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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128) 당시 신문 발췌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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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6-04 20:11 조회1,5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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呼天叩地의 哭聲도 擾亂
선생 棺 속에 드시다
하늘도 우시더라 궂은비 죽죽

  백범 김구선생의 역사적인 입관식은 예정대로 29일 오후 4시부터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흐린

이날 날씨는 오후에 들어서자 보슬비로 화하고 식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앞뜰과 뒤뜰에는 발들일

틈도 없이 선생을 추모하는 사람들로 질식할 듯이 가득하였다.  현관 뒤 [싸릉]에는 그윽한 향불

냄새! 마치 지난날 선생의 한마디 한마디의 말씀이 우리들의 적은 가슴에 사무쳤듯이 눈물로 복바쳐

오르는 찢어져 오는 가슴은 어찌 된 연고인고?  입관식에는 상주인 信군과 유가족을 비롯하여

김규식박사, 조완구, 조소앙, 지대형, 이범석 국무총리 이하 정부 각부처장관, 명제세, 박열씨

그리고 선생과 같이 조국광복 국토통일을 위하여 운동하여 온 혁명투사들이 참석하였고 국내

각신문사 사진반, 영화촬영반등으로 빈소는 한때 혼란을 이루었다.  곧 염불이 시작되고 성모병원장

박병래씨와 그곳 간호인들의 소렴이 끝난 다음 [베]로 만든 수의를 선생의 최후의 옷으로 입히고

김규식, 조완구, 조소앙, 엄항섭, 이범석씨 등 선생과 함께 중국에서 지내온 동지들의 손으로 선생의

영원한 주택인 6자3치의 관으로 입관 보공을 하자 마자 사방에 터지는 울음소리를 뚫고

[앞서간 친구를 만남]이라는 찬송가 ]


[날빛 보다 더 밝은 천당


믿는 것으로 멀리 뵈이네


있는 곳 예비하신 구주


우리들을 기다리시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가 애조에 넘쳐 흘렀다.  그때 선생이 조국에서 동족의 흉탄에 쓰러져 가며 천국의 길의 첫 걸음을

밟으신 시각은 정각 5시 45분 하늘도 선생의 최후룰 조상하는 듯 창 밖에는 궂은 비만 죽죽 내리고

있다.  이러 김규식 박사의 "이 천지를 만들어 주시고 그를 오늘날까지 사랑하여 주신 하나님이여

우리들의 동지이며 지도자였던 그의 죽음을 더욱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그의 마음과 평생은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박해받는 모든 약소민족을 위하여 싸워왔습니다.  지금 그 시체를 다시 흙으로

보내기 위하여 이 앞에 있는 관을 마련한 것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등불이

되고 아세아민족의 영원한 광명과 모범이 되고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시옵소서"라는 요지의 기도도

있은 다음 5시 50분 정각 내관의 문이 닫히고 최후의 隱釘소리가 들렸다.  이때 비는 소낙비로

변하여 소리쳐 내린다.


  앞뜰에서 이 입관식의 광경을 확성기 소리로 듣고 배례하고 있던 수천의 조문객들은 비에 젖었는지

 눈물에 젖었는지 분간할 수 없다.  빈소 식장에 모였던 사람은 일단 퇴장케 하고 다시 내관을

시체를 안치하였던 먼젓 자리에 옮겨 놓고 계속하여 조문객의 영전배례를 시작하였다.  김박사 이하

제씨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응접실에 모여 오랜 친구며 언행일치하였던 참다운 동지이던 선생을

입관시킨 공허감에 무언의 한탄하는 모습이야 말로 무어라 표현키 힘들 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흐느껴 울게 하는 정경이었다.  이리하여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민족의 영원 태양

백범 김구 선생은 몇걸음 더욱 멀리 이 철부지한 우리의 옆에서 떠나가셨다.  그리고 선생의 시체는

우선 내관으로 입관되었으나 수일후에는 철관으로 다시 입관 될 것이라 한다.  또한 이날 입관식에

참석키로 되었던 이시영 부통령은 비서 유영희씨의  말에 의하면 집에서 경교장으로 떠나실 차비를

하던 도중 돌연 너무나 큰 이번 사건의 충격으로 마루위에 졸도하여 부득기 참석치 못하였다 한다.

 




▣ 김태영 -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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