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재 이문건의 <양아록>을 읽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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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6-15 20:42 조회1,980회 댓글0건본문
묵재 이문건의 <양아록>을 읽고나서.....
묵재 이문건의 양아록을 구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충북 괴산의 묵재 이문건의 종손 이재인 댁에서 필사본을 발견하여 한문학자 이상주 라는 분이 번역하여 1997년 단행본으로 발간한 바 있습니다.
묵재 이문건은 (제학공파) 김언묵의 사위로서---김석의 매부이고, 김충갑 김효갑 김우갑 김제갑 김인갑의 고모부임--- 1545년 갑자사화로 경북 성주에 유배되면서 손자를 얻고, 곧이어 아들 이온이 일찍 죽고, 손자를 키우면서 기록한 글입니다.
양아록 내용중에 묵재 이문건의 배위이신 안동김씨 (김언묵의 따님) 이야기도 여러군데 나오고, 특히 아들 이온의 배위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문건의 며느리의 친정어머니는 청원 오창의 (안렴사공파) 승지공 김공예의 누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즉 이문건의 아들 이온의 처 외조부가 현령공 김지 입니다.
손자를 기르고 가르치면서 손자의 버릇을 들이기 위해서 매를 들 수밖에 없는 심정, 병마에 시달리어 울부짖는 손자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애절하고 처절한 장면 등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양아록 중에서 우리 가문과 관련된 부분만을 타이핑하여 보았습니다.
■ 이문건( )의 양아록 (1997, 이상주 역, 태학사)
<성주이씨>
(이문건 조부) 이숙생+경주김씨
(이문건 부) 이윤탁+고령신씨 (부 신회 + 모 ★안동김씨)
1)이홍건---이휘---이수기
2)이충건---이염---이현배
3)이문건---이온---이수봉
이문건 + ★안동김씨 敦伊 (부 ★김언묵, 조부 ★김수형)
(이문건 자) 이온 +경주김씨 鐘金 (부 김증수 + 모 ★안동김씨=★김공예의 누이, 조부 김세균)
<제학공파>
김수형
--김언묵
----김석, 女안동김씨 敦伊(+이문건--이온)
------김충갑, 김효갑, 김우갑, 김제갑, 김인갑
<안렴사공파>
김지
--김공걸, 女안동김씨(+김증수--여+이온), 김공예, 김공언, 김공연
☞
양아록의 저자 이문건 3대는 (이윤탁-이문건-이온) 안동김씨와 매우 밀접합니다.
(이문건의 부) 이윤탁의 처모(장모)가 안동김씨이고 *정확히 누구의 따님인지 미확인
이문건의 배위는 안동김씨 敦伊로 (제학공파) 김언묵의 따님임. 즉 이문건은 김석의 매부이고, 김충갑 김효갑 김우갑 김제갑 김인갑의 고모부임
이온의 배위 경주김씨 鐘金은 (안렴사공파) 김공예의 누이인 안동김씨의 따님임. 즉 이온의 처모(장모)가 안동김씨이고, 처 외삼촌이 김공예이고, 처 외조부는 현령공 김지임
p140
世系
-----
이수봉 경무는 신해년(1551) 정월 초5일에 태어났다.
아버지 온은 자가 숙화이며 아명은 기성이다. 무인년(1518) 10월 23일 태어나서 정사년(1557) 6월 25일에 죽었다.
어머니는 김씨인데 이름은 鐘金이다. 병술년(1526) 6월 초6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증수요, 조부는 세균이다.
이수봉의 조부는 문건인데 자는 자발이며, 갑인년(1494) 11월 28일에 태어났다.
