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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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6-18 03:42 조회1,340회 댓글0건본문
<백곡집>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영인본으로 발간하고 있는 <한국문집총간>은 2001.12월 현재 280권이 발간되고 있습니다. <한국문집총간 색인>은 1993년 1권을 시작으로 1997년 현재 5권까지 발간되어 총간 32집까지 색인되어 있고, <한국문집총간 해제>도 2001.12월 현재 5권까지 발간되고 있습니다.
해제 3권에 <백곡집>이 소개되어 있어 타이핑해 보았습니다.
■ 한국문집총간 해제 3권
[360] 柏谷集
柏谷先祖集(柏谷集). 卦印淨寫本(괘인정사본). 筆寫年미상. 不分券 7책. 原集 : 11행 21자. 無魚尾. 附錄 : 10행 22자. 上二葉花紋魚尾. 23.8×19.5(cm). 후손 ●金相馨씨 소장본. 總刊104.
⊙저자
●金得臣 : 1604년(선조37)∼1684년(숙종10). 자는 子公. 호는 柏谷, 龜石山人. 본관은 안동. ★朴長遠과 교유
⊙가계
時敏(충무공)---緻(系, 관찰사 +사천목씨 詹첨의 녀)---得臣(+경주김씨 聲發의 녀)
-------------緻(系, 관찰사 +측실)---------------得齡, 得成, 得平
득신---1)天손수변主(+柳成廈의 녀) 2)天손수변廷(出, +李繼道의 녀) 3)天揆(+李承淵의 녀), 녀(+崔삼수변宣,판결사), 녀(+李重輝, 군수)
<묘갈명(李玄錫 찬), 金緻비음기(金得臣 찬)에 의함>
⊙행력
1세 (선조37, 1604, 갑진, 만력32)---10월 18일, 태어나다.
---
어릴 때 부친에게 수업을 받아 부지런히 공부하였으나 文理를 통하지 못하다. 久堂 ★朴長遠과 교분을 맺다
---
21세 (인조2, 1624, 갑자, 천계4)---부친을 뵈러 임소인 동래로 찾아가자 학문의 성취가 있음을 보고 장려해 주다.
22세 (인조3, 1625, 을축, 천계5)---부친상을 당하다.
23세 (인조4, 1626, 병인, 천계6)---詩에 힘써서 澤堂 ★李植에게 인정을 받자 이후로 文名을 크게 떨치다.
24세 (인조5, 1627, 정묘, 천계7)---服을 마치고 외숙인 梅溪 ★睦敍欽을 찾아가니, 시를 보고 크게 칭찬하다. 이후 발분망식하여 더욱 文翰에 치력하다.
39세 (인조20, 1642, 임오, 숭정15)---사마진사시에 합격하다. 학업에 힘써 諸書를 모두 만번 이상 읽고 <史記>의 伯夷傳은 십수만 번을 읽어 齋號를 億萬齋라고 하다.
42세 (인조23, 1645, 을유, 순치2)---숙녕전 참봉이 되었으나 곧 그만두고 돌아와 이후 20여년간 학업에만 전념하다.
54세 (효종8, 1657, 정유, 순치14)---모친상을 당하다.
56세 (효종10, 1659, 기해, 순치16)---복을 마친 뒤 수차 과거에 응시했으나 합격하지 못하다.
59세 (현종3, 1662, 임인, 강희1)---문과에 급제하였으나 老年이란 이유로 국자 학유가 되다.
---
전적, 직강, 병조좌랑, 강원도도사, 장령, 제용감정, 사복시정, 종부시정, 풍기군수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다. 예조좌랑, 사도시정, 사예, 판교가 되었다가 장악원정 겸 지제교에 제수되었는데 얼마 안 되어 낙향하다. 선영 근처에 醉默堂(취묵당)을 짓고 詩酒로 즐기었는데 특히 久堂 ★朴長遠과 막역한 벗으로 교유하다.
66세 (현종10, 1669, 기유, 강희8)---장령으로 제수되었으나 본직에 걸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탄핵받다.
68세 (현종12, 1671, 신해, 강희10)---친구 ★朴長遠을 哭하다.
78세 (숙종7, 1681, 신유, 강희20)---世勳으로 通政에 오르다.
80세 (숙종9, 1683, 계해, 강희22)---나이 80세가 되어 노인 가자로 嘉善에 오르고 安豊君을 襲封(습봉)하다.
81세 (숙종10, 1684, 갑자, 강희23)---8월 30일, 병으로 누워 있던 중 火賊(화적)의 침입을 받아 졸하다. 11월 29일, 淸安 龜山 선영에 장사지내다.
