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Re: 본 건 관련 일부 선조님 소개.
페이지 정보
김윤만 작성일03-05-16 07:55 조회2,336회 댓글0건본문
▣ 상락공(上洛公) ▣
--공(公)의 휘는 묘(昴)요, 안동 사람이다.<본관(本貫)이 안동(安東)이다>. 벼슬은 삼중대광평장사(三重大匡平章事)에 이르렀고 상락군(上洛君)이다.<上洛君이라는 군호(君號)를 받았다> 부(父)의 휘는 승택(承澤)인데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도첨의사사(都僉議使司)의 정승이요 영창군(永昌君)으로서 치사(致仕)하였고(나이가 많이 들어 벼슬을 사양함), 국가에서 양간공(良簡公)의 시호를 받았다. 조(祖)의 휘는 선(愃)이요, 봉익대부(奉翊大夫 : 고려 때 문관, 종2품)로서 밀직사부지사(密直司副知使) 전법판서(典法判書)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증조(曾祖)의 휘는 방경(方慶)인데 추충정난정원공신(推忠靖難定遠功臣)이며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 고려 때 문관, 정1품)으로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 : 都僉議府의 으뜸벼슬인 中贊)을 지냈으며 상락군(上洛君 : ☞上洛郡의 오기임)이요 개국공(開國公)이며 시호는 충렬공(忠烈公)이다. 배위(配位)는 여흥민씨(驪興閔氏)인데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을 지낸 문온공(文溫公) 사평<思平 : 호는 급암(及菴)>의 따님이다. 삼남을 두었는데 구용<九容 : 처음의 휘는 제민(齊閔)>·제안(齊顔)·구덕(九德)이다. 모두 도학(道學)과 문장(文章)이 당세에 크게 알려졌고 관계(官界)에서의 지위와 인망(人望)이 일찍이 조정에 드러났으니 진정 선(善)을 쌓으면 보답을 받게되는 이치와 선(善)한 자손이 대대로 끊이지 않는 복은 실로 공(公)의 일문(一門)에 딱 들어 맞았다. 아! 세대(世代)는 멀고 전형<典刑 : 일정한 법규(法規), 고래(古來)의 법(法)>은 날로 아득해져 공(公)의 행적이 산실(散失)되어 남아있는 것이 없으나 다행히도 여흥민씨(驪興閔氏) 부인(夫人)의 묘지(墓誌)가 오늘에까지 전해져오므로 삼가 덧붙여 기록한다.
☞ 현재 상락군(묘)의 단소가 포천군 창수면 오가리 금수정 영역에 부 양간공(승택), 자 문온공(구용)과 함께 설단되어 있습니다.
▣ 문온공(文溫公) ▣
--(생략)--
▣ 성천공(成川公) ▣
--공(公)의 휘는 명리(明理)이요, 안동인이며 벼슬은 성천부사(成川府使)이다. 배(配)는 숙인(淑人) 경주이씨(慶州李氏)요, 밀직제학(密直提學)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문정공(文貞公) 호 제정(霽亭) 달충(達衷)의 따님이다. 3남을 낳았는데 맏이는 맹헌(孟獻)이요 문과(文科)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직제학(直提學)이다. 다음은 중서(仲舒)요 진사에 입격하였고 벼슬은 호조참의(戶曹參議)이다. 다음은 계우(季友)요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헌납(獻納)이다. 딸은 김철산(金鐵山)에게 시집갔으며 광산인(光山人)이다. 묘소는 광주 경안 남면 목동(廣州慶安南面木洞)의 자좌(子坐) 언덕에 있는데 상하분(上下墳)이며 표갈(表碣)이 있다.
- 봉정대부(奉正大夫) 성천도호부부사(成川都護府副使) 김공명리지묘(金公明理之墓)
- 정통(正統) 기미(명나라 영종4년, 조선 세종21년, 1439년) 12월16일 장(葬)
- 음각열서(陰刻列書)
- 자 소윤(少尹) 맹헌(孟獻)
- - - -부승(副丞) 중서(仲舒)
- - - -봉교(奉敎) 계우(季友)
- 성천도호부부사(成川都護府副使) 김공명리지처(金公明理之妻) 계림이씨지묘(鷄林李氏之墓)
- 영락(永樂) 기축(己丑 : 명나라 성조7년, 조선 태종9년, 1409년)
- 동(冬) 장(藏)
☞ 현재 부사공(명리)의 묘소는 광주군 오포면 목리(나뭇골)에서 포천군 창수면 가양리로 이장하여 모셨습니다.
