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개통 3일만에 사형을 면한 김구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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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3-08-06 19:35 조회1,455회 댓글0건본문
백범일지에 의하면 병신년 윤3월 10일 이었다고 한다. 당시 김구는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위해 청천강 하류의 치하포에서 일본육군 중위인 도다를 살해하고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인천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고종에게 알려지자 고종은 인천감리 이재정을 전화로불러 사형집행을 면하게 하였는데 그때가 1896년 윤 8월26일로 전화가 개통된지 3일째되는 날이었다고 한다.
만일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화개통이 아니되었던들 아무리 우의로서 김구선생를 살리려했던들 김구선생의 운명은 역사에 크게남지 못할번 했다.
백범일지의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의 최초의 전화는 1896년 윤 8월23일에 서울과 인천간에 개통되었음을 알수있다
▣ 솔내영환 -
▣ 김항용 -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도착하시자 마자 --
▣ 김윤식 - 그렇네요. 태서 아저씨 불씨가 확 살아오르네요. 아침에 급히 다녀올 데가 있어서 이제야 답사 보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작성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 김정중 - 고마운 전화~~~~ 그리고 인터넷~~~
▣ 김발용 -
▣ 김주회 -
▣ 김영윤 - 여독도 풀리지 않으셨을텐데...감사합니다
▣ 김윤만 -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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