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退溪)의 문인 (18) - 천사 김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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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5-16 02:37 조회1,845회 댓글0건본문
퇴계(退溪)의 문인 (18) - 천사 김종덕
퇴계의 문인이신 만취당 김사원의 6세손인 천사 김종덕은
퇴계 --- 김성일 --- 장흥효 --- 이현일 --- ●이상정 --- 김종덕으로 이어지는 퇴계학맥 영남학파의 정통으로
문하에 황번노, 정원선, 강준흠, 송규필, 윤동야 등의 수많은 제자와
김성응, 김청진, 김성진, 김양휴 등 사촌문중에도 많은 가르침을 남깁니다.
참고로 천사의 스승이신 대산 이상정은
안동시 풍산읍 회곡동에 있는 충렬공(김방경) 유허비를 書하였을 뿐만아니라
만취당 김사원의 행장을 撰하였으며,
천사 김종덕 뿐만 아니라 사촌문중의 김이구, 김종경, 김종구, 김종신, 김종발, 김종섭, 김종준 등
많은 분들을 문하생으로 두어 가르치게 됩니다.
■ 퇴계문인록 (1983, 이희대 편저, 제자 서봉 김사달)
<도산급문제현록 抄와 학통연원표>
퇴계 --- 김성일 --- 장흥효 --- 이현일 --- ●이상정 ---
이상정 --- 조술도, ●김종덕, 정종로, 류도원, 남한조, 이종수, 이만운, 류?
●김종덕 --- 황번노, 정원선, 강준흠, 송규필, 윤동야
남한조 --- 류치명 --- 이진상 ---
작성자 :김윤만 작성일 : 2002/06/13 07:18 (from:211.219.142.219) 조회 : 50
■ 의성군지(의성군지편찬위원회, 1998)
자. 김종덕(金宗德) 형제와 종반
---자는 도언(道彦), 호는 천사(川沙), 김종덕은 ★사원(士元)의 6세손으로 일찍이 퇴계의 연원 정맥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을 사사하여 퇴계의 학통을 계승한 영남학파의 조선조 후기 학자로서 영남의 사종(師宗)으로 추앙을 받았다.
일찍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덕망과 학행으로 천거되어 의금부 도사(義禁府 都事)를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유자정을 짓고 강론함에 원근의 많은 선비들이 문하에 출입했다.
문집(文集) 20권 부록(附錄) 4권, 성학입문(聖學入門) 상.하권, 성학정로(聖學正路), 정본(正本), 초려문답(草蘆問答) 4권 예서(禮書) 등이 발간되었으며, 고증(考證) 12권 및 동몽교재(童蒙敎材) 입본(入本) 등은 간행하지 못한 채 유고로 남아있어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후 사림에서 불조위(不 位)로 고유했고, 안동과 청송 사림에서 부강서당(鳧江書堂)을 창건하여 호(湖) ★이상정(李象靖) 사(沙) ★김종덕(金宗德) 평(坪) ★유치명(柳致明) 삼선생의 위패를 봉안하려던 중 대원군의 철훼령으로 무산되고, 대산의 약중편(約中編)과 천사의 성학정로(聖學正路), 정제의 주절휘요(朱節彙要)를 동시에 병간했으며, 부강서당은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1992년에 계명한문학연구회(啓明漢文學硏究會)에서 전책 7권이 간행(刊行)되었다. 형제 4인중 종반 2인 모두 대산 ★이상정을 사사하여 문사가 출류하고 경학과 성리학에 밝았으며 대소과에 전원 급제하므로서 당세에 널리 알려졌다.
중제 ★종경(宗敬)은 호가 구재(苟齋)로 문과 급제하여 성현 찰방(省峴 察訪)과 사헌부 지평을 역임했으며, 선사 ★대산으로부터 심경강록(心經講錄)의 찬술을 명받고 완성치 못한 가운데 졸함에 형 ★종덕과 아우 ★종섭(宗燮)이 필역하여 세상에 전한다.
숙제 ★종발(宗發)은 호가 용연으로 문과 등제하여 장능 별검(莊陵 別檢)과 사헌부 장령을 역임했다. 천품이 영매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사훈을 독신했다. ★정조는 그의 행의가 특이하고 학문이 고명하다고 찬양한 일이 있으며 문집 4권과 유가요람(儒家要覽), 예서 등이 간행되었으며,
계제 ★종섭(宗燮)은 호가 제암(濟庵)이며 천자가 수미하고 총명이 뛰어났으며, 문장이 겸비하여 동문의 추중을 받았다.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명상 ★채제공과 친교를 가졌고 서찰의 왕래가 있었다. 49세로 조요(早夭)했으나 후학을 계도하고 문집 8권을 남겼다.
종제 ★종신(宗臣), ★종준(宗駿) 모두가 생원(生員)에 이르렀으며, 학행으로 향도에 알려졌고, 종준(宗駿)은 글씨에도 능해서 필첩(筆帖)과 유고가 전한다.