▣ 직제학공(直提學公) ▣
--공(公)의 휘는 맹헌(孟獻)이요 인동인이며 정축(丁丑 : ☞태조6년, 1397년)생이다. 선덕 병오(宣德 丙午 : 명나라 선종원년, 1426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검열(檢閱)·전랑<銓郞 : 조선왕조 때 이조(吏曹)의 정랑(正郞)과 좌랑(佐郞)을 일컬음. 내외 관원(官員)을 천거(薦擧)·전형(銓衡)하는데 권한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런 별칭이 붙게 됨)을 거쳐 벼슬이 예문관 직제학(禮文館 直提學)에 이르렀다. 배(配)는 숙인(淑人) 양성이씨(陽城李氏)요, 좌찬성(左贊成) 양성부원군(陽城府院君) 공소공(恭昭公) 사검(思儉)의 따님이다. 2남3녀를 낳으니 맏이 지정(自埥)은 벼슬이 直長이요, 다음 자양(自壤)은 벼슬이 내섬시 첨정(內贍寺僉正)이다. 딸 윤기(尹沂)는 파평인으로 현령(縣令)이요, 딸 이세부(李世土+缶)는 전의인으로 牧使요, 딸 송순년(宋順年)은 은진인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정랑(正郞)이며 부제학(副提學)으로 증직되었다. 묘소는 영평 남면 계류동(永平南面溪流洞) 축좌(丑坐) 언덕에 있는데, 상하분(上下墳)이며 표갈(表碣)이 있다.
- 예문관 직제학(禮文館 直提學) 김맹헌지묘(金孟獻之墓)
- 음각(陰刻)에 이르기를 ‘이씨 묘는 남쪽에 있고 공의 묘는 뒤에 있다.’하였다.
- 공인(恭人) 양성이씨지묘(陽城李氏之墓)
- 음각(陰刻)에 이르기를 ‘직제학 김맹헌의 처는 김공 묘와의 거리가 겨우5~6척쯤 된다.’하였다.
- 직제학공의 낙하동주계축(洛下同舟契軸)의 서·발(序·跋)이 세상에 전하므로 부록(附錄)한다.
▣ 첨정공(僉正公) ▣
--공(公)의 휘는 자양(自壤)이요. 안동인(安東人)이다. 벼슬은 내섬시 첨정(內贍寺僉正)이며 증직은 호조참의(戶曹參議)이다. 配자는 증숙부인(贈淑夫人) 연안김씨(延安金氏)요, 군사(郡事) 준(晙)의 따님이다. 아들 하나를 길렀는데 예생(禮生)이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청도군수(淸道郡守)이다. 묘(墓)는 계류동(溪流洞) 축좌(丑坐)의 언덕에 있는데 상하분(上下墳)으로 되어 있으며 표갈(表碣)이 있다.
- 내섬시 첨정(內贍寺僉正) 김자양지묘(金自壤之墓)
- 숙인(淑人) 연안김씨지묘(延安金氏之墓)
- 음각(陰刻)에 이르기를 상(上) 일이묘(一·二墓)는 공(公)의 조부모(祖父母) 묘(墓)요, 제3이 공(公)의 묘(墓)이며 숙인(淑人)은 공(公)의 처(妻)로써 묘(墓)는 공(公)의 묘(墓) 아래에 있다.
▣ 청도공(淸道公) ▣
--공(公)의 휘는 예생(禮生)이요. 안동인(安東人)이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청도군수(淸道郡守)를 지냈으며 병조참판(兵曹參判) 증직되었다. 配자는 증정부인(贈貞夫人) 인천이씨(仁川李氏)요, 감찰(監察) 만수(萬壽)의 따님이다. 2남1녀를 길렀는데 맏이 윤종(胤宗)은 무과(武科)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경상도 좌병사(慶尙道左兵使)이며, 다음 윤선(胤先)은 진사에 등제하였다. 딸은 유근(柳近)에게 출가하였는데 郡守이며, 서자 윤복(胤福)은 진사에 등제하였다. 묘(墓)는 계류동(溪流洞) 계좌(癸坐)의 언덕에 있다. 상하분(上下墳)으로 되어 있으며 표갈(表碣)이 있다.
