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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139) 선생님의 분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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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6-20 19:24 조회1,6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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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井 길이 十二尺
백범선생 墳墓

  고 백범 김구선생의 길이 길이 잠드신 묘지는 효창공원 언덕으로 평소에

백범을 추모하여 선생의 사람을 받던 삼의사 묘지로부터 200미터 남쪽으로

정하였으며 地官의 말에 의하면 그 묘지는

[해입수 乾坐巽向甲得丁破之地]라고 한다. 

그리고 모신 관은 묘지에 하관하여 먼저 넓이 二尺八分 높이 一尺八分

길이 八尺五分이 되는 洋鐵棺을 벗기고 漆黑木棺만을 모시게 되었는데

金井은 外棺의 넓이가 七尺, 길이가 十二尺이며

內棺의 높이와 넓이는 二尺五分이고 길이는 七尺으로 되었다. 

이 묘소에는 백범선생이 생존해 계실 때에 거실에서 사용하시던 시계.

벼루. 붓. 먹과 바지. 저고리 한 벌도 같이 모시게 되었다. 

그리고 동묘소의 봉분과 후면치산 및 상석등이 전부 완성되려면 앞으로

3개월이나 걸릴 것이며

묘소 앞에 세울 비석은 지금 의정부에서 治石중이라 한다.

 

영전에 바치노라!
이승만 대통령 손수 화환 제작
생략

10일간 조문객
무려 124만명

 고 백범 김구선생의 시체를 모신 시내 충정로 경교장에는 서거하신 26일

하오부터 정부요인, 각정당사회단체, 일반시민 경향각지남녀노소가 모여들어

 조문객으로 人海를 이루었는데 총 조문객은 무려 124만명이라 하며 선생을

사모하고 조문하려 온 사람 중에도 초만원으로

문 밖에서 弔辭를 하고 간 사람도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한다

 

중국인 상가 철시
점두의 청천백일기 숙연
생략

민족의 영웅 추모
백범기념관 창설 긴요

우리가 백범선생의 서거를 애석하게 여기고 비통하게 생각하는 것은 첫째로

김구선생이 우리의 둘도 없는 위대한 지도자로 일제와 싸우고 남북통일을

위하여 싸우다가 그 뜻을 못 이룬 채 동족의 손에 흉변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니 우리가 지금 눈물을 흘리며 호곡함도 당연 이상의 일이다.

그러나 다만 애통하여 낙루하는 것만이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는 길이

될 수 없으며 냉정을 잃고 일시적인 흥분으로 시종하는 거 역시 선생의

유지를 계승해야 될 우리의 본의가 아닐 것이다. 

길이 선생을 잊지 말고 국민으로 하여금 길이 선생의 뒤를 따르게 하기

위하여 백범선생을 기념하는 거족적 사업을 일으켜 조국통일 국민운동을

강력히 추진시키는 것이 선생의 유덕에 보답하는 길일 이다. 

이에 환국 이후 서거직전까지 선생이 기거하시던 유서 깊은 경교장을

그대로 백범기념관으로 하여 국보로써 영구 보존케 하도록 하되 동기념관

국가에서 조성기금을 부담하든지 사부득이하면 일반국민에게서

거출하드래도 영세한 부담으로 족할 것임을 제언한다.

 

4일 일제 검색
불온삐라등 다수 압수
김 경찰국장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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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뵙는 선생
초상 우러러 방성대곡
생략

초비상계엄 해제
준비상경계 실시
생략

폭우속에 嗚咽聲
부산 광주 국민장의 聲帶
생략

광주 애도식에
화교 70여명 참석
생략




▣ 김주회 -
▣ 김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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