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의 아버지 상서공(김효인) 05---행적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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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7-13 02:35 조회1,510회 댓글0건본문
여러 기록을 종합하여 상서공(김효인)의 행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김효인(金孝印)
○ ?∼1253(고종 40). 고려 고종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 방경(方慶)의 아버지이다.
○ 일찍이 학문에 전심하여 과거에 급제하였고 글씨에도 뛰어났다. ---熙宗 4년(1208). 戊辰科. <방목열기>
○ 공은 성품이 엄숙하고 굳셌으며, 예서(隸書)를 잘 썼다. 문장(文章)과 사업(事業)이 한 시대에 걸출(傑出)하였으니, 그 일은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보인다. 영열공(英烈公) 금의(琴儀)를 스승으로 모셨는데, 이름이 사림에서 으뜸이었다.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니 세상에서 칭하기를 “금학사옥순문생(琴學士玉筍門生)”이라 하였다. <족보>
○ [삼일포 단서석 (三日浦丹書石)] 시문을 지었다. <동문선>
○ 1224년 경북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를 이공로 찬, 김효인 書로 세울 당시 "♠장사랑 대관서승 겸 보문각 교감"을 지내시고 <보경사 원진국사비문>
○ 영암(靈巖)의 도갑사(道甲寺) 등지에 임금의 명으로 비명(碑銘)을 썼다. <족보>
○ 1231년(고종 18) 몽고군이 고려에 대한 침략을 개시하자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서 몽고측의 첩문(牒文)을 인수하는 일을 맡았으며 <고려사>
○ 1235 (또는 1238-1241년 사이)년에 전남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前面 비문을 이규보 가 찬하고 김효인이 書할 당시 "♠장사랑 중서사인 지제고 태자사의랑 사 자금어대"를 지내시고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전면비문>
○ 辛丑(1241년)에 ♠경주유수로 도임하다. <국역 동경통지>
○ 1250년 고종37년 5월에 평장사 임경숙이 지공거로 되고 ♠상서좌승 김효인(金孝印)이 ♠동지공거로 되어 진사를 뽑았는데 김응문(金應文) 등 29명, 명경과 3명, 은사과 8명에게 급제를 주었다. <고려사>
○ 1250년에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後面 비문을 최자 찬, 탁연 書로 세울 당시 "♠비서감"을 지내시고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후면 비문>
○ 고종계축40년(1253) 경인일에 병부상서 한림학사 김효인(金孝印)이 죽었다. <고려사>
○ 벼슬은 ♠정의대부 병부상서 한림학사 충사관 수찬관 지제고(正議大夫兵部尙書翰林學士充史官修撰官知制誥)에 이르렀으며, 증 ♠금자광록대부 중서령(贈金紫光祿大夫中書令)이시니 충렬공으로 인(因)하여 추봉(追封)된 것이다. <충렬공 김방경 묘지명>, <문영공 김순 묘지명>, <김승용 묘지명>, <광산김씨 김련 김진 호구단자>
▣ 솔내영환 -
▣ 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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