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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133) 당시 신문 발췌(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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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6-11 19:31 조회1,4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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嗚呼 김구선생
英靈令安의 日
(자유신문 7/5 사설)

  금 5일은 고 김구선생의 국민장일이니 선생이 영원히 효창원두에 고요히 쉬게 되는 날이다. 

선생의 일생은 실로 기구하고 다난하였었다.  선생은 기울어져 가는 구한이조말엽에 나서 청년시대에

 이미 국사는 날로 글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명성황후를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하여 청춘의 熱血을

기울인 일이 있었고 그 후에는 넘어가는 조국을 위하여 신민회사건에 관계하였으며 왜적의 끄림을

받아 백오인사건에 연루되어 감옥과 교수대는 항상 선생을 따르고 있었다.  삼일운동 후로는 중국에

망명하여 임정에 진력하였으며 그의 金石을 녹일듯한 열정과 純實私無한 高德은 사정다감한 망명

청년들에게 幾多의 감화를 주어 왜왕 생일에 상해공원에서 폭탄을 던지어 세계를 격동시킨 윤봉길

의사를 위시한 허다한 의거는 선생의 훈육속에서 장양된 바 많았다.


  다시 이것을 혁명사의 [포로세스]로 볼 때에 선생의 일생은 역시 세계사의 변혁의 과정과 일치한

감이 있다.  처음에 國讐를 갚는 사건은 봉건왕조에 대한 충성이 포함되었고 다음해 신민회는

자주시민 사회의 형성을 지향한 것이며 만년의 호를 백범이라 한 것은 백정의 白과 평범의 凡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으니 이것은 저 주의자가 한국하는 [푸로]가 아닌 광의의 빈천계급과의 보조를

맞춘 것이라 여기에 한가지 우리 사이에 오해하기 쉬운 것은 백정을 이나라에서는 解牛의 업자로

생각하는 이가 있으나 典故로는 단순히 평민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생의 亡命中은 사생활도 극히 빈한하여 국수 한 그릇으로 일일의 허기를 면하고 어느때에

 소감이 있어 偏 하던 담배를 일조에 끊고 평생을 近口치 아니하였다 하니 그 실행력이 강함으로

후학에게 주는 바 교훈이 큰 바이다.  [志士勵行. 守之於爲]는 선생에게 맞는 말이다.  遮莫先生의

영령이 지하에 永寧하는 이날에 국민은 오직 경허한 마음으로 충심애도할 것이요, 선생의 장거를

일세가 슬퍼하는 機를 역용하여 어떤 정치적 모략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한갓 그 모략자체가

불성공할 뿐 아니라 누를 고결한 선생에게 끼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한독당 본부에서는

 모종의 [비라]를 부인하고 嚴戒하는 담화로써 발표한 바 있다.


  다음으로는 선생의 유지를 이어서 더욱 우리의 건국운동에 충실할 것이다.  선생은 남북통일에

대하여 극히 고심하고 또 민족간에 사상적으로 분령상쟁함을 근심하였으니 국민은 이 국토통일과

국민사상 일치에 전력을 집중하는 것이 참으로 선생을 애도하는 소이요, 참으로 선생의 유업을

계승하는 소이가 될 것이다.  끝으로 선생의 조난이 우리 청년중 무지와 오해에서 났다고 보이는데

금후에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시국수습의 길은 가사 다른 의견이

있을지라도 널리 국민에 訴하여 대중적 여론으로 좌우할 것이요, 절대로 불법한 개인적 [테러]를

하여서는 아니되며 민주주의 사회에 正常한 발전을 도모하는 길도 아니다.


  아! 선생의 일생은 고난에 始하여 고난에 終하였으며 투쟁에 始하여 투쟁에 終한 기록이다. 

선생을 영원히 보내는 이날에 水村山廓 그 어데서나 선생을 위하여 巷 함이 어찌 우연이라 하리요.

 

김구씨 암살로 표시된
한국정치의 심각한 저류
美記者 극동사태를 중대시

(워싱턴 4일발 AP 워너씨 제공=합동)


前週에 있어서 중국의 종막적인 내전과 한국의 심상치 않은 前兆가 극동에있어서 만인의 이목을

끌게 하였고 [체코] 국내에 국가대 종교의 투쟁이 동쪽 歐洲에서 나타나는가 하면 서쪽에서는

독일긴장이 다시 일시동안 동서분규를 그대로 노골화 하였다.  한편 영국경제위기는 심각하여지고

있으며 [폰드]貨의 안정이 주목되고 있다.  [티토]원수와 [콤민포롬]의 간격은 드디어 [모스코바]에

 속하는 공산국가들이 [유고]에 대하여 군사원조까지 중단하게 되었다.  [티토]씨의 이와같은

완고한 반항과는 반대로 [불가리아] 수상 [디미트로브]씨는 그 최후까지 [스타린]씨에 충실하다가

[모스코바]에서 서거하고 말았다.


  중국의 모택동씨도 자기는 분명히 소련진영에 속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모택동씨와 광동의

국민정부간에는 아직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나 커다란 군사숫자로는 이미 볼 수 없다.  國府의

장거리폭격은 때때로 상해를 진동시켜 한때는 철도피해롸 함께 백오십여명의 인명을 빼앗고

외교면에 있어서 國府는  아직도 중국의 주권을 주장하여 중공지배하의 海港을 봉쇄한다고 선언,

영미 양국은 이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통고, 국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쇄강행을 주장, 국부는

반항하는 외국선을 격침시킬 것이라고 위협 이에 미국정부는 그 상선에 대하여 이러한 모험을

무릅쓰고 항행할 것을 지시하고 만약에 국부나 군함에 의하여 미국선이 피해를 입는다면 미국은

배상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지칭하였다.  일면 중공방송은 고 손문씨 부인 송경령여사가 성명서를

발표하여 중공군의 승리를 찬양하는 것을 보도하였다.  또 중공방송은 대일강화조약에의 참가를

거듭 주장하고 있다.


  한국에 있어서 昨週는 오랫동안 해외에 망명하고 조국해방을 위하여 투쟁한 우익영수 김구씨의

암살사건으로 민심이 불안이 시작되었다.  김구씨가 그 자신의 부하로부터 암살 당한 것은

한국정치의 심각한 저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다른 면에 있어서 한국사태에 위기경고는

 [위싱톤]에서 [애치슨]국무장관의 발언으로부터 나왔다.  [애]장관은 하원외위에서 "만약에

미국의 급속한 원조가 남한경제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3개월 이내에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애]장관은 일억오천만불의 대한원조를 강력히 요구하였는데 이에

있어서 그는 만약에 한국을 원조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극동 전역에 공포의 전율을 주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주한미군은 昨週동안에 撤退를 완료하였는데 이것은 유엔한국위원단의

감시를 받았다.  유엔위원단의장은 이 기회에 방송을 통하여 북한측에 대하여 한국을 무장한

二兵舍로 불할하는 것을 종식시키는데 북한측도 협력하기를 요청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일행은 미군철퇴를 감시하였으며 미군의 사실상 철퇴를 확인하는 바이다.  우리는 북한에도

가서 소군의 철퇴를 감시하고 이를 확인할 것을 희망한다.  그런데 [모스코바]측은 이미 작년

[크리스마스]에 소군은 북한으로부터 점령군을 철퇴시켰다고 발표하였다.  유엔위원단은 아직껏

입북이 하락되지 못하고 따라서 소군철퇴를 확인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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