이수봉의 조모는 김씨인데, 이름은 敦伊이며, 정사년(1497) 8월 21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金彦默이며, 할아버지는 壽亨이다. 김씨의 오빠 金錫은 아들 다섯을 낳았는데, 忠甲, 孝甲, 友甲, 悌甲, 仁甲이다.
p138
가족에 관한 글 - 부인과 자녀들
나의 처 김씨는 무릇 남아 셋을 낳았다. 정축년(1517) 5월 처음 태기가 있었는데, 태아가 손상되어 8개월만에 낙태되었다. 다음이 무인년(1518)에 태어났는데 바로 온이다. 다음 신사년(1521) 6월 초8일에 괴산 집에서 여아를 낳았다. 이름은 貞中인데 매우 예뻤으며 천연두로 죽어서 괴산에 묻었다. 갑신년(1524) 3월에 또 남아를 낳았다. 9개월만에 아이를 낳았으나 겨우 하룻만에 버리게 됐다.
기유년(1525) 8월 24일 신시에 주자동 집에서 여아를 낳았다. 이름은 順貞인데 자태가 건실하고 좋았으며 성품도 예민하고 지혜로왔다. 두 살되던 여름에 평상의 다리에 눌려 이마를 다쳤다. 천연두에 걸렸는데 병세가 순조롭지 않았다. 약을 써서 연명했으며 비로소 딱쟁이가 생겼다가 모두 떨어졌다. 내 마음이 기뻐서 안아주며 뒤뜰에서 놀아주었는데 불행히 풍에 걸려 왼손이 불수가 되었다. 이로부터 맥이 불순하고 때때로 놀라 소리지르고 두려워하는 증상이 있더니 마침내 간질1)에 걸렸다. 14,5세에 점차 위중해졌는데 병이 낫기를 기다려 시집보내려고 했으나 끝내 낫지 않았다. 갑진년(1544) 5월 18일 소공주동2)에서 죽어서 민부의 집에 맡겨놨다. 6월 양주의 노원3)에 있는 선영 위쪽에 장사지냈는데 감정이 너무 비통하여 스스로 멈출 수가 없었다.
---2)小公主洞 : 조선 태종의 작은 공주인 경정공주의 궁이 있어 붙여진 이름. 지금 서울 중구 소공동
---3)盧原 : 지금 서울 노원구 하계1동. 지금 이곳에 이문건의 아버지 이윤탁의 묘소와 이문건이 그 묘소 앞에 세운 靈碑(영비)가 남아 있다. 비석의 서측면에 30자의 한글 비문이 새겨져 있다.
p159
이문건은 일반적으로 지금 서울 노원구 하계1동에 있는 한글비, 일명 영비의 찬각자로 알려진 바 있다. 김홍철, <하계동 소재 국문 고비 연구> (향토서울 40호, 1982 참고)
p133
가족에 관한 글 - 아들 온과 손녀들
아들 기성은 이름이 온이며 자는 숙화이다. 정덕13년 무인년(1518) 10월 23일 인시에 주자동2)집 안방에서 출생했는데, 장모 김씨(=?김언묵의 배위) 와 여종 석금3) 등이 산관을 했다.
점점 성장하여 6,7세가 되니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았지만 자못 영리했다. 김씨(=?이문건의 배위) 가 괴산4)에 살았기 때문에 데리고 가서 그를 양육했다. 당시 열병에 심하게 감염되었다가 겨우 소생되었으나, 이로부터 점점 멍청해졌다. 성장하여 다시 풍에 걸려 놀라는 증상이 있더니, 심신이 점차 바보 같아졌다. 이것은 반드시 부모가 이와같이 박복하여 그런 것이니, 그 한을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으며, 또한 다시 어찌하리요?
처음 수원의 내등촌에 사는 박옹의 딸에게 장가를 가서 딸을 낳았는데 곧 죽었으며 그 어미 또한 죽었다.
가정25년 병오년(1546) 가을에 청주 오근촌5)에 사는 김증수의 딸을 재취로 맞았는데, 그해 10월 그 어머니(=?)와 성주의 적소에 도착했다.
정미년(1547) 9월 18일 해시에 딸을 낳았는데
-----
---2)鑄字洞 : 鑄字所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 지금 서울 중구 주자동
---4)槐山 : 지금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에 묵재의 처가가 살았음
---5)梧根村 : 지금 충청북도 청주시 오근장동
p136
가족에 관한 글 - 자부와 손녀들
자부 김씨는 병술년(1526) 초6일 진사시에 태어났다. (한편 진시에 태어났다고도 한다). 할아버지는 김세균으로 계미년(1483)에 생원에 합격했으며, 돌아가신 나(=이문건)의 아버지(=이윤탁)와 같은 해에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이 사삼품에 이르렀다.