(영조6, 1730, 경술, 옹정8)---문집이 초간되다. (朴世堂의 序)
<행장초(金可遠 찬), 묘갈명(李玄錫 찬)에 의함>
⊙편찬 및 간행
저자의 시문은 사후 얼마 안 되어 친손 ●可行과 외손 ★李濂(이렴)에 의해 정리가 이루어졌다. ★李瑞雨의 서문(1686)에 의하면 손 可行이 詩文의 책정과 아울러 서문을 부탁하였다고 하였으며, ★朴世堂의 <與李甥景周>(1687) 에는 유문의 산정과 교정 과정이 자세히 실려 있다.
★朴世堂은 자신의 사위이자 저자의 외손인 ★李濂의 부탁으로 <伯谷集>의 中草本을 교정하였는데, 시문의 취사선택, 序文의 작성, 誤字와 俗字의 교정사항 뿐만아니라 正本을 쓸 때 반드시 교정본을 준칙으로 삼아 誤字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고 序文은 大字로 쓰지 말고 본문과 같은 크기의 글자를 쓰라는 세세한 사항까지 지적하였다. 따라서 <백곡집>의 편차와 교정이 1687년에 일단 ★朴世堂에 의해서 완료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전해지는 4권1책의 필사본(한45-가454)은 다양한 수정사항이 표시된 교정본이며, 이를 바탕으로 1730년경 간행된 것이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D3B-411)에 있는 5권1책의 목판본이다. <초간본>
초간본과 필사본을 비교해 보면, 초간본에는 필사본의 수정사항 즉 誤字의 교정, 글자의 도치와 첨입, 小註의 처리 등이 모두 반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朴世堂이 선정한 文과 詩가 대부분 수록되어 있다.
다만, 필사본은 권4 이후에 隨錄諸券(수록제권)이라 하여 타인의 시가 抄錄(초록)되어 있으나 간본에는 권5에 <草堂序>, <격서악양상인석현도청서>, <사증분매서>, <금강록>, <독수기> 5편의 문이 실려 있다.
시의 편차와 순서는 두 본이 같으나 분량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권1 오언절구 68수, 권2 칠언절구 136수, 권3 오언율시 144수는 같고, 권4 칠언율시가 필사본은 21수, 간본은 63수이며, 둘다 권두에 ★朴世堂의 序만 실려 있고 발문이나 부록 등이 없다.
<백곡집>은 이 외에 9대손인 ●金相馨씨가 家藏해 오던 부록 원집 7책의 卦印淨寫本이 1985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 출간되었다. 초간본이 시 410여 수와 문 5편에 불과했던 것에 반해 이 괘인정사본은 1500수 이상의 시와 180편의 문을 수록하고 있다. 이 괘인정사본의 발문에서 "<久堂集> 간행시에 함께 1책이 간행되었다고 하나 보지 못하였다." 라고 하였으며,
<記聞錄>에서 "구당공(朴長遠)이 백곡집 간행 전에는 내 문집을 간행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후에 <구당집>을 간행할 때에 후손이 선조의 유훈을 어기기 어려워 공의 문집 겨우 1권을 내었다." 라고 하여 본집 초간본의 간행이 구당 ★박장원의 후손에 의해 <구당집> 간행때 함께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구당집>은 1730년 증손 ★朴文秀가 경상도 관찰사 재임시 대구에서 간행하였다. 따라서 초간본은 1687년 ★박세당의 산정과 교정을 거쳐 정리된 뒤 定稿本으로 전해져 오다가 1730년경에 ★박장원의 후손에 의해 간행된 듯하다.
이후 초간본이 너무 소략하게 이루어졌기에 후손들이 다시 유문을 수집 정리하고 부록을 보충하는 등 간행을 도모하였으나 가세가 부실하여 이루지 못하고 괘인정사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 淨寫 경위와 시기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본집의 내용 중에 6대손인 ●金由憲의 기록이 있으므로 대략 순조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본 총간의 저본은 원집 7책과 부록이 합쳐진 괘인정사본으로 후손 ●김상형씨 소장본이다.
<序(★박세당, ★이서우 찬), 與李景周(★박세당, 서계집 권20)에 의함>
---계 속---
▣ 솔내영환 - 감사합니다.
