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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답사자료4 --- 해남윤씨 녹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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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5-07 17:22 조회1,4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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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사적 167호

명 칭 ■ 해남윤씨녹우단 (海南尹氏綠雨壇)

분 류 사묘,제단

면 적 14,268㎡

지정일 1968.12.19

소재지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82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 사유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으로 윤선도의 4대 조부인 효정(1476∼1543)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집터 뒤로는 덕음산을 두고, 앞에는 벼루봉과 그 오른쪽에 필봉이 자리잡고 있는 명당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인데, 앞면에 사랑채가 있고 서남쪽 담모퉁이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사랑채는 효종이 윤선도에게 내려준 경기도 수원에 있던 집을 현종 9년(1668)에 이곳에 옮긴 것이다. 사랑채 뒤 동쪽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ㄷ’자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당은 안채 뒤 동쪽 담장 안에 한 채가 있고 담장 밖에 고산사당과 어초은사당 등이 있다.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단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500여 년 된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우거져 있다. 이곳에는 윤두서자화상(국보 제240호), 『산중신곡집』(보물 제482호), 『어부사시사집』 등의 지정문화재와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녹우단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문화재명 해남윤씨녹우단(海南尹氏綠雨壇)



해남 윤(尹)씨 녹우단은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의 고택이며 현재 사당 및 어초은사당(漁樵隱祠堂)고택이 모두 잘 남아 있고 여기에는 가전고화첩(家傳古畵帖) 및 윤고산 수적(手蹟), 관계문서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보관되어 있다.



고산 윤선도는 선조(宣祖) 20년(1587)에 출생하여 헌종 12년(1617)에 죽었으며 조선왕조 중기의 시조 작가로서 이름이 높았다. 또한 경사백가(經史百家) 에 통달하였고 의약, 음양지리에도 정통한 학자였다. 사화(士禍)에 의해 유배 당하기도 하였으나 효종과 인평대군(麟坪大君)의 사전(師傳)이 되기도 하였으며 사후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



주택은 서향하여 대문은 남쪽에 남향하고 있다. 안채는 세칸의 대청과 그 북단에 서향하는 두칸의 마루방이 있고 마루방 서쪽에 작은 온돌방이 두칸 계속되어 안방이 되고 그 끝에 큰 부엌이 연결된다. 대청의 남단에는 한칸의 웃방이 있어 서절(西折)하여 작은 부엌 그리고 두칸의 건너방이 연결되고 그 끝은 개조된 창고가 있으나 원래는 마루가 놓인 광 인듯하다. 사랑채는 안채 앞에 있으며 역시 서향하여 남단에 두칸의 대청 그 옆에 두칸의 온돌방이 계속되고 이 온돌방 옆에 서쪽으로 돌출한 작은 온돌방이 있어 그 옆에 다시 한칸의 대청이 있고 이들 앞에는 마루가 달렸고 돌출한 온돌방 뒤에 아궁이가 있다. 사랑채 서쪽에는 작은 못이 있고 그 앞에는 개조된 창고가 있고 그 남쪽 끝에 온돌방 두 개와 부엌이 있어 하인들의 거처였던 것 같다.



이 집 부지(敷地)는 매우 넓고 안채 뒤쪽에 큰 대밭이 계속되고 부지 동남 귀쪽에 안 사당 즉 선조의 신위를 봉사(奉祀)한 사당이 있으며 외장(外牆) 바깥에 고산사당과 중조(中祖)인 윤효정(尹孝貞)의 사당인 어초은사당은 역시 담장을 돌렸으나 한칸 문에 정측면(正側面)이 단칸으로 된 건물이다. 이밖에 동북쪽에 떨어져 어초은의 제실인 추원당(追遠堂)이 있고 북쪽에 좀 멀리 떨어져 호산제실인 녹우당(綠雨堂)이 있다.



이 유구(遺構)는 근세의 선비 주택 시설을 고루 잘 갖추었고 호산을 비롯한 고인들의 문적(文籍) 문서 및 고화(古畵) 등을 고루 갖추어 근세의 주택사 뿐만 아니라 사회사, 미술사, 문학사 등에 관한 여러 자료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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