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우암유집>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3-06-13 05:14 조회1,508회 댓글0건

본문



<우암유집>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영인본으로 발간하고 있는 <한국문집총간>은 2001.12월 현재 280권이 발간되고 있습니다. <한국문집총간 색인>은 1993년 1권을 시작으로 1997년 현재 5권까지 발간되어 총간 32집까지 색인되어 있고, <한국문집총간 해제>도 2001.12월 현재 5권까지 발간되고 있습니다.



해제 2권에 <우암유집>이 소개되어 있어 타이핑해 보았습니다.







■ 한국문집총간 해제2

P40

[152] 寓庵遺集



우암선생유집(우암유집). 목판본. 1789년刊. 7권1책. 10행20자. 21.9×15.1(cm). 上白魚尾. 규장각장본(奎6516). 叢刊33.



⊙ 저자

金澍 : 1512년(중종7)∼1563년(명종18). 자는 應霖. 호는 寓庵, 萬窩. 본관은 안동. 시호는 文端. 봉호는 花山君. 이황, 김인후, 임형수와 교유. 정유길, 심수경 등과 함께 8문장으로 불림.



⊙ 가계

성(城, 군수)---공량(公亮, +전의이씨, 현감 팽혜의 녀)---1)완(浣, 현감), 2)척(滌, 첨중), 3)주(澍, 전의이씨 진양수 渶의 녀)



주(澍)---1)正男(좌랑, +具삼수변幹의 녀), 2)厚男(감찰, +李王+咸의 녀), 3)季男(현감, 安景武의 녀), 1녀+尹儼(좌랑), 2녀+李世良(사인), 3녀+鄭文承(사인), 4녀

<墓表陰記, 神道碑銘(李敦宇 찬), 한국계행보 등에 의함>









⊙ 행력

1세(중종7, 1512, 임신, 정덕7)---9월 7일, 태어나다.



20세(중종26, 1531, 신묘, 가정10)---진사시에 합격하다.

28세(중종34, 1539, 기해, 가정18)---11월, 별시 문과에 장원하다.

29세(중종35, 1540, 경자, 가정19)---1월, 수찬이 되다. 6월, 정언이 되다.



30세(중종36, 1541, 신축, 가정20)---이조좌랑이 되다. 사가독서하다.

32세(중종38, 1543, 계묘, 가정22)---경기도사가 되다. 8월, 헌납이 되다. 9월, 부교리가 되다. 12월, 관북어사가 되다.

33세(중종39, 1544, 갑진, 가정23)---2월, 교리에 이어 시강원 문학이 되다. 4월, 좌문학이 되다. 사가독서하다. 모친상을 당하다.

36세(명종2, 1547, 정미, 가정26)---2월, 이조정랑이 되다. 7월, 의정부 검?이 되다. 8월, 의정부 사인이 되다. 10월, 부?교가 되다.

37세(명종3, 1548, 무신, 가정27)---4월, 경기어사가 되어 救荒을 잘 하는지 살피다. 5월, 장령이 되다. 7월, 부교리가 되다. 9월, 사간이 되다.

38세(명종4, 1549, 기유, 가정28)---3월, 부응교가 되다. 5월, 李洪胤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참여하여 가자받고 兒馬 1필을 하사받다. 6월, 우부승지가 되다. 9월, 병조참지가 되다.

39세(명종5, 1550, 경술, 가정29)---5월, 좌승지가 되다. 이조 예조 참의를 지내다.



40세(명종6, 1551, 신해, 가정30)---남양부사, 도승지를 거쳐 대사간이 되다.

41세(명종7, 1552, 임자, 가정31)---3월, 부제학이 되다. 5월, 대사간이 되다. 9월, 한성부 우윤이 되다. 11월, 성균관 대사성이 되다.

42세(명종8, 1553, 계축, 가정32)---2월, 대사헌이 되다. 대사성이 되어 사은사로 연경에 가다.

43세(명종9, 1554, 갑인, 가정33)---1월, 돌아와 곧 論賞 문제로 헌부의 논계를 받아 파직되다. 서용되어 이조 호조 참판을 지내다.

44세(명종10, 1555, 을묘, 가정34)---2월, 전라도 관찰사가 되다. 5월, 왜구가 침입하자 전주부윤 李潤慶을 수성장으로 삼는 등 대응하다. 7월, 왜변 방비의 잘못으로 파직되다.

45세(명종11, 1556, 병진, 가정35)---8월, 개성부 유수가 되다.

47세(명종13, 1558, 무오, 가정37)---8월, 동지중추부사가 되다. 11월, 장예원 판결사를 거쳐 대사성이 되다.

49세(명종15, 1560, 경신, 가정39)---12월, 동지중추부사가 되다.



50세(명종16, 1561, 신유, 가정40)---7월, 황해도 관찰사가 되다.

51세(명종17, 1562, 임술, 가정41)---9월, 동지중추부사가 되다. 10월, 한성부 좌윤이 되다.

