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Re:전설은 오직 전설일 뿐

페이지 정보

솔내영환 작성일03-06-14 18:37 조회1,628회 댓글0건

본문

포은선생묘와 저헌(이석형)선생묘에 대한 전설은 전설로 족합니다만, 그래도 전설이



어데까지가 진실에 맞는지를 알고 싶은 마음에 역사적으로 증명해보기로 하겠습니다.



포은선생은 1392년 이방원이 보낸 자객한테 피살된후 송악에 모셔졌다가 신원된뒤 1406년



고향인 영천(경북)으로 이장하기 위하여 운구도중 용인을 지나갈때 들고가던 명정이 바람에 날아가



떨어진곳에 묘를 썼다고 전해 옵니다. 또 광중에 포은의 증손녀가 물을 부어 못쓰고 옆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포은선생 증손녀인 저헌선생 배위는 1406년에 태어나지도 안했습니다.



그자리는 포은선생 손자인 정보(호:설곡)의 신위지지로 점찍어 놓은 자리인데



1445년 정보선생의 따님(포은선생의 증손녀;즉 전설의 주인공;저헌 이석형의 부인)이 친정에와



아이를 낳고 산후병으로 세상을 뜨므로 자기가 쓰려던 자리에다 딸의 묘를 쓴것입니다.



저헌선생이 돌아가시자 그곳에 (원래 정몽주선생을 쓸려고 했던곳)에 저헌선생을 모시고



후일 부인도 합장했다는 전설도 다릅니다.



포은선생의 증손녀(이석형의 부인)가 먼저 돌아가시고,



그후 32년이 지나서 남편인 저헌선생이 돌아가심에 합폄을 하게 된것입니다.



묘자리가 좋은 자리인지 몰라도 저헌 이석형선생의 후손에서



조선시대만 8명의 정승과 6명의 대제학 42명의 판서를 배출했습니다.



이분들 중에서 우리가문과 인연이 깊은 분들이 많습니다.



삼대제대학으로 유명한 월사 이정구-이명한-이일상을 비홋하여



포은 정몽주선생옆에 묘가 있는 저헌 이석형선생의 후손인



이귀는 자점할아버지와 함께 인조반정을 주도한 분이고,



父子 대제학을 지내신 이복원은 우암집의 서문을 쓰셨습니다.



이복원의 아들도 대제학을 지내셨습니다. 이분이 이만수이며, 이만수의 큰형님(이복원의 큰아들)인



이시수는 영의정을 지냈습니다.



대한민국에 들어 와서도 2명의 장관과 1명의 차관이 나왔습니다











▣ 김태서 - 잘보았습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