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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정권 (武臣政權 )-9- 반란- 조위총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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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5-06 19:39 조회1,9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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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총의 난 趙位寵-亂

개요

1174년(명종 4)부터 1176년까지 2년 동안 평양을 중심으로 정중부(鄭仲夫) 등의



무신정권(武臣政權)에 대항해서 일어난 대병란.





병부상서 겸 서경유수(兵部尙書兼西京留守) 조위총은 1174년 9월 정중부 ·이의방(李義方)의 타도를



명분으로 서경(평양)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동계(東界:함경도)와 북계(北界:평안도)의 여러 성(城)에



격문을 보내 “개경의 중방(重旁:武臣정권의 기관)이 북쪽을 토멸하려고 발병(發兵)하였으니



병마를 규합하여 모두 서경으로 모이라”고 선동하였다. 이에 연주성(延州城:寧邊 부근)을 제외한



절령(悰嶺:황해도 북쪽 끝의 자비령) 이북의 40여 성(城)이 모두 서경에 호응하여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고려조정에서는 평장사(平章事) 윤인첨(尹鱗瞻)에게 3군을 주어 서경을 토멸토록 하였으나 정부군은



절령에서 대패하고, 서경군은 개경에 육박하였다. 이에 이의방은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서경군을 격파하고 대동강에 이르러 서경의 성 밖에서 진을 쳤으나,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그 해 11월 윤인첨 ·두경승 등은 재차 왕명을 받아 대군을 이끌고 우회하여 연주(漣州:平南 价川)의



여러 진(鎭)을 차례로 평정하고 다음해 6월에 이르러 서경을 포위, 고립시켜 지구전을 폈다.



외부 세력과의 연락이 두절된 조위총은 금(金)나라에 절령 이북 40여 성을 바친다는 조건으로



구원병을 청하였으나, 금나라에서는 이를 듣지 않았다.



이로부터 거의 1년 동안 공방전을 벌이다가 1176년 6월에 이르러서야 정부군의 총공격으로



서경은 함락되고 조위총은 사로잡혀 목베임으로써 만 22개월을 끌던 조위총의 병란은 평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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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총 趙位寵 [?~1176]



개요

고려시대의 반란자.

활동분야 : 정치, 군사







병부상서(兵部尙書)로 서경유수(西京留守)를 겸하고 있을 때 1170년(의종 24) 정중부(鄭仲夫) ·



이의방(李義方) 등이 정변을 일으키자 1174년(명종 4) 서북의 여러 성에 격문을 보내 절령(悰嶺)



이북 40여 성의 호응을 얻어 난을 일으켰다. 이에 중앙에서 평장사(平章事) 윤인첨(尹鱗瞻)이 3군을



이끌고 진격해 오자 이를 절령에서 물리치고, 선두에서 추격하여 개경(開京) 근교에 이르렀으나,



이의방군의 반격을 받아 후퇴하여 서경(西京)에 진을 치고 방어에 진력하였다.



그 해 11월 중앙군의 총공세로 이듬해 연주성(漣州城)이 함락되고, 이어 여러 성이 중앙군에



항복하여 위기에 처하자, 금나라에 사신을 보내 절령 이북 땅을 바친다는 조건으로 원병을



요청했으나 실패하여, 1176년(명종 6) 서경이 함락된 뒤 처형되었다.





















▣ 김태서 - k방송국 드라마와 연관시켜 읽으니 머리에 쏙쏙들어 오네요.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 김태영 -

▣ 김윤식 - 요즘 계속 무인시대를 못 봤는데 대부님 올려 주시는 글로 아쉬움을 많이 달래고 있습니다.

▣ 김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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