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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의 문인 (24) - 만취당 김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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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5-21 21:01 조회1,4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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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의 문인 (24) - 만취당 김사원







■ 퇴계학연구(퇴계선생 제자전기3) 제17집 (1997, 국제퇴계학회 경상북도지부)



p238

84. 김사원(金士元) ---김종석 (영남대학교 강사)



김사원의 자는 경인(景仁)이며 호는 만취당(晩翠堂)으로, 본관은 안동이며 의성에서 살았다. 가정(嘉靖) 기해년(1539)에 태어났는데, 천성이 자애롭고 인자하였다.



8,9세에 까마귀 떼가 날아와 모이는 것을 바라보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보니, 사람이 얼어 죽어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놀라 달아났으나 공이 홀로 그를 위하여 옷을 벗어 덮어 주고는 집으로 돌아와 어른들게 고하여 집안 머슴들로 하여금 수습하여 묻어 주도록 하였다.



경신년(1560)에 선생을 배알하였으며, 선생은 손수 고정(考亭)1)의 관선재시(觀善齋詩)2)를 써서 주었다. 공은 그것을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마음에 품고 잊지 않았다. 이로부터 과거공부(擧業)의 뜻을 버리고 위기지학(爲己之學)3)에 전심하여 의문이 생기면 묻고 얻음이 있으면 명심하여 잊지 않았다.



또 음양오행과 사람이 태어날 때 부여받은 기질의 청탁 등의 학설을 가지고 서면으로 선생께 질문하였으며, 선생은 다시 편지를 내어 조목조목 해답하여 주셨다. 그리고 경계하시기를 "생각이 과하면 편벽하게 되고 구하는 것이 너무 깊으면 천착하게 되니, 이러한 병통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임진란에 향인(鄕人)들이 추대하여 정제장(整齊將)이 되었다. 졸년은 63세였다.



○ 공은 왕래하면서 강독하였는데, 주로 ♠월란암(月瀾庵)에 기거하였다. 또 가족을 이끌고 암자 아래 ♠천사리(川沙里)에 우거한 적도 있다.



선생의 상을 당하여는 상복을 입었고 3년동안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상이 끝나고 돌아온 후에는 ♠월란정사(月瀾精舍)를 옛 암자 터에 지었다. 후산사(后山祠)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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