아버지 증수는 자가 인보로, 청주(승지 김공예의 누이) 김씨에게 장가들어 가정을 이루니 자녀가 매우 번성했다. 자부 또한 혈기가 왕성하여 무병했다.
정미년(1547) 9월에 숙희를 낳았으며
-----
p160
그(=묵재 이문건)은 23년간 유배생활을 하다가 74세인 1567년 2월 16일 서거했다. 묵재가 죽자 그 가족들은 그(=묵재)의 처가가 있는 지금의 충북 괴산으로 올라왔다. 그 손자 이수봉은 괴산군 문광면 전법리에 살다 그곳에서 죽었다.
묵재는 당대 명유들과 교유했다. <默休唱酬(묵휴창수)>에 등장하는 인사만 들어보더라도 이황, 황여헌, 송순, 이원손, 송희규, 윤규, 조욱, 노(옷의변眞), 조식, 이희안, 권응정, 노인경, 여암, 김우홍, 홍계현, 권응인, 유응벽, 김진종, 김효갑, 이이, 황중량, 이세순, 오겸, 성수침, 신잠 등 당대 일류의 학자나 문인들이다. 이렇듯 묵재의 가계와 사우관계를 통해볼 때 유수한 가문으로 그 자신 사림으로서의 위상도 상당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문건이 남긴 저술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시문인 <默齋休 稿(묵재휴수고)> 2책과 친구들과 주고받은 시문집인 <親友詩稿(친우시고)> 1책, 태극도의 일종인 <圖書卦畵撮要(도서괘화촬요)>, 본고에서 논하는 <養兒錄(양아록)> 이 있다. 이들 중에서 선집하여 1948년 <默齋集(묵재집)> 2책을 간행했다.
묵재는 일기문학에 있어서 선구적인 인물로 총9권의 생활일기를 남겼다. 이를 세칭 <默齋日記(묵재일기)>라 한다. 일기 중에 부친상을 당하여 시묘살이할 때 쓴 居憂日記(거우일기)도 들어있다. 또 성주 유배시절에 회갑을 맞아, 교유인사들과 창수했던 시를 모아 <默休唱酬(묵휴창수)>로 엮었다.
일러두기
1. <양아록> 원전은 저자인 묵재 이문건의 종손인 이재인씨가 소장하고 있는 원본인데, 묵재의 친필로 추정된다.
p195
후기
<양아록>은 현재 학계에 보고된 자료중에서 자손양육의 체험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최고의 일기성 시편으로, 아동교육사와 풍속사회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문헌이다.
현대에 와서는 육아과정을 기록하는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현대이전엔 한글이건 한문이건 그 표기수단을 막론하고, 아동의 성장발달과정과 교육내용 및 교육방법의 대체적인 내용이나마 연대순으로 기록한 문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묵재 이문건(1494-1567)은 446년전인 1551년 자신의 유배지 성주에서 손자 이수봉의 출생시부터, 1566년 16세까지 손자를 양육하면서 체험한 내용을 일기식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
나는 수년전 <양아록>을 그 저자인 묵재의 종손 이재인씨 집에서 발견하였다.
▣ 김항용 - 귀한 자료 소개에 감사합니다. 안타까운 내용과 우리 문중과의 관련 내용을 잘 읽었습니다. 이상주 교수(청주대)와는 자주 연락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즉시 연락하여 여러가지 문의해 보겠습니다. 묵재문집 연구가에게 작년에 자료 송부를 요구한 바 있는데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또 연락해 보겠습니다.
▣ 김태서 - 귀한내용 잘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잘 보았습니다. 묵재집안과 우리집안의
▣ 솔내영환 - 깊은 뿌리를 알게되었;습니다.
