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백범(130) 당시 신문 발췌(30-7/1)

페이지 정보

솔내영환 작성일03-06-05 19:49 조회1,580회 댓글0건

본문

김구선생 장의로
중등입시 일일씩 연기
생략

백범옹 참변에
홍콩교포 조전
생략

영전에 혈서 맹서
학생청년등 애통
생략

조문시간 철폐
생략

백범선생과 나
거인을 보내며
안재홍씨 담
생략

한독당원이 명백
안두희 범행에 헌병대 발표

  신임 헌병사령관 전봉덕 중령은 30일 상오 11시 헌병사령부에서 행해진 군출입기자단과의

회견석상에서 김구선생 저격범인 안두희가 김구선생과 절친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한독당측 견해와

또 한독당원이 아니라고 거부성명을 한 것을 반박하는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는 동시에 범인

안두희가 가지고있는 비밀당원증 및 금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 의거기념일에 김구선생으로부터

安이 받은 김구선생의 친필 [安斗熙同志雅正義氣沖天壯血滿地]라는 족자와 금년 3월 26일 역시

범인 安이 김구선생으로부터 안중근의사 순국39주년 기념으로 받은 김구선생의 친필

[雖死而名猶存]이라는 족자를 헌병사령부 홍소령이 범인의 자택에서 압수하였음을 발표하였다.

 
 *田헌병사령관 談   한독당 조직부장 김학규는 범인 안두희가 한독당원이 아니였다는 뜻의 담화를

발표한 이후 그 왜곡된 사실을 진상과 같이 선전하여 고의적으로 진상을 은폐하려는 모략적 언동이

유포되어 심히 유감된바 있었는데 이상의 증거를 보더래도 명백한 바와 같이 일반은 안두희가

한독당원일 뿐 아니라 동당의 비밀당원이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모략적인 언동에 넘어가

경거망동함이 없기를 간절히 부탁하는 바이다.

 

한국사태 위급없다.
외인기자에 대통령 성명
생략

와병중의 이부통령
백범 영전에 통곡
뼈저리는 옛날의 추억 가지가지

  백범 김구선생 참변의 비보에 놀란 이부통령은 즉시 졸도하였던 관계로 몸이 편치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일 오후 2시정각 경교장에 병중을 무릅쓰고 조문하였다.  이부통령은 과거 수십년간

한 맘 한 뜻으로 간난을 겪던 오래인 추억을 더듬는 듯 김구 선생의 관 머리를 붙들고 몸부림을 칠

듯이 매달려 대성통곡을 한 다음 또다시 상주 信군을 붙들고 비통의 통곡을 하자 부통령의 몸을

염려하는 여러 사람들의 말리움에 응접실로 나와 기자단과 회견하고 요지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백범선생이 돌아가신데 대해 너무 뜻밖이요.  비통하여 말이 안나온다.  그분하고 30년 사이에 같

은 기관에도 많이 있었고 깊이 지내기도 여러 번 하였으니 충성하였고 노모에는 효성극진하며

중언과묵한 고상한 분이었다.  수십년동안 환경이 간난위급이니 집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는

생각하고 국가가 어지러우면 어진 대신을 생각하듯이 그분이 절실하게 생각난다. 

 
  상해에서 윤의사 저격사건 때에 나도 같이 있었으며 그 후 각처로 돌아다녀 함께 모이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며 지내왔다.  생각건대 그분도 신이 아니요, 사람인 고로 어찌 그릇됨이 없으리요만

일본이 패퇴하고 우리가 세계적인 독립국가로 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런 흉측한 참변은 생각도

못하였다.  왜놈의 간첩이 아니고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이제 돌아가셨으니 뜻밖에 일에 무어라

말할 수 없다.  내 몸이 괴로워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참변 일주일 전에 그는 나를 집으로 찾아와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걱정하였는데 이러한 참변을 당한 것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고 진즉

와서 관 머리를 붙들고 울려고도 했지만 몸이 여의치 못해서 장사날도 참석할 것 같지 않아

장사 후에 遺稿나 보고 마음껏 울어나 볼까 한다.

 


▣ 김윤만 -
▣ 김태서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