-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청도군수(行淸道郡守) 김예생지묘(金禮生之墓)
- 정덕(正德)13년 무인(戊寅 : 명나라 무종13년, 1518년) 10월13일 세우다.
- 숙인(淑人) 인천이씨지묘(仁川李氏之墓)
- 음각(陰刻)에 이르기를, 고(考)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비(妣) 전의이씨(全義李氏), 부(夫) 청도군수(淸道郡守) 김공(金公)은 곧 상분(上墳)이다. 경태 병자(景泰丙子 : 세조2년, 1456년)에 태어나 정덕 신사(正德辛巳 : 중종16년, 1521년)에 졸(卒)하여 영평 계류동(永平 溪流洞)에 장사지냈다. 아들은 선전관(宣傳官) 윤종(胤宗)과 윤선(胤先)이요, 딸은 전설사 별제(典設使 別提) 유근(柳近)에게 출가하였다.
▣ 병사공(兵使公) ▣
--공(公)의 휘는 윤종(胤宗)이요. 자는 건지(建之)이며 안동인(安東人)이다. 성화 을사(成化乙巳 : 성종16년, 1485년)에 태어나 계유년에 무과에 등제하였고, 벼슬은 가선대부(嘉善大夫) 경상좌병마사(慶尙左兵馬使)에 이르렀으며 정묘(丁卯) 12월22일에 졸(卒)하니 수(壽) 83세이다. 배(配)는 정부인(貞夫人) 풍산김씨(豊山金氏)요, 장령(掌令) 김영수(金永銖)의 따님이다. 2남3녀를 두었는데 맏이 진기(震紀)는 진사요 관직에 임명되어 벼슬이 활인서 별제(活人署 別提)이며, 다음 진강(震綱)은 음직(蔭職)으로 벼슬이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이며 딸은 윤운(尹雲)에게 출가하였는데 함안인(咸安人)으로 현령(縣令)이며 다음은 이침(李沈)에게 출가하였는데 현감(縣監)이며, 다음은 이주국(李株國)에게 출가하였는데 수안인(遂安人)이요 부정(副正)이다. 측실(側室)에게 한 아들이 있는데 진경(震經)이며 벼슬은 첨사(僉使)이다. 묘(墓)는 계류동(溪流洞) 계좌(癸坐)의 언덕에 있다. 상하분(上下墳)으로 되어 있으며 표갈(表碣)이 있다.
- 가선대부경상도병마절도사김공지묘(嘉善大夫 慶尙道兵馬節度使 金公之墓)
- 정부인풍산김씨지묘(貞夫人 豊山金氏之墓)
- 음각(陰刻)에 이르기를, 공(公)의 휘는 윤종(胤宗)이요. 자는 건지(建之)이며 안동인(安東人)으로 상락공방경(上洛公 方慶)의 9대손이다. 고(考) 참판(參判) 예생(禮生)이요 비(妣)는 감찰(監察) 이만수(李萬壽)의 따님이다. 장령(掌令) 김영수(金永銖)의 딸에게 장가들어 2남을 낳았으니 맏이 진기(震紀)는 별제(別提)로서 먼저 죽고 다음 진강(震綱)은 일찍이 현감(縣監)이 되었었다. 딸 셋의 사위는 모두 현관(顯官)이다. 공은 성화(成化) 을사(乙巳)에 태어나 정덕(正德) 계유(癸酉)에 등제(登第)하여 벼슬이 2품에 이르렀다. 향년(享年)은 83이다. 집에서는 돈목(敦睦)하였고 사직(事職)에는 공간(恭簡)하였다. 융경 정묘(隆慶 丁卯 : 명종22년, 1567년)에 졸(卒)하니 영평 계류동(永平 溪流洞)에 장사지냈다. 김씨묘(金氏墓)는 아래에 자좌오향(子坐午向)이다.
- 기사(己巳) 8월 일에 돌을 세우다.
