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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캠프2003 (09-4)---충렬공의 만년행적4 (충렬왕과 충선왕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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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7-09 06:53 조회1,7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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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캠프2003 (09-4)---충렬공의 만년행적4 (충렬왕과 충선왕의 사이에서)





■ 작성자 :김주회 작성일 : 2003/03/22 11:31 (from:211.57.153.114) 조회 : 43

충렬공 둘째아들 김흔장군 11 --- 말년에 충선왕의 측근으로 활약



1298년에는 충선왕이 집권하였다가 1년도 안되어 물러나 원나라로 돌아가고 아버지 충렬왕이 1299년 다시 복위하여 1308년까지 집권하게 되고, 1308년에는 충선왕이 다시 복위하게 됩니다. 아버지 충렬왕과 아들 충선왕 사이의 권력투쟁에 신하들도 충렬왕파와 충선왕파로 갈리어 세력쟁탈전이 반복되는 시기입니다.



김흔장군은 1290-1291 년간에 고려에 침입한 원나라 반군 합단적을 인후, 한희유 등과 함께 섬멸하신 바 있고, 1298년에는 고려조정이 충렬왕파와 충선왕파로 갈릴 때 김흔, 조인규, 박전지( 등은 충선왕파로, 한희유 등은 충렬왕파로 갈리어 권력투쟁을 벌이게 됩니다.



김흔장군은 1299년 충렬왕파인 한희유가 중용되자 원나라 연경에서 귀국하지 않고 지내다가 한희유가 죽고 1307년 충선왕 세력이 실권을 장악하자 연경에서 7년만에 돌아와 찬성사 자으도첨의사사 삼중대광이 되었습니다.



---조인규는 김흔장군의 사돈이고 (김흔장군의 둘째딸이 조인규의 아들 조련에게 출가),

충선왕의 장인이 됩니다.(충선왕은 열여덟 살 때 조인규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녀가 곧 조비였고).

---박전지는 충렬공의 처조카입니다. (충렬공 장인 박익정-박휘-박전지, 박익정의 장남 暉(휘)가 李藏用의 딸과 혼인)



이 시기에 충렬공께서는 말년인데도 조비(조인규의 딸) 사건에 개입하여 변호하고 있는 고려사 기록과 둘째아들 김흔장군의 충선왕파 가담 등을 고려할 때 충선왕파 측에 서신 듯 합니다.



1274년과 1281년 두 번에 걸친 일본정벌등을 주도한 충렬왕은 1290년대 이후로는 사냥과 여자에 몰두하는 등 정사를 소홀히 하게 됩니다.

충렬공 할아버지께서는 1274년과 1281년 2차에 걸친 일본정벌을 주도하였지만, 이때 충렬왕의 친정체제 구축으로 측근세력이 부상함에 따라 무고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이후 충렬왕의 사냥과 여자 몰두 등 정사를 소홀히 하게 되자 충렬공께서는 충렬왕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298년 충선왕이 즉위하였으나 1년도 안되어 원나라로 돌아가고 1299년 충렬왕이 복위하게 되고 1300년 충렬공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었을 때 충렬왕파 세력들은 충렬공 할아버지의 예장을 방해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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