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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학용어-01 (字자, 銜字함자, 諱字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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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1-10-25 17:26 조회2,2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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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학용어-01 (字자, 銜字함자, 諱字휘자)





▣ 이름자



○ 요사이는 이름을 하나로 부르지만 옛날에는 여러 가지로 불렀는데, 어렸을 때 부르는 이름은 兒名(아명)이고, 우리가 익히 하는 字(자)는 20세가 되면 요즘의 성년식과 같이 冠禮(관례)를 행하는데, 여기에는 식을 주례하는 주례자가 있어 예식을 거행함과 함께 지어준 이름이다.



또한 가문의 항렬자에 따라 족보에 오르는 항명(行名)과 특별히 따로 부르는 別號(별호)가 있다.





○ 우리는 보통 웃어른들의 이름자(名字)를 말할 때 결례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살아 계신 분에 대하여는 銜字(함자)라 하고, 돌아가신 분에 대하여는 諱字(휘자)라고 하며, 여기에는 이름자 사이에 字를 넣어서 부르거나 글자 뜻을 풀어서 말하는 것이 예의이다. (예 : 陽奎 - 陽자, 奎자 또는 볕陽 자에 별奎 자를 쓰십니다.)











▣ 자字 : 남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붙이는 이름.



○ 중국에서 비롯된 풍습으로, 본명이 태어났을 때 부모에 의해 붙여지는 데 비해 자는 윗사람이 본인의 기호나 덕을 고려하여 붙이게 되며 자가 생기면 본명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본명을 휘명(諱名)이라고도 한다.



흔히 윗사람에 대해서는 자신을 본명으로 말하지만 동년배 이하의 사람에게는 자를 쓴다. 다른 사람을 부를 때도 자를 사용하나 손아래 사람인 경우, 특히 부모나 스승이 그 아들이나 제자를 부를 때는 본명을 사용한다.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제자 안연(顔淵)을 회(回), 자공(子貢)을 사(賜)라 부르고 있다.



또 공자는 본명을 구(丘), 자를 중니(仲尼)라고 했는데 중(仲)은 아우라는 뜻으로 공자에게는 형이 있었으므로 이렇게 지었고, 니(尼)는 그가 이산(尼山)에 기도를 드려 낳은 아들인 것에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이 습속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는 설총(薛聰)의 자가 총지(聰智)였던 것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자의 사용이 보편화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동시대인인 원효(元曉)는 자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 근세의 유학자들이 중국을 본떠 자를 많이 사용하였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관례冠禮 : 사례(四禮)의 하나인 성년례(成年禮).



○ 남자는 상투를 짜고, 여자는 쪽을 찐다. 보통 결혼 전에 하는 예식으로, 15∼20세 때 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부모가 기년(朞年) 이상의 상복(喪服)이 없어야 행할 수 있다. 또 관자(冠者)가 《효경(孝經)》 《논어(論語)》에 능통하고 예의를 대강 알게 된 후에 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 관례를 혼례(婚禮)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미혼이더라도 관례를 마치면 완전한 성인(成人)으로서의 대우를 받았다.





○ 음력 정월 중의 길일을 잡아 행하는데, 관자는 예정일 3일 전에 사당(祠堂)에 술과 과일을 준비하여 고(告)하고, 친구 중에서 덕망이 있고 예(禮)를 잘 아는 사람에게 빈(賓)이 되기를 청하여 관례일 전날에 자기 집에서 유숙(留宿)하게 한다.



당일이 되면 관자·빈·찬(贊:빈을 돕는 사람)과 그 밖의 손님들이 모여 3가지 관건(冠巾)을 차례로 씌우는 초가(初加)·재가(再加)·삼가(三加)의 순서가 끝나고 초례(醮禮)를 행한 뒤 빈이 관자에게 자(字)를 지어 준다.





○ 예식이 끝나면 주인(主人:관례의 주재자)이 관자를 데리고 사당에 고한 다음 부모와 존장(尊長)에게 인사를 하고 빈에게 예를 행한다. 여자는 15세가 되어 비녀를 꽂는 것을 계(몄)라 하고, 혼인 뒤 시집에 가서 사당에 고하고 비로소 합발(合髮)로 낭자하여 성인이 된다.



이와 같이 남자는 관례, 여자는 계례(몄禮)를 행한 뒤에야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었으며, 갓을 쓰지 못한 자는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언사(言辭)에 있어서 하대를 받았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휘諱 :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왕이나 제후 등이 생전에 쓰던 이름.



○ 원래는 죽은 사람의 생전의 이름을 삼가 부르지 않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인데, 후에는 생전의 이름 그 자체를 휘라 일컫게 되었다. 죽은 이의 이름자를 피하는 휘의 풍속은 진(秦)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진나라 때는 피휘(避諱)만이 아니라 생휘(生諱:생전에 그 이름을 피하는 일)까지도 행하여져 진시황의 이름인 정(政)은 ‘正’으로 결필(缺筆)되었다 한다.



피휘의 방법으로는 대자(代字) ·개자(改字) ·결자(缺字) ·결획(缺畵:缺算)의 법이 행하여졌으며, 휘 때문에 관명(官名) ·지명(地名) ·물명(物名) 등이 개폐(改廢)된 일은 허다하다.





○ 한국에 이 휘법이 언제 들어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삼국시대의 금석문(金石文) 또는 사서(史書)에는 피휘 ·결필한 것이 많다.



신라 문무왕릉비에는 이것을 세운 날짜를 ‘甘五日景辰建碑’라고 되어 있고, 또 신라 진성왕 때 세운 숭복사비문(崇福寺碑文)에는 ‘寶曆景午春’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경진(景辰)과 경오(景午)는 당(唐)나라 고조의 아버지 이름 병(昞)의 음을 피하기 위하여 병진(丙辰) ·병오(丙午)를 경(景)자로 바꾼 것이다.





○ 한국 왕의 휘를 피한 것으로 금석문에 나오는 것은 고려 때부터이다. 봉암사(鳳巖寺) 정진대사탑비문(靜眞大師塔碑文)에 ‘上領文虎兩班及僧官’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의 문호양반(文虎兩班)은 곧 문무(文武) 양반으로, 무(武)는 고려 혜종(惠宗)의 휘이므로 이를 피하여 호(虎)를 쓴 것이다.



이상의 금석문 외에도 《균여전(均如傳)》 《삼국사기》 《삼국유사》 및 고려시대의 각판(刻板)에는 피휘와 결필이 많이 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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