▣ 별제공(別提公) 진기(震紀) ▣ : 포천
--(생략)--
▣ 음성공(陰城公) 진강(震綱) ▣ : 음성
--공(公)의 휘는 진강(震綱)이요. 자(字)는 숙경(肅卿)이다. 가정 계미(嘉靖 癸未 : 중종 18년(1523년)에 태어났으며 음직(蔭職)으로 관직에 나아가 벼슬이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 음성군수(陰城郡守)가 되었다. 신사(辛巳) 11월에 졸(卒)하니 향년(享年) 59이다. 묘(墓)는 충주서촌가미곡조상리임좌(忠州西村佳美谷助桑里壬坐)이다. 配(배)는 숙인(淑人) 청산김씨(靑山金氏)로서 부사(府使) 연지(連枝)의 따님이요, 기(璣)의 손(孫)이며, 생원 자연(自沇)의 증손(曾孫)이요, 묘(墓)는 합부(合祔)되었다. 3남 3녀를 길렀는데 맏이 대화(大澕)는 벼슬이 감찰(監察)이요, 다음 대영(大瀛)은 벼슬이 봉사(奉事)이며 임진(壬辰)에 의병장(義兵將)이 되었다 하며, 다음은 대수(大洙)이다. 딸은 윤승서(尹承緖)에게 출가하였는데 해평인(海平人)이며, 다음은 김급(金岌)에게 출가하였는데 경주인(慶州人)이며, 다음은 최상인(崔尙訒)에게 출가하였는데 삭녕인(朔寧人)이요 생원(生員)이다.
▣ 하양공(河陽公) ▣
--공(公)의 휘는 대화(大澕)요, 자는 청원(淸源)이며, 초휘(初諱)는 대하(大河)요, 가정 무오(嘉靖 戊午 : 명종13년, 1558년)에 태어 났다. 신축(辛丑 : ☞ 선조34년, 1601년)년 사마시(司馬試)에 등제(登第)하였고, 음직(蔭職)으로 관직에 나아가 벼슬이 사헌부 감찰이었다. 정묘(丁卯 : ☞ 인조5년, 1627년) 10월12일에 졸(卒)하니 수(壽)가 70이며, 초서(草書)와 예서(隸書)를 잘 써서 세상에 명성이 있었다. 묘(墓)는 조상리(助桑里) 축좌(丑坐)이다. 배(配)는 숙인(淑人) 전주이씨(全州李氏)이며, 신유(辛酉 : ☞ 명종16년 1561년)년에 태어났다. 기일(忌日)은 10월 초9일이다. 증(贈) 승지(承旨) 양형(陽亨)의 딸이요, 이원군 학정(利原君 鶴丁)의 손(孫)이며, 지산령 천수(知山令 千壽)의 증손(曾孫)이요, 郡守 성주 이요년(星州 李堯年)의 외손(外孫)이다. 2남 1녀를 길렀는데 맏이 구(榘)는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정랑(正郞)이요, 다음 계(棨)는 생원(生員)이며, 딸은 한환(韓瓛)에게 출가하였는데 서원인(西原人)이다. 묘(墓)는 음성공(陰城公) 묘(墓) 위에 있는데 임좌(壬坐)이다. 계배(繼配)는 숙인(淑人) 하동정씨(河東鄭氏)이며 병자(☞ 丙子 : 선조9년, 1576년)년에 태어나 기해(☞ 己亥 : 효종10년, 1659년) 정월 21일 졸(卒)하였다. 상호군 대현(上護軍 大賢)의 딸이며 묘(墓)는 쌍분(雙墳)이다.
--공(公)이 하양수(河陽守)로 있을 때에 일절(一絶)을 읊어 재종제(再從弟)에게 주다.
--‘하양(河陽)의 늙은 태수(太守), 병으로 누워 백성을 다스리지 않네. 손이와 옛 일을 이야기 하는데 흰머리 새오워지는 것이 가엾네.’
◎ 河陽公(하양공)의 친필 시 ◎
--재종제(6촌 아우)가 지은 시의 운자를 따라서.
河陽老太守(하양노태수) 하양 고을 늙은 태수(수령)가
臥疾不治民(와질불치민) 병이 들어 백성을 다스리지 못하네.
有客來談舊(유객래담구) 손이 와서 옛일을 얘기하니
悠然白髮新(유연백발신) 흰머리가 더 애처롭기만 하네.
▣ 첨사공(僉使公) 진경(震經) ▣ :
《출전 : 가보 번역본/김재희/1996》
▣ 김윤식 -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포천 별제공 할아버지께서 어느 분이신가 했는데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 김윤식 - 으잉, 읽고 난 뒤에 금방 내용이 변했네요.^^ 윤만 대부님 밤 늦게까지 노고가 크십니다.
