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의 아버지 상서공(김효인) 04---족보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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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7-13 02:03 조회1,449회 댓글0건본문
충렬공의 아버지 상서공(김효인) 04---족보기록
■ 안동김씨 대동보 (상서공 기준으로)
⊙ 5대조 叔承
--- 공부시랑 평장사
--- 공으로부터 비로소 안동에 봉해졌다.
⊙ 고조 日兢
--- 금자광록대부 상서 우복야 삼한공신 태사대광
--- [조선씨족통보]에 안동김씨 시조는 일긍이다. 라고 한 것은 와전이다.
⊙ 증조 利請
--- 상락군 (안동태수)
--- 공은 고령 즉 안동에 거주하였다. [여지승람 본부 인물기]에 世載名德 受籍安東 自公始 라고 기록
⊙ 조 義和
--- 위위부 주부 (예부시랑)에 추봉
⊙ 부 敏成
--- 문과
--- 한림직사관 겸 장치서령을 지내고, 상서 우복야에 추봉
--- 묘는 안동부 西一息 화림촌에 있다.
⊙ 백형 孝恭
--- 敞으로 개명, 고려 희종조 문과
--- 문하시랑 평장사 판이부사 諡號 文簡
--- 공의 성품이 온화하고 남에게 오만하지 않았으며, 임종시 조카 方慶등에게 예장으로 하지 말 것을 부탁하였다 하는 사실이 여사와 승람에 보인다.
●孝印
--- 고려희종 戊辰(무진) 문과
--- 정의대부 병부상서 한림학사 지제고를 지내고, 금자광록대부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 수문전 태학사 판이병부 어사대사 중서령에 추봉
--- 고종 癸丑(계축) 11월 15일 졸
--- 배는 금관국대부인 금녕송씨로 신호위 정용 낭장 宋耆의 따님이다.
公性嚴毅 善隸字 文章事業 傑出一世 事見勝覽 師事致仕英烈公琴儀 名冠士林 早年登第 世稱琴學士 玉筍門生 筆跡在 淸河內延寺 靈巖道甲寺 康津月南寺 遺基等地 而俱以君命書碑文
공은 성품이 엄숙하고 굳셌으며, 예서(隸書)를 잘 썼다. 문장(文章)과 사업(事業)이 한 시대에 걸출(傑出)하였으니, 그 일은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보인다. 나이가 들어 벼슬을 그만 둔 영열공(英烈公) 금의(琴儀)를 스승으로 모셨는데, 이름이 사림에서 으뜸이었다.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니 세상에서 칭하기를 “금학사옥순문생(琴學士玉筍門生)”이라 하였다. 필적이 청하(淸河)의 내연사(內延寺), 영암(靈巖)의 도갑사(道甲寺), 강진(康津)의 월남사(月南寺) 등지에 있는데, 모두 임금의 명으로 비명(碑銘)을 쓴 것이다.
* 琴儀 : 1153~1230. 初名은 克儀, 字는 節之, 本官은 奉化, 諡號는 英烈.
* 琴學士玉筍門生 : 금학사의 옥순과 같이 뛰어난 문생들. 경기체가의 첫 장의 일부.
⊙ 제 효구 (孝 ?)
--- 동정을 지내고
--- 아들 유선 (惟善)은 검교감 군기감을 지냈다.
⊙ 제 효수 (孝 ?)
--- 상락백 밀직부사를 지내고
--- 아들 천석(天錫)이 있다.
⊙ 제 효조 (孝祖)
--- 좌정승, 상락후를 지내고
--- 아들 천필(天弼)이 있다.
⊙ 여제는
--- 宰臣 윤행에게 출가하였다.
⊙ 1자 方慶 ---생략---
⊙ 2자 之慶
--- 밀직부사, ★동경유수
--- 아들 성은 한림학사 문하시랑을
--- 성의 아들 영유는 좌정승, 계림군을, 영수는 중서시랑 평장사를 지냈다.
⊙ 3자 玄慶
--- 좌정승, 시호 忠順
--- 아들 준은 첨의찬성사 (배는 찬성사 왕창의 따님)
--- 준의 아들 영성은 정당문학 합문지후를 지내고, 영성의 아들 격은 공조전서를 지내고 (배는 야은 길재의 따님)
--- 준의 아들 영규는 문과급제, 전서 수성백을 지내고 시호 文惠. 역성최씨하여 수성최씨의 시조가 되었다.
--- 준의 아들 영기는 대인 도의사를 지내고, 영기의 아들 약은 사정을, 약의 아들 士文은 평의시중랑을 지냈다.
⊙ 사위
--- 강분은 박주수령을 지내고, 권천은 연주수령을 지냈다.
▣ 김윤만 -
▣ 김윤식 -
▣ 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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