종경의 손 ★양린(養麟), 종발(宗發)의 손 ★양범(養範), 종섭의 손 ★양징(養徵)은 모두 사마시에 합격되고 경사에 박섭하였으며, ★양범은 생원 진사 양시에 입방하고 가학을 상승하여 선비들의 추중을 받았다. 시혜불보(施惠不報) 애린교화(愛린敎化)에 힘써 후진을 감복케 했으며, 명고동(속칭 만동골)에 문생들이 스승의 거처로 3간 집을 세우니 이가 곧 만동서숙(晩同書塾)이다. 만년에 여기를 별저로 삼아 훈학하고, 명사들의 내왕도 잦았으며 유집이 있다.
■ 디지털한국학
김종덕(金宗德)
1724(경종 4)∼1797(정조 21).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안동. 자는 도언(道彦), 호는 천사(川沙).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이다.
1753년(영조 29)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오직 학업에만 열중하였다.
또한, 과거란 선비의 학문에 대한 뜻을 흐리게 하는 것이라고 배척하고,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관계진출을 사양하였다.
관력은 1779년(정조 3)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의금부도사를 지냈을 뿐이다.
저서로는 《천사집》·《성학입문 聖學入門》·《예문일통 禮門一統》·《석학정론 釋學正論》·《정본고증 政本考證》·《혁려문답 革慮問答》·《예서 禮書》 등이 있다.
참고문헌
川沙集, 嶺南人物考. 〈韓相甲〉
김종발(金宗發)
1740(영조 16)∼1812(순조 12).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안동. 자는 경온(景蘊), 호는 용연(容淵).
아버지는 남응(南應)이며, 어머니는 순천김씨로 주의(胄#억02)의 딸이다.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77년(정조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1779년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그뒤 장릉별검(莊陵別檢)·종부시주부·사헌부지평을 역임하고 1798년 장령에 승진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형인 종덕(宗德)·종경(宗敬)·종섭(宗燮)을 비롯하여 동문인 유장원(柳將源)·이지춘(李遲春)·황학중(黃學中) 등과 더불어 사설(師說)의 계승, 발전에 노력하였다.
학문적으로는 특히 《대학》·《중용》을 비롯하여 주자서와 《심경》 등에 심취하여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경세의 도를 연구하기에 힘썼다.
저서로는 《용연일고》 2책이 있다.
참고문헌
容淵逸稿. 〈徐智源〉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 김윤식 - 감사합니다. 정중 형님이 지난 여름 도산서원에서 강 건너편을 건너다보면서 천사 할아버지께서 퇴계 학맥의 정통임을 들려 주시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 김윤만 - 그래 말입니다. 추억은 아름다움으로 우리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 김태영 - 잘 보았습니다.
▣ 김정중 - 너무 감사합니다
퇴계의 문인이신 만취당 김사원의 6세손인 천사 김종덕은
퇴계 --- 김성일 --- 장흥효 --- 이현일 --- ●이상정 --- 김종덕으로 이어지는 퇴계학맥 영남학파의 정통으로
문하에 황번노, 정원선, 강준흠, 송규필, 윤동야 등의 수많은 제자와
김성응, 김청진, 김성진, 김양휴 등 사촌문중에도 많은 가르침을 남깁니다.
참고로 천사의 스승이신 대산 이상정은
안동시 풍산읍 회곡동에 있는 충렬공(김방경) 유허비를 書하였을 뿐만아니라
만취당 김사원의 행장을 撰하였으며,
천사 김종덕 뿐만 아니라 사촌문중의 김이구, 김종경, 김종구, 김종신, 김종발, 김종섭, 김종준 등
많은 분들을 문하생으로 두어 가르치게 됩니다.
■ 퇴계문인록 (1983, 이희대 편저, 제자 서봉 김사달)
<도산급문제현록 抄와 학통연원표>
퇴계 --- 김성일 --- 장흥효 --- 이현일 --- ●이상정 ---
이상정 --- 조술도, ●김종덕, 정종로, 류도원, 남한조, 이종수, 이만운, 류?
●김종덕 --- 황번노, 정원선, 강준흠, 송규필, 윤동야
남한조 --- 류치명 --- 이진상 ---
작성자 :김윤만 작성일 : 2002/06/13 07:18 (from:211.219.142.219) 조회 : 50
■ 의성군지(의성군지편찬위원회, 1998)
자. 김종덕(金宗德) 형제와 종반
---자는 도언(道彦), 호는 천사(川沙), 김종덕은 ★사원(士元)의 6세손으로 일찍이 퇴계의 연원 정맥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을 사사하여 퇴계의 학통을 계승한 영남학파의 조선조 후기 학자로서 영남의 사종(師宗)으로 추앙을 받았다.
일찍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덕망과 학행으로 천거되어 의금부 도사(義禁府 都事)를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유자정을 짓고 강론함에 원근의 많은 선비들이 문하에 출입했다.