▣ 김태서 - 선조님 소개 감사드립니다. 한자에 물음표 현상은 컴퓨터상에서 표현이 안됩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 김태영 -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감사합니다.
--공(公)의 휘는 묘(昴)요, 안동 사람이다.<본관(本貫)이 안동(安東)이다>. 벼슬은 삼중대광평장사(三重大匡平章事)에 이르렀고 상락군(上洛君)이다.<上洛君이라는 군호(君號)를 받았다> 부(父)의 휘는 승택(承澤)인데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도첨의사사(都僉議使司)의 정승이요 영창군(永昌君)으로서 치사(致仕)하였고(나이가 많이 들어 벼슬을 사양함), 국가에서 양간공(良簡公)의 시호를 받았다. 조(祖)의 휘는 선(愃)이요, 봉익대부(奉翊大夫 : 고려 때 문관, 종2품)로서 밀직사부지사(密直司副知使) 전법판서(典法判書)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증조(曾祖)의 휘는 방경(方慶)인데 추충정난정원공신(推忠靖難定遠功臣)이며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 고려 때 문관, 정1품)으로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 : 都僉議府의 으뜸벼슬인 中贊)을 지냈으며 상락군(上洛君 : ☞上洛郡의 오기임)이요 개국공(開國公)이며 시호는 충렬공(忠烈公)이다. 배위(配位)는 여흥민씨(驪興閔氏)인데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을 지낸 문온공(文溫公) 사평<思平 : 호는 급암(及菴)>의 따님이다. 삼남을 두었는데 구용<九容 : 처음의 휘는 제민(齊閔)>·제안(齊顔)·구덕(九德)이다. 모두 도학(道學)과 문장(文章)이 당세에 크게 알려졌고 관계(官界)에서의 지위와 인망(人望)이 일찍이 조정에 드러났으니 진정 선(善)을 쌓으면 보답을 받게되는 이치와 선(善)한 자손이 대대로 끊이지 않는 복은 실로 공(公)의 일문(一門)에 딱 들어 맞았다. 아! 세대(世代)는 멀고 전형<典刑 : 일정한 법규(法規), 고래(古來)의 법(法)>은 날로 아득해져 공(公)의 행적이 산실(散失)되어 남아있는 것이 없으나 다행히도 여흥민씨(驪興閔氏) 부인(夫人)의 묘지(墓誌)가 오늘에까지 전해져오므로 삼가 덧붙여 기록한다.
☞ 현재 상락군(묘)의 단소가 포천군 창수면 오가리 금수정 영역에 부 양간공(승택), 자 문온공(구용)과 함께 설단되어 있습니다.
▣ 문온공(文溫公) ▣
--(생략)--
▣ 성천공(成川公) ▣
--공(公)의 휘는 명리(明理)이요, 안동인이며 벼슬은 성천부사(成川府使)이다. 배(配)는 숙인(淑人) 경주이씨(慶州李氏)요, 밀직제학(密直提學)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문정공(文貞公) 호 제정(霽亭) 달충(達衷)의 따님이다. 3남을 낳았는데 맏이는 맹헌(孟獻)이요 문과(文科)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직제학(直提學)이다. 다음은 중서(仲舒)요 진사에 입격하였고 벼슬은 호조참의(戶曹參議)이다. 다음은 계우(季友)요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헌납(獻納)이다. 딸은 김철산(金鐵山)에게 시집갔으며 광산인(光山人)이다. 묘소는 광주 경안 남면 목동(廣州慶安南面木洞)의 자좌(子坐) 언덕에 있는데 상하분(上下墳)이며 표갈(表碣)이 있다.
- 봉정대부(奉正大夫) 성천도호부부사(成川都護府副使) 김공명리지묘(金公明理之墓)
- 정통(正統) 기미(명나라 영종4년, 조선 세종21년, 1439년) 12월16일 장(葬)
- 음각열서(陰刻列書)
- 자 소윤(少尹) 맹헌(孟獻)
- - - -부승(副丞) 중서(仲舒)
- - - -봉교(奉敎) 계우(季友)
- 성천도호부부사(成川都護府副使) 김공명리지처(金公明理之妻) 계림이씨지묘(鷄林李氏之墓)
- 영락(永樂) 기축(己丑 : 명나라 성조7년, 조선 태종9년, 1409년)
- 동(冬) 장(藏)
☞ 현재 부사공(명리)의 묘소는 광주군 오포면 목리(나뭇골)에서 포천군 창수면 가양리로 이장하여 모셨습니다.
