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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잡록 - 김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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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3-05-10 06:21 조회1,5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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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동(金壽童)

본관은 안동(安東)이요, 자는 미수(眉叟)인데 방경(方慶)의 계손이다. 성종 때 문과에 올랐으며, 성품이 단정하고 무게가 있으며 온화하고 고아하였다.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참여하였으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 영의정김수동은 단정하고 무게가 있으며 지혜가 많았다. 유생(儒生) 때부터 정승이 되기까지 사람들이 그를 시비하지 못하였다. 연산(燕山)이 흉악 잔인한 짓을 하던 때에도 때를 따라 융통성 있게 일을 처리하여 임금에 대해서는 죄를 짓지 아니하고, 아래로는 사람들을 살렸으므로 많이 그에게 힘입어 사대부들이 보전하였다. 의거(義擧)하던 날, 성희안(成希顔)이 그 집으로 가서 알리니, 함부로 굽혀 따르지도 않고 조급히 굴지도 아니하고 조용히 살피고 헤아린 뒤에 행동하므로 사림(士林)들이 모두 그의 도량을 탄복하였다. 《음애잡기(陰崖雜記)》

* 좌의정김수동 등이 육조참판 이상의 관리들을 거느리고 왕에게 아뢰기를, “의거 때에 먼저 신수근(愼守勤)을 죽인 것은 큰일을 성공하려고 하여서였습니다. 지금 수근의 딸이 대궐에 들어와 임금을 모시고 있어 인심이 위태롭고 두려워하니, 청컨대, 은정(恩情)을 끊고 내어보내소서.” 하니, 임금이 전교하기를, “아뢴 바는 심히 당연하나, 조강(糟糠)의 처(妻)를 어찌 하리오.” 하였다. 다시 아뢰기를, “신들도 이미 짐작한 바이오나 종사(宗社)의 큰일을 어찌 하겠습니까? 쾌히 결단하여 미루지 마시옵소서.” 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종묘사직이 지극히 중하니 어찌 사사로운 정을 헤아리겠는가. 마땅히 중의를 좇을 것이오.” 하였다. 그 날 밤으로 곧 신씨는 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의 집으로 나가 머물게 하였다. 《동각잡기(東閣雜記)》

* 연산을 폐할 때에 정승성희안(成希顔)이 우상김수동의 집으로 가서 알리니 우상이 말하기를, “이러한 나라의 큰일을 나는 처음에 그 전말을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재상의 말을 따라 뛰어갈 수가 있겠는가.” 하고는, 곧 베개에 누우면서, “그대는 내 목을 잘라 가라.” 하였다. 성공(成公)이 대군(大君)을 세운다는 뜻을 아뢰니, 우상이, “그렇다면 내가 가야겠다.” 하였다. <언행록(言行錄)〉

에서 옮김. <해동잡록>




▣ 김윤만 - 잘 보았습니다.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
▣ 김주회 - 태영 종친님의 계속되는 찾기 힘들고 무게있는 자료 연재!!! 감사하고 공부 많이 많이 하고 있습니다.
▣ 김재원 -
▣ 김은회 -
▣ 김윤식 -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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