▣ 상석 - 2004년 KBS 프로그램 중 시간여행<역사속으로>에 소개 된적이 있습니다.
묵재 이문건의 양아록을 구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충북 괴산의 묵재 이문건의 종손 이재인 댁에서 필사본을 발견하여 한문학자 이상주 라는 분이 번역하여 1997년 단행본으로 발간한 바 있습니다.
묵재 이문건은 (제학공파) 김언묵의 사위로서---김석의 매부이고, 김충갑 김효갑 김우갑 김제갑 김인갑의 고모부임--- 1545년 갑자사화로 경북 성주에 유배되면서 손자를 얻고, 곧이어 아들 이온이 일찍 죽고, 손자를 키우면서 기록한 글입니다.
양아록 내용중에 묵재 이문건의 배위이신 안동김씨 (김언묵의 따님) 이야기도 여러군데 나오고, 특히 아들 이온의 배위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문건의 며느리의 친정어머니는 청원 오창의 (안렴사공파) 승지공 김공예의 누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즉 이문건의 아들 이온의 처 외조부가 현령공 김지 입니다.
손자를 기르고 가르치면서 손자의 버릇을 들이기 위해서 매를 들 수밖에 없는 심정, 병마에 시달리어 울부짖는 손자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애절하고 처절한 장면 등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양아록 중에서 우리 가문과 관련된 부분만을 타이핑하여 보았습니다.
■ 이문건( )의 양아록 (1997, 이상주 역, 태학사)
<성주이씨>
(이문건 조부) 이숙생+경주김씨
(이문건 부) 이윤탁+고령신씨 (부 신회 + 모 ★안동김씨)
1)이홍건---이휘---이수기
2)이충건---이염---이현배
3)이문건---이온---이수봉
이문건 + ★안동김씨 敦伊 (부 ★김언묵, 조부 ★김수형)
(이문건 자) 이온 +경주김씨 鐘金 (부 김증수 + 모 ★안동김씨=★김공예의 누이, 조부 김세균)
<제학공파>
김수형
--김언묵
----김석, 女안동김씨 敦伊(+이문건--이온)
------김충갑, 김효갑, 김우갑, 김제갑, 김인갑
<안렴사공파>
김지
--김공걸, 女안동김씨(+김증수--여+이온), 김공예, 김공언, 김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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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록의 저자 이문건 3대는 (이윤탁-이문건-이온) 안동김씨와 매우 밀접합니다.
(이문건의 부) 이윤탁의 처모(장모)가 안동김씨이고 *정확히 누구의 따님인지 미확인
이문건의 배위는 안동김씨 敦伊로 (제학공파) 김언묵의 따님임. 즉 이문건은 김석의 매부이고, 김충갑 김효갑 김우갑 김제갑 김인갑의 고모부임
이온의 배위 경주김씨 鐘金은 (안렴사공파) 김공예의 누이인 안동김씨의 따님임. 즉 이온의 처모(장모)가 안동김씨이고, 처 외삼촌이 김공예이고, 처 외조부는 현령공 김지임
p140
世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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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봉 경무는 신해년(1551) 정월 초5일에 태어났다.
아버지 온은 자가 숙화이며 아명은 기성이다. 무인년(1518) 10월 23일 태어나서 정사년(1557) 6월 25일에 죽었다.
어머니는 김씨인데 이름은 鐘金이다. 병술년(1526) 6월 초6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증수요, 조부는 세균이다.
이수봉의 조부는 문건인데 자는 자발이며, 갑인년(1494) 11월 28일에 태어났다.
이수봉의 조모는 김씨인데, 이름은 敦伊이며, 정사년(1497) 8월 21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金彦默이며, 할아버지는 壽亨이다. 김씨의 오빠 金錫은 아들 다섯을 낳았는데, 忠甲, 孝甲, 友甲, 悌甲, 仁甲이다.
p138
가족에 관한 글 - 부인과 자녀들
나의 처 김씨는 무릇 남아 셋을 낳았다. 정축년(1517) 5월 처음 태기가 있었는데, 태아가 손상되어 8개월만에 낙태되었다. 다음이 무인년(1518)에 태어났는데 바로 온이다. 다음 신사년(1521) 6월 초8일에 괴산 집에서 여아를 낳았다. 이름은 貞中인데 매우 예뻤으며 천연두로 죽어서 괴산에 묻었다. 갑신년(1524) 3월에 또 남아를 낳았다. 9개월만에 아이를 낳았으나 겨우 하룻만에 버리게 됐다.
