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149)암살배후-4-백범암살의 진상 4/4-홍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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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7-02 17:22 조회1,891회 댓글0건본문
백범암살의 진상 4/4
홍종만
동아일보
1974.5.20
수원 병점고개에서의 백범암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만 다음날 나는
집에서 하루를 쉬게 됐습니다. 일요일(49년 6월 26일)인데다 날씨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우리집은 태평로에 있다가 삼청동으로 이사를 한
뒤였습니다.
이날 문산 모부대에 근무하던 친구 박윤근이 찾아와 우리들은 오래간만에
집에서 소주를 함께 나누며 시국담을 했습니다.
이날 정오를 조금 지나 경교장에서는 끝내 백범선생이 안두희의 흉탄에 쓰
러지고야 말았습니다.
나는 이날 낮 2시경 집에 있다가 이 소식을 알았습니다.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안두희가 이날 혼자서 범행을 하리라고는 전혀 몰랐습니다. 안두희는 그 전날
장은산에게 불려 갔을 때 이날 혼자서 백범을 암살하도록 지령받은 것이 틀림
없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전날 병점고개에서 돌아온 후 장은산은 안두희
를 불러 3차는 그가 단독으로 행동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안두희가 백범을
암살하러 경교장에 나타나는 이날 아침 일찍 미리 현장 분위기를 살피도록
한독당원인 나를 경교장에 보내게돼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두희가
"홍종만 보다 내가 경교장 내부 구도를 더 잘 안다"고 말하자 3차 범행은
전적으로 안두희 혼자에게 맡겨졌습니다.
안두희는 26일 범행날 아침 태평로 집을 떠나 먼저 계동 김지웅의 집으로
찝차를 몰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중에 운전사 허하사가 자칫하다 어린이를
칠뻔하자 안두희는 기분이 몹시 언짢아하며 찝차를 놔두고 다른 차편으로
경교장으로 향했다는 것입니다.
백범선생의 암살소식으로 온 장안이 물끓듯 소란해진 이날 오후 늦게까지
나는 집에 박혀 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려 견딜 수 없었습니다. 비록 이번
범행시에는 함께 가지 않았다 해도 어째든 나도 오래 전부터 이 음모를
꾸며오던 공모자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날 저녁때쯤 종로경찰서에서 나를 잡으러 왔습니다. 종로서로
연행됐습니다. 그곳에는 이춘익과 한봉수도 와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형사들은 취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근 한주일 가량 경찰서에서 지냈고
나는 수송국민학교 옆에 있는 한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곳에는 잡혀간
안두희만 빼 놓고 우리 행동대원 모두 드나들게 됐습니다.
나는 안두희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이 병원에서 지냈습니다. 병원비는
물론 김지웅이 모두 댔습니다.
병원에서 나온 후 나는 다시 삼청동 그집으로 돌아갔고 다른 행동대원들은
김지웅이 장은산으로부터 접수한 후암동 반 양옥집에서 지내게 됐습니다.
우리 행동대원들은 범행을 성공리에 마치고 나면 그 대가로 충분한 생활비와
좋은 일자리를 보장해주겠다는 김지웅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백범선생이 암살된 뒤 그의 약속은 달랐습니다.
김지웅은 우리 행동대원을 먹여 살린다는 구실로 모처에서 돈을 뜯어다가는
자기가 쓰고 우리에게는 제대로 내놓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악만 남은 행동
대원들이 김지웅을 후암동 집에 가두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행동대원들은
팬티만 남기고 김지웅의 옷을 홀랑 벗긴 채 권총을 겨누며 "돈을 받아다
어디에 썼느냐"고 죽일 듯 위협하자 그는 와들와들 떨었습니다.
이날 뒤늦게 후암동에 들렀다가 이 광경을 목격한 나는 행동대원들을 달래어
김지웅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서울시경 사찰과장 최모씨에게 불려 갔습니다. 그는
내게 "갖고 있는 권총을 내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권총을 줄때는
언제고 달랄 때는 언제냐"면서 호통을 쳤더니 최과장은 나를 달래면서
2만원을 주었습니다.
나는 백범선생의 암살음모는 정치적 의견차이가 빚어낸 것이라고 그때부터
생각했습니다. 안두희의 재판 때 김지웅은 내게 증인으로 재판정에 나서거든
"한독당 조직부장 김학규씨가 한독당원을 공산당식으로 점조직하도록 코치
했다"고 허위증언을 하도록 지시했으나 나는 그런 증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백범선생 암살 직후 나는 나도 모르게 한독당을 탈당하는 성명서를 낸
것처럼 세상에 알려졌으나 그 탈당성명도 김지웅이 경찰과 상의해서
꾸며낸 것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두가 악몽과도 같았던 과거였습니다. 4·19혁명이 일어난 후
나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부산, 대구, 울산, 오산 등지로 숨어 다녀야
했습니다. 이제 세월도 어느덧 25년이나 흘렀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나마
모든 진상을 털어놓으니 한결 마음이 가볍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지은
죄를 용서만 받으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나는 벌을 달게 받을
각오가 돼있습니다.
홍종만의 -백범암살의 진상- 전 4부 끝
▣ 김항용 -
▣ 김항용 - 백범 암살 그때까지의 과정, 감사합니다. 그래도 홍종만이 있었기에---
▣ 김윤식 - 언젠가는 낱낱이 밝혀지겠지요. 안두희가 제 명에 죽지도 못하면서 입을 다물고 말았으니...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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