52세(명종18, 1563, 계해, 가정42)---1월, 예조 참판이 되다. 홍문관 제학이 되다. <成川圖記>를 지어 올리다. 도총부 부총관이 되다. 5월, 종계개정진청사 겸 진하사로 연경에 가다. 황제의 윤허가 난 뒤, 9월 17일에 玉?館에서 졸하다. 황제가 예부에 명하여 治喪토록 하다. 예조판서에 추증되다.



(명종20, 1565, 을축, 가정44)---1월, 여주 백양동 선영에 장사 지내다.



(선조23, 1590, 경인, 만력18)---8월, 종계 개정의 공으로 수충익모광국공신 3등에 책록되고, 花山君에 추봉되다.



(정조13, 1789, 기유, 건륭54)---6대손 禾+來가 문집을 간행하다. <김래의 跋>

(정조14, 1790, 경술, 건륭55)---文端의 시호를 받다.



(고종11, 1874, 갑술, 동치13)---후손 文演 등이 문집을 중간하다. <김문연의 重刊跋>

<신도비명(이돈우 찬), 연보, 조선왕조실록 등에 의함>









⊙ 편찬 및 간행



저자는 조선 8문장의 한 사람으로 꼽혔던 만큼 많은 작품을 남겨 自編인지 후손에 의해 편찬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詩文集으로 家傳되어 오던 것이 7책이었는데, 왜란과 호란을 겪는 와중에서 대부분 유실되었다. 다만 ★南龍翼이 만든 <箕雅(기아)>와 邑誌에 저자의 작품이 실려 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6대손 ★래가 집안 내에 소장되어 있던 禁宴應製詩, 저자가 方伯으로 있을 때 관내 州縣의 亭宇에 題詠한 것, 成川圖記, 論, 表 등을 모으고, <초두빼고蘇齋集> 등에 나오는 저자에 관한 기록과 ★래의 종질 ★得顯이 수집한 자료를 합하여 遺事를 만들고, ★李福源의 序를 받아 모두 7권1책으로 엮어 을유면(1789, 정조13)에 木版本으로 간행하였다.

<초간본> 현재 규장각(奎6516)과 장서각(4-6337)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뒤 후손 ★文演이 세상에 전하고 있는 乙酉本의 소략함을 한탄하여 다시 諸家의 家藏, 名山의 秘藏 등에서 저자와 관련된 기록들을 찾아 후손 ★胄演 등의 도움을 받아 1874년(고종11)에 6권3책의 活字本으로 중간하였다.

<중간본> 여기에는 書, 疏箚(소차), 啓(계)가 새로 들어가고 詩와 銘, 論은 추가되고, 부록으로 墓表陰記와 神道碑銘 등이 새로 들어가고 遺事가 증보되고, 年譜가 새로 들어갔는데, ★文演은 書牘(서독), 箴(잠), 頌(송)이 미비함을 애석해 하였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D3B-781)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1789년에 후손 ★래가 간행한 초간본으로 규장각본이다.



<序(이복원 찬), 跋(김래 찬), 重刊跋(김문연, 김주연 찬) 등에 의함>









⊙ 저본의 구성과 내용



본집은 7권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앞에 ★이복원의 序와 總目(총목)이 실려 있고, 권별로 目錄이 따로 붙어 있다.



권1-4는 詩이다. 고시 오언과 칠언, 근체시 오언과 칠언, 율시 오언과 칠언으로 분류되어 저작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전체 시의 편수가 87수에 불과하다. 저자의 시는 <箕雅(기아>에 실릴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복원의 序에서는 <題安分堂> 시의 작품성을 강조하였다.

지방관을 지내면서 남긴 작품이 다수이니, 경기도사 시절에 지은 <陽城>, <麻田東軒韻> 등, 남양부사 시절 지은 <南陽>, 전라도관찰사 시절에 지은 <金堤東軒韻>, <臨陂集勝樓韻> 등, 황해도관찰사 시절의 <友蓮閣>, <文化東軒>, <豊川八景>, <松禾照鏡軒> 등이다.



권5는 序, 記, 銘, 墓碣銘이다. 저자의 처조모 ★고양신씨와 관련한 <高陽世稿序>, ★명종이 내린 成川圖에 대해 지은 <應製成川圖記>,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지은 <題扇子(제선자)>, 숙부 ★金公奭의 묘갈명이다.



권6은 論, 策, 敎書, 表이다. 논 4편은 張良, 裵矢+巨, 王朝, 鄧伯道에 관한 것이고, 책은 인품의 고하를 논한 <人品策>이며, 교서는 황해도관찰사 ★趙士秀에게 내린 것이다. 표는 科體로 <趙普謝雪夜微行(조보사설야미행)>, <蔡仲謝封蔡(채중사봉채)> 등 3편이다.



권7은 후손 ★김래와 ★김득현이 만든 遺事와 1789년 ★이복원이 지은 諡狀이다. 유사는 <호음집>, <소재집>, <호당록>, 野乘(야승) 등 각종 기록에서 저자 관련 사실들을 수집하여 엮은 것인데 각 語句 아래에 출전을 밝혀 놓았다.



맨 끝에 ★김래의 跋이 있다. [鄭弼溶]











▣ 김윤식 - 끊임없는 연구에 감사드립니다. 일이 바빠 오랫동안 인사 여쭙지 못해 송구합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 김발용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용주 -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