▣ 김항용 - 성균관대학교의 5권 1책의 목판본이 유일한 초간본인 것 같습니다. 곧 조사하겠습니다. 귀한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한테 있는 것은 상기 김상형 소장의 卦印淨寫本 7책입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좋은 자료 잘 보았습니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영인본으로 발간하고 있는 <한국문집총간>은 2001.12월 현재 280권이 발간되고 있습니다. <한국문집총간 색인>은 1993년 1권을 시작으로 1997년 현재 5권까지 발간되어 총간 32집까지 색인되어 있고, <한국문집총간 해제>도 2001.12월 현재 5권까지 발간되고 있습니다.
해제 3권에 <백곡집>이 소개되어 있어 타이핑해 보았습니다.
■ 한국문집총간 해제 3권
[360] 柏谷集
柏谷先祖集(柏谷集). 卦印淨寫本(괘인정사본). 筆寫年미상. 不分券 7책. 原集 : 11행 21자. 無魚尾. 附錄 : 10행 22자. 上二葉花紋魚尾. 23.8×19.5(cm). 후손 ●金相馨씨 소장본. 總刊104.
⊙저자
●金得臣 : 1604년(선조37)∼1684년(숙종10). 자는 子公. 호는 柏谷, 龜石山人. 본관은 안동. ★朴長遠과 교유
⊙가계
時敏(충무공)---緻(系, 관찰사 +사천목씨 詹첨의 녀)---得臣(+경주김씨 聲發의 녀)
-------------緻(系, 관찰사 +측실)---------------得齡, 得成, 得平
득신---1)天손수변主(+柳成廈의 녀) 2)天손수변廷(出, +李繼道의 녀) 3)天揆(+李承淵의 녀), 녀(+崔삼수변宣,판결사), 녀(+李重輝, 군수)
<묘갈명(李玄錫 찬), 金緻비음기(金得臣 찬)에 의함>
⊙행력
1세 (선조37, 1604, 갑진, 만력32)---10월 18일,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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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부친에게 수업을 받아 부지런히 공부하였으나 文理를 통하지 못하다. 久堂 ★朴長遠과 교분을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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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인조2, 1624, 갑자, 천계4)---부친을 뵈러 임소인 동래로 찾아가자 학문의 성취가 있음을 보고 장려해 주다.
22세 (인조3, 1625, 을축, 천계5)---부친상을 당하다.
23세 (인조4, 1626, 병인, 천계6)---詩에 힘써서 澤堂 ★李植에게 인정을 받자 이후로 文名을 크게 떨치다.
24세 (인조5, 1627, 정묘, 천계7)---服을 마치고 외숙인 梅溪 ★睦敍欽을 찾아가니, 시를 보고 크게 칭찬하다. 이후 발분망식하여 더욱 文翰에 치력하다.
39세 (인조20, 1642, 임오, 숭정15)---사마진사시에 합격하다. 학업에 힘써 諸書를 모두 만번 이상 읽고 <史記>의 伯夷傳은 십수만 번을 읽어 齋號를 億萬齋라고 하다.
42세 (인조23, 1645, 을유, 순치2)---숙녕전 참봉이 되었으나 곧 그만두고 돌아와 이후 20여년간 학업에만 전념하다.
54세 (효종8, 1657, 정유, 순치14)---모친상을 당하다.
56세 (효종10, 1659, 기해, 순치16)---복을 마친 뒤 수차 과거에 응시했으나 합격하지 못하다.
59세 (현종3, 1662, 임인, 강희1)---문과에 급제하였으나 老年이란 이유로 국자 학유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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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 직강, 병조좌랑, 강원도도사, 장령, 제용감정, 사복시정, 종부시정, 풍기군수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다. 예조좌랑, 사도시정, 사예, 판교가 되었다가 장악원정 겸 지제교에 제수되었는데 얼마 안 되어 낙향하다. 선영 근처에 醉默堂(취묵당)을 짓고 詩酒로 즐기었는데 특히 久堂 ★朴長遠과 막역한 벗으로 교유하다.
66세 (현종10, 1669, 기유, 강희8)---장령으로 제수되었으나 본직에 걸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탄핵받다.
68세 (현종12, 1671, 신해, 강희10)---친구 ★朴長遠을 哭하다.
78세 (숙종7, 1681, 신유, 강희20)---世勳으로 通政에 오르다.
80세 (숙종9, 1683, 계해, 강희22)---나이 80세가 되어 노인 가자로 嘉善에 오르고 安豊君을 襲封(습봉)하다.
81세 (숙종10, 1684, 갑자, 강희23)---8월 30일, 병으로 누워 있던 중 火賊(화적)의 침입을 받아 졸하다. 11월 29일, 淸安 龜山 선영에 장사지내다.