문집(文集) 20권 부록(附錄) 4권, 성학입문(聖學入門) 상.하권, 성학정로(聖學正路), 정본(正本), 초려문답(草蘆問答) 4권 예서(禮書) 등이 발간되었으며, 고증(考證) 12권 및 동몽교재(童蒙敎材) 입본(入本) 등은 간행하지 못한 채 유고로 남아있어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후 사림에서 불조위(不 位)로 고유했고, 안동과 청송 사림에서 부강서당(鳧江書堂)을 창건하여 호(湖) ★이상정(李象靖) 사(沙) ★김종덕(金宗德) 평(坪) ★유치명(柳致明) 삼선생의 위패를 봉안하려던 중 대원군의 철훼령으로 무산되고, 대산의 약중편(約中編)과 천사의 성학정로(聖學正路), 정제의 주절휘요(朱節彙要)를 동시에 병간했으며, 부강서당은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1992년에 계명한문학연구회(啓明漢文學硏究會)에서 전책 7권이 간행(刊行)되었다. 형제 4인중 종반 2인 모두 대산 ★이상정을 사사하여 문사가 출류하고 경학과 성리학에 밝았으며 대소과에 전원 급제하므로서 당세에 널리 알려졌다.
중제 ★종경(宗敬)은 호가 구재(苟齋)로 문과 급제하여 성현 찰방(省峴 察訪)과 사헌부 지평을 역임했으며, 선사 ★대산으로부터 심경강록(心經講錄)의 찬술을 명받고 완성치 못한 가운데 졸함에 형 ★종덕과 아우 ★종섭(宗燮)이 필역하여 세상에 전한다.
숙제 ★종발(宗發)은 호가 용연으로 문과 등제하여 장능 별검(莊陵 別檢)과 사헌부 장령을 역임했다. 천품이 영매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사훈을 독신했다. ★정조는 그의 행의가 특이하고 학문이 고명하다고 찬양한 일이 있으며 문집 4권과 유가요람(儒家要覽), 예서 등이 간행되었으며,
계제 ★종섭(宗燮)은 호가 제암(濟庵)이며 천자가 수미하고 총명이 뛰어났으며, 문장이 겸비하여 동문의 추중을 받았다.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명상 ★채제공과 친교를 가졌고 서찰의 왕래가 있었다. 49세로 조요(早夭)했으나 후학을 계도하고 문집 8권을 남겼다.
종제 ★종신(宗臣), ★종준(宗駿) 모두가 생원(生員)에 이르렀으며, 학행으로 향도에 알려졌고, 종준(宗駿)은 글씨에도 능해서 필첩(筆帖)과 유고가 전한다.
종경의 손 ★양린(養麟), 종발(宗發)의 손 ★양범(養範), 종섭의 손 ★양징(養徵)은 모두 사마시에 합격되고 경사에 박섭하였으며, ★양범은 생원 진사 양시에 입방하고 가학을 상승하여 선비들의 추중을 받았다. 시혜불보(施惠不報) 애린교화(愛린敎化)에 힘써 후진을 감복케 했으며, 명고동(속칭 만동골)에 문생들이 스승의 거처로 3간 집을 세우니 이가 곧 만동서숙(晩同書塾)이다. 만년에 여기를 별저로 삼아 훈학하고, 명사들의 내왕도 잦았으며 유집이 있다.
■ 디지털한국학
김종덕(金宗德)
1724(경종 4)∼1797(정조 21).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안동. 자는 도언(道彦), 호는 천사(川沙).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이다.
1753년(영조 29)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오직 학업에만 열중하였다.
또한, 과거란 선비의 학문에 대한 뜻을 흐리게 하는 것이라고 배척하고,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관계진출을 사양하였다.
관력은 1779년(정조 3)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의금부도사를 지냈을 뿐이다.
저서로는 《천사집》·《성학입문 聖學入門》·《예문일통 禮門一統》·《석학정론 釋學正論》·《정본고증 政本考證》·《혁려문답 革慮問答》·《예서 禮書》 등이 있다.
참고문헌
川沙集, 嶺南人物考. 〈韓相甲〉
김종발(金宗發)
1740(영조 16)∼1812(순조 12).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안동. 자는 경온(景蘊), 호는 용연(容淵).
아버지는 남응(南應)이며, 어머니는 순천김씨로 주의(胄#억02)의 딸이다.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77년(정조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1779년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그뒤 장릉별검(莊陵別檢)·종부시주부·사헌부지평을 역임하고 1798년 장령에 승진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형인 종덕(宗德)·종경(宗敬)·종섭(宗燮)을 비롯하여 동문인 유장원(柳將源)·이지춘(李遲春)·황학중(黃學中) 등과 더불어 사설(師說)의 계승, 발전에 노력하였다.
학문적으로는 특히 《대학》·《중용》을 비롯하여 주자서와 《심경》 등에 심취하여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경세의 도를 연구하기에 힘썼다.
저서로는 《용연일고》 2책이 있다.
참고문헌
容淵逸稿. 〈徐智源〉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 김윤식 - 감사합니다. 정중 형님이 지난 여름 도산서원에서 강 건너편을 건너다보면서 천사 할아버지께서 퇴계 학맥의 정통임을 들려 주시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 김윤만 - 그래 말입니다. 추억은 아름다움으로 우리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 김태영 - 잘 보았습니다.
▣ 김정중 -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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