죽음이었다. 신라제국의 황제등극을 꿈꾸던 이의민의 죽음으로 신라는 진정한 종말을 한 것이다.
▣ 김태영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주회 -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
▣ 김윤만 - 천출로서 입신출세하여 신라제국의 황제를 꿈꾼 이의민. 대단합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두두을도 흥미로운 인물이네요.
▣ 김발용 - 잘 읽었습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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