▣ 직제학공(直提學公) ▣
--공(公)의 휘는 맹헌(孟獻)이요 인동인이며 정축(丁丑 : ☞태조6년, 1397년)생이다. 선덕 병오(宣德 丙午 : 명나라 선종원년, 1426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검열(檢閱)·전랑<銓郞 : 조선왕조 때 이조(吏曹)의 정랑(正郞)과 좌랑(佐郞)을 일컬음. 내외 관원(官員)을 천거(薦擧)·전형(銓衡)하는데 권한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런 별칭이 붙게 됨)을 거쳐 벼슬이 예문관 직제학(禮文館 直提學)에 이르렀다. 배(配)는 숙인(淑人) 양성이씨(陽城李氏)요, 좌찬성(左贊成) 양성부원군(陽城府院君) 공소공(恭昭公) 사검(思儉)의 따님이다. 2남3녀를 낳으니 맏이 지정(自埥)은 벼슬이 直長이요, 다음 자양(自壤)은 벼슬이 내섬시 첨정(內贍寺僉正)이다. 딸 윤기(尹沂)는 파평인으로 현령(縣令)이요, 딸 이세부(李世土+缶)는 전의인으로 牧使요, 딸 송순년(宋順年)은 은진인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정랑(正郞)이며 부제학(副提學)으로 증직되었다. 묘소는 영평 남면 계류동(永平南面溪流洞) 축좌(丑坐) 언덕에 있는데, 상하분(上下墳)이며 표갈(表碣)이 있다.
- 예문관 직제학(禮文館 直提學) 김맹헌지묘(金孟獻之墓)
- 음각(陰刻)에 이르기를 ‘이씨 묘는 남쪽에 있고 공의 묘는 뒤에 있다.’하였다.
- 공인(恭人) 양성이씨지묘(陽城李氏之墓)
- 음각(陰刻)에 이르기를 ‘직제학 김맹헌의 처는 김공 묘와의 거리가 겨우5~6척쯤 된다.’하였다.
- 직제학공의 낙하동주계축(洛下同舟契軸)의 서·발(序·跋)이 세상에 전하므로 부록(附錄)한다.
▣ 첨정공(僉正公) ▣
--공(公)의 휘는 자양(自壤)이요. 안동인(安東人)이다. 벼슬은 내섬시 첨정(內贍寺僉正)이며 증직은 호조참의(戶曹參議)이다. 配자는 증숙부인(贈淑夫人) 연안김씨(延安金氏)요, 군사(郡事) 준(晙)의 따님이다. 아들 하나를 길렀는데 예생(禮生)이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청도군수(淸道郡守)이다. 묘(墓)는 계류동(溪流洞) 축좌(丑坐)의 언덕에 있는데 상하분(上下墳)으로 되어 있으며 표갈(表碣)이 있다.
- 내섬시 첨정(內贍寺僉正) 김자양지묘(金自壤之墓)
- 숙인(淑人) 연안김씨지묘(延安金氏之墓)
- 음각(陰刻)에 이르기를 상(上) 일이묘(一·二墓)는 공(公)의 조부모(祖父母) 묘(墓)요, 제3이 공(公)의 묘(墓)이며 숙인(淑人)은 공(公)의 처(妻)로써 묘(墓)는 공(公)의 묘(墓) 아래에 있다.
▣ 청도공(淸道公) ▣
--공(公)의 휘는 예생(禮生)이요. 안동인(安東人)이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청도군수(淸道郡守)를 지냈으며 병조참판(兵曹參判) 증직되었다. 配자는 증정부인(贈貞夫人) 인천이씨(仁川李氏)요, 감찰(監察) 만수(萬壽)의 따님이다. 2남1녀를 길렀는데 맏이 윤종(胤宗)은 무과(武科)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경상도 좌병사(慶尙道左兵使)이며, 다음 윤선(胤先)은 진사에 등제하였다. 딸은 유근(柳近)에게 출가하였는데 郡守이며, 서자 윤복(胤福)은 진사에 등제하였다. 묘(墓)는 계류동(溪流洞) 계좌(癸坐)의 언덕에 있다. 상하분(上下墳)으로 되어 있으며 표갈(表碣)이 있다.