(영조6, 1730, 경술, 옹정8)---문집이 초간되다. (朴世堂의 序)
<행장초(金可遠 찬), 묘갈명(李玄錫 찬)에 의함>
⊙편찬 및 간행
저자의 시문은 사후 얼마 안 되어 친손 ●可行과 외손 ★李濂(이렴)에 의해 정리가 이루어졌다. ★李瑞雨의 서문(1686)에 의하면 손 可行이 詩文의 책정과 아울러 서문을 부탁하였다고 하였으며, ★朴世堂의 <與李甥景周>(1687) 에는 유문의 산정과 교정 과정이 자세히 실려 있다.
★朴世堂은 자신의 사위이자 저자의 외손인 ★李濂의 부탁으로 <伯谷集>의 中草本을 교정하였는데, 시문의 취사선택, 序文의 작성, 誤字와 俗字의 교정사항 뿐만아니라 正本을 쓸 때 반드시 교정본을 준칙으로 삼아 誤字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고 序文은 大字로 쓰지 말고 본문과 같은 크기의 글자를 쓰라는 세세한 사항까지 지적하였다. 따라서 <백곡집>의 편차와 교정이 1687년에 일단 ★朴世堂에 의해서 완료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전해지는 4권1책의 필사본(한45-가454)은 다양한 수정사항이 표시된 교정본이며, 이를 바탕으로 1730년경 간행된 것이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D3B-411)에 있는 5권1책의 목판본이다. <초간본>
초간본과 필사본을 비교해 보면, 초간본에는 필사본의 수정사항 즉 誤字의 교정, 글자의 도치와 첨입, 小註의 처리 등이 모두 반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朴世堂이 선정한 文과 詩가 대부분 수록되어 있다.
다만, 필사본은 권4 이후에 隨錄諸券(수록제권)이라 하여 타인의 시가 抄錄(초록)되어 있으나 간본에는 권5에 <草堂序>, <격서악양상인석현도청서>, <사증분매서>, <금강록>, <독수기> 5편의 문이 실려 있다.
시의 편차와 순서는 두 본이 같으나 분량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권1 오언절구 68수, 권2 칠언절구 136수, 권3 오언율시 144수는 같고, 권4 칠언율시가 필사본은 21수, 간본은 63수이며, 둘다 권두에 ★朴世堂의 序만 실려 있고 발문이나 부록 등이 없다.
<백곡집>은 이 외에 9대손인 ●金相馨씨가 家藏해 오던 부록 원집 7책의 卦印淨寫本이 1985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 출간되었다. 초간본이 시 410여 수와 문 5편에 불과했던 것에 반해 이 괘인정사본은 1500수 이상의 시와 180편의 문을 수록하고 있다. 이 괘인정사본의 발문에서 "<久堂集> 간행시에 함께 1책이 간행되었다고 하나 보지 못하였다." 라고 하였으며,
<記聞錄>에서 "구당공(朴長遠)이 백곡집 간행 전에는 내 문집을 간행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후에 <구당집>을 간행할 때에 후손이 선조의 유훈을 어기기 어려워 공의 문집 겨우 1권을 내었다." 라고 하여 본집 초간본의 간행이 구당 ★박장원의 후손에 의해 <구당집> 간행때 함께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구당집>은 1730년 증손 ★朴文秀가 경상도 관찰사 재임시 대구에서 간행하였다. 따라서 초간본은 1687년 ★박세당의 산정과 교정을 거쳐 정리된 뒤 定稿本으로 전해져 오다가 1730년경에 ★박장원의 후손에 의해 간행된 듯하다.
이후 초간본이 너무 소략하게 이루어졌기에 후손들이 다시 유문을 수집 정리하고 부록을 보충하는 등 간행을 도모하였으나 가세가 부실하여 이루지 못하고 괘인정사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 淨寫 경위와 시기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본집의 내용 중에 6대손인 ●金由憲의 기록이 있으므로 대략 순조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본 총간의 저본은 원집 7책과 부록이 합쳐진 괘인정사본으로 후손 ●김상형씨 소장본이다.
<序(★박세당, ★이서우 찬), 與李景周(★박세당, 서계집 권20)에 의함>
---계 속---
▣ 솔내영환 - 감사합니다.
▣ 김항용 - 성균관대학교의 5권 1책의 목판본이 유일한 초간본인 것 같습니다. 곧 조사하겠습니다. 귀한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한테 있는 것은 상기 김상형 소장의 卦印淨寫本 7책입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좋은 자료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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