기유년(1525) 8월 24일 신시에 주자동 집에서 여아를 낳았다. 이름은 順貞인데 자태가 건실하고 좋았으며 성품도 예민하고 지혜로왔다. 두 살되던 여름에 평상의 다리에 눌려 이마를 다쳤다. 천연두에 걸렸는데 병세가 순조롭지 않았다. 약을 써서 연명했으며 비로소 딱쟁이가 생겼다가 모두 떨어졌다. 내 마음이 기뻐서 안아주며 뒤뜰에서 놀아주었는데 불행히 풍에 걸려 왼손이 불수가 되었다. 이로부터 맥이 불순하고 때때로 놀라 소리지르고 두려워하는 증상이 있더니 마침내 간질1)에 걸렸다. 14,5세에 점차 위중해졌는데 병이 낫기를 기다려 시집보내려고 했으나 끝내 낫지 않았다. 갑진년(1544) 5월 18일 소공주동2)에서 죽어서 민부의 집에 맡겨놨다. 6월 양주의 노원3)에 있는 선영 위쪽에 장사지냈는데 감정이 너무 비통하여 스스로 멈출 수가 없었다.
---2)小公主洞 : 조선 태종의 작은 공주인 경정공주의 궁이 있어 붙여진 이름. 지금 서울 중구 소공동
---3)盧原 : 지금 서울 노원구 하계1동. 지금 이곳에 이문건의 아버지 이윤탁의 묘소와 이문건이 그 묘소 앞에 세운 靈碑(영비)가 남아 있다. 비석의 서측면에 30자의 한글 비문이 새겨져 있다.
p159
이문건은 일반적으로 지금 서울 노원구 하계1동에 있는 한글비, 일명 영비의 찬각자로 알려진 바 있다. 김홍철, <하계동 소재 국문 고비 연구> (향토서울 40호, 1982 참고)
p133
가족에 관한 글 - 아들 온과 손녀들
아들 기성은 이름이 온이며 자는 숙화이다. 정덕13년 무인년(1518) 10월 23일 인시에 주자동2)집 안방에서 출생했는데, 장모 김씨(=?김언묵의 배위) 와 여종 석금3) 등이 산관을 했다.
점점 성장하여 6,7세가 되니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았지만 자못 영리했다. 김씨(=?이문건의 배위) 가 괴산4)에 살았기 때문에 데리고 가서 그를 양육했다. 당시 열병에 심하게 감염되었다가 겨우 소생되었으나, 이로부터 점점 멍청해졌다. 성장하여 다시 풍에 걸려 놀라는 증상이 있더니, 심신이 점차 바보 같아졌다. 이것은 반드시 부모가 이와같이 박복하여 그런 것이니, 그 한을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으며, 또한 다시 어찌하리요?
처음 수원의 내등촌에 사는 박옹의 딸에게 장가를 가서 딸을 낳았는데 곧 죽었으며 그 어미 또한 죽었다.
가정25년 병오년(1546) 가을에 청주 오근촌5)에 사는 김증수의 딸을 재취로 맞았는데, 그해 10월 그 어머니(=?)와 성주의 적소에 도착했다.
정미년(1547) 9월 18일 해시에 딸을 낳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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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鑄字洞 : 鑄字所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 지금 서울 중구 주자동
---4)槐山 : 지금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에 묵재의 처가가 살았음
---5)梧根村 : 지금 충청북도 청주시 오근장동
p136
가족에 관한 글 - 자부와 손녀들
자부 김씨는 병술년(1526) 초6일 진사시에 태어났다. (한편 진시에 태어났다고도 한다). 할아버지는 김세균으로 계미년(1483)에 생원에 합격했으며, 돌아가신 나(=이문건)의 아버지(=이윤탁)와 같은 해에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이 사삼품에 이르렀다.