-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청도군수(行淸道郡守) 김예생지묘(金禮生之墓)
- 정덕(正德)13년 무인(戊寅 : 명나라 무종13년, 1518년) 10월13일 세우다.
- 숙인(淑人) 인천이씨지묘(仁川李氏之墓)
- 음각(陰刻)에 이르기를, 고(考)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비(妣) 전의이씨(全義李氏), 부(夫) 청도군수(淸道郡守) 김공(金公)은 곧 상분(上墳)이다. 경태 병자(景泰丙子 : 세조2년, 1456년)에 태어나 정덕 신사(正德辛巳 : 중종16년, 1521년)에 졸(卒)하여 영평 계류동(永平 溪流洞)에 장사지냈다. 아들은 선전관(宣傳官) 윤종(胤宗)과 윤선(胤先)이요, 딸은 전설사 별제(典設使 別提) 유근(柳近)에게 출가하였다.
▣ 병사공(兵使公) ▣
--공(公)의 휘는 윤종(胤宗)이요. 자는 건지(建之)이며 안동인(安東人)이다. 성화 을사(成化乙巳 : 성종16년, 1485년)에 태어나 계유년에 무과에 등제하였고, 벼슬은 가선대부(嘉善大夫) 경상좌병마사(慶尙左兵馬使)에 이르렀으며 정묘(丁卯) 12월22일에 졸(卒)하니 수(壽) 83세이다. 배(配)는 정부인(貞夫人) 풍산김씨(豊山金氏)요, 장령(掌令) 김영수(金永銖)의 따님이다. 2남3녀를 두었는데 맏이 진기(震紀)는 진사요 관직에 임명되어 벼슬이 활인서 별제(活人署 別提)이며, 다음 진강(震綱)은 음직(蔭職)으로 벼슬이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이며 딸은 윤운(尹雲)에게 출가하였는데 함안인(咸安人)으로 현령(縣令)이며 다음은 이침(李沈)에게 출가하였는데 현감(縣監)이며, 다음은 이주국(李株國)에게 출가하였는데 수안인(遂安人)이요 부정(副正)이다. 측실(側室)에게 한 아들이 있는데 진경(震經)이며 벼슬은 첨사(僉使)이다. 묘(墓)는 계류동(溪流洞) 계좌(癸坐)의 언덕에 있다. 상하분(上下墳)으로 되어 있으며 표갈(表碣)이 있다.
- 가선대부경상도병마절도사김공지묘(嘉善大夫 慶尙道兵馬節度使 金公之墓)
- 정부인풍산김씨지묘(貞夫人 豊山金氏之墓)
- 음각(陰刻)에 이르기를, 공(公)의 휘는 윤종(胤宗)이요. 자는 건지(建之)이며 안동인(安東人)으로 상락공방경(上洛公 方慶)의 9대손이다. 고(考) 참판(參判) 예생(禮生)이요 비(妣)는 감찰(監察) 이만수(李萬壽)의 따님이다. 장령(掌令) 김영수(金永銖)의 딸에게 장가들어 2남을 낳았으니 맏이 진기(震紀)는 별제(別提)로서 먼저 죽고 다음 진강(震綱)은 일찍이 현감(縣監)이 되었었다. 딸 셋의 사위는 모두 현관(顯官)이다. 공은 성화(成化) 을사(乙巳)에 태어나 정덕(正德) 계유(癸酉)에 등제(登第)하여 벼슬이 2품에 이르렀다. 향년(享年)은 83이다. 집에서는 돈목(敦睦)하였고 사직(事職)에는 공간(恭簡)하였다. 융경 정묘(隆慶 丁卯 : 명종22년, 1567년)에 졸(卒)하니 영평 계류동(永平 溪流洞)에 장사지냈다. 김씨묘(金氏墓)는 아래에 자좌오향(子坐午向)이다.
- 기사(己巳) 8월 일에 돌을 세우다.
▣ 별제공(別提公) 진기(震紀) ▣ : 포천
--(생략)--
▣ 음성공(陰城公) 진강(震綱) ▣ : 음성
--공(公)의 휘는 진강(震綱)이요. 자(字)는 숙경(肅卿)이다. 가정 계미(嘉靖 癸未 : 중종 18년(1523년)에 태어났으며 음직(蔭職)으로 관직에 나아가 벼슬이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 음성군수(陰城郡守)가 되었다. 신사(辛巳) 11월에 졸(卒)하니 향년(享年) 59이다. 묘(墓)는 충주서촌가미곡조상리임좌(忠州西村佳美谷助桑里壬坐)이다. 配(배)는 숙인(淑人) 청산김씨(靑山金氏)로서 부사(府使) 연지(連枝)의 따님이요, 기(璣)의 손(孫)이며, 생원 자연(自沇)의 증손(曾孫)이요, 묘(墓)는 합부(合祔)되었다. 3남 3녀를 길렀는데 맏이 대화(大澕)는 벼슬이 감찰(監察)이요, 다음 대영(大瀛)은 벼슬이 봉사(奉事)이며 임진(壬辰)에 의병장(義兵將)이 되었다 하며, 다음은 대수(大洙)이다. 딸은 윤승서(尹承緖)에게 출가하였는데 해평인(海平人)이며, 다음은 김급(金岌)에게 출가하였는데 경주인(慶州人)이며, 다음은 최상인(崔尙訒)에게 출가하였는데 삭녕인(朔寧人)이요 생원(生員)이다.
▣ 하양공(河陽公) ▣
--공(公)의 휘는 대화(大澕)요, 자는 청원(淸源)이며, 초휘(初諱)는 대하(大河)요, 가정 무오(嘉靖 戊午 : 명종13년, 1558년)에 태어 났다. 신축(辛丑 : ☞ 선조34년, 1601년)년 사마시(司馬試)에 등제(登第)하였고, 음직(蔭職)으로 관직에 나아가 벼슬이 사헌부 감찰이었다. 정묘(丁卯 : ☞ 인조5년, 1627년) 10월12일에 졸(卒)하니 수(壽)가 70이며, 초서(草書)와 예서(隸書)를 잘 써서 세상에 명성이 있었다. 묘(墓)는 조상리(助桑里) 축좌(丑坐)이다. 배(配)는 숙인(淑人) 전주이씨(全州李氏)이며, 신유(辛酉 : ☞ 명종16년 1561년)년에 태어났다. 기일(忌日)은 10월 초9일이다. 증(贈) 승지(承旨) 양형(陽亨)의 딸이요, 이원군 학정(利原君 鶴丁)의 손(孫)이며, 지산령 천수(知山令 千壽)의 증손(曾孫)이요, 郡守 성주 이요년(星州 李堯年)의 외손(外孫)이다. 2남 1녀를 길렀는데 맏이 구(榘)는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정랑(正郞)이요, 다음 계(棨)는 생원(生員)이며, 딸은 한환(韓瓛)에게 출가하였는데 서원인(西原人)이다. 묘(墓)는 음성공(陰城公) 묘(墓) 위에 있는데 임좌(壬坐)이다. 계배(繼配)는 숙인(淑人) 하동정씨(河東鄭氏)이며 병자(☞ 丙子 : 선조9년, 1576년)년에 태어나 기해(☞ 己亥 : 효종10년, 1659년) 정월 21일 졸(卒)하였다. 상호군 대현(上護軍 大賢)의 딸이며 묘(墓)는 쌍분(雙墳)이다.
--공(公)이 하양수(河陽守)로 있을 때에 일절(一絶)을 읊어 재종제(再從弟)에게 주다.
--‘하양(河陽)의 늙은 태수(太守), 병으로 누워 백성을 다스리지 않네. 손이와 옛 일을 이야기 하는데 흰머리 새오워지는 것이 가엾네.’
◎ 河陽公(하양공)의 친필 시 ◎
--재종제(6촌 아우)가 지은 시의 운자를 따라서.
河陽老太守(하양노태수) 하양 고을 늙은 태수(수령)가
臥疾不治民(와질불치민) 병이 들어 백성을 다스리지 못하네.
有客來談舊(유객래담구) 손이 와서 옛일을 얘기하니
悠然白髮新(유연백발신) 흰머리가 더 애처롭기만 하네.
▣ 첨사공(僉使公) 진경(震經) ▣ :
《출전 : 가보 번역본/김재희/1996》
▣ 김윤식 -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포천 별제공 할아버지께서 어느 분이신가 했는데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 김윤식 - 으잉, 읽고 난 뒤에 금방 내용이 변했네요.^^ 윤만 대부님 밤 늦게까지 노고가 크십니다.
▣ 김태서 - 선조님 소개 감사드립니다. 한자에 물음표 현상은 컴퓨터상에서 표현이 안됩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 김태영 -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