아버지 증수는 자가 인보로, 청주(승지 김공예의 누이) 김씨에게 장가들어 가정을 이루니 자녀가 매우 번성했다. 자부 또한 혈기가 왕성하여 무병했다.
정미년(1547) 9월에 숙희를 낳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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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0
그(=묵재 이문건)은 23년간 유배생활을 하다가 74세인 1567년 2월 16일 서거했다. 묵재가 죽자 그 가족들은 그(=묵재)의 처가가 있는 지금의 충북 괴산으로 올라왔다. 그 손자 이수봉은 괴산군 문광면 전법리에 살다 그곳에서 죽었다.
묵재는 당대 명유들과 교유했다. <默休唱酬(묵휴창수)>에 등장하는 인사만 들어보더라도 이황, 황여헌, 송순, 이원손, 송희규, 윤규, 조욱, 노(옷의변眞), 조식, 이희안, 권응정, 노인경, 여암, 김우홍, 홍계현, 권응인, 유응벽, 김진종, 김효갑, 이이, 황중량, 이세순, 오겸, 성수침, 신잠 등 당대 일류의 학자나 문인들이다. 이렇듯 묵재의 가계와 사우관계를 통해볼 때 유수한 가문으로 그 자신 사림으로서의 위상도 상당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문건이 남긴 저술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시문인 <默齋休 稿(묵재휴수고)> 2책과 친구들과 주고받은 시문집인 <親友詩稿(친우시고)> 1책, 태극도의 일종인 <圖書卦畵撮要(도서괘화촬요)>, 본고에서 논하는 <養兒錄(양아록)> 이 있다. 이들 중에서 선집하여 1948년 <默齋集(묵재집)> 2책을 간행했다.
묵재는 일기문학에 있어서 선구적인 인물로 총9권의 생활일기를 남겼다. 이를 세칭 <默齋日記(묵재일기)>라 한다. 일기 중에 부친상을 당하여 시묘살이할 때 쓴 居憂日記(거우일기)도 들어있다. 또 성주 유배시절에 회갑을 맞아, 교유인사들과 창수했던 시를 모아 <默休唱酬(묵휴창수)>로 엮었다.
일러두기
1. <양아록> 원전은 저자인 묵재 이문건의 종손인 이재인씨가 소장하고 있는 원본인데, 묵재의 친필로 추정된다.
p195
후기
<양아록>은 현재 학계에 보고된 자료중에서 자손양육의 체험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최고의 일기성 시편으로, 아동교육사와 풍속사회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문헌이다.
현대에 와서는 육아과정을 기록하는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현대이전엔 한글이건 한문이건 그 표기수단을 막론하고, 아동의 성장발달과정과 교육내용 및 교육방법의 대체적인 내용이나마 연대순으로 기록한 문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묵재 이문건(1494-1567)은 446년전인 1551년 자신의 유배지 성주에서 손자 이수봉의 출생시부터, 1566년 16세까지 손자를 양육하면서 체험한 내용을 일기식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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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년전 <양아록>을 그 저자인 묵재의 종손 이재인씨 집에서 발견하였다.
▣ 김항용 - 귀한 자료 소개에 감사합니다. 안타까운 내용과 우리 문중과의 관련 내용을 잘 읽었습니다. 이상주 교수(청주대)와는 자주 연락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즉시 연락하여 여러가지 문의해 보겠습니다. 묵재문집 연구가에게 작년에 자료 송부를 요구한 바 있는데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또 연락해 보겠습니다.
▣ 김태서 - 귀한내용 잘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잘 보았습니다. 묵재집안과 우리집안의
▣ 솔내영환 - 깊은 뿌리를 알게되었;습니다.
▣ 상석 - 2004년 KBS 프로그램 중 시간여행<역사속으로>에 소개 된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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