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학용어-02 (號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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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1-10-26 17:15 조회2,244회 댓글0건본문
보학용어-02 (號호)
우리 선안동(구안동)김씨 선조들의 號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호를 가장 많이 가진 분은 안정공파 ★金紐(김뉴)로서 호가 琴軒, 翠軒, 雙溪齋, 觀後庵, 上洛居士 (금헌, 취헌, 쌍계재, 관후암, 상락거사) 등입니다.
고려조 ★金永暾(김영돈) 호 筠軒(균헌)
고려조 ★金永煦(김영후) 호 穩齋(온재)
문온공파 ★金九容(김구용) 호 若齋, 六友堂 (척약재, 육우당)
안렴사공파 ★金士廉(김사렴) 호 梧隱(오은)
익원공파 ★金士衡(김사형) 호 洛圃(낙포)
정의공파 ★金哲(김철) 호 陽坡(양파)
정의공파 ★金成景(김성경) 호 三林(삼림)
정의공파 ★金成浩(김성호) 호 三山(삼산)
군사공파 ★金墩(김돈) 호
익원공파 ★金,石+質(김질) 호 雙谷(쌍곡)
전서공파 ★金壽寧(김수녕) 호 素養堂(소양당)
안정공파 ★金紐(김뉴) 호 琴軒, 翠軒, 雙溪齋, 觀後庵, 上洛居士 (금헌, 취헌, 쌍계재, 관후암, 상락거사)
익원공파 ★金,石+昔(김작) 호 相谷(상곡)
익원공파 ★金壽童(김수동) 호 晩保堂(만보당)
익원공파 ★金壽卿(김수경) 호 養間齋(양간재), ?養閑齋(양한재)
익원공파 ★金質(김질) 호 永慕堂(영모당)
도평의공파 ★金光粹(김광수) 호 松隱(송은)
안렴사공파 ★金公亮(김공량) 호 楊谷(양곡)
익원공파 ★金湜(김식) 호 治隱(치은)
?분파 ★金百鈞(김백균) 호 十景(십경)
서운관정공파 ★金希壽(김희수) 호 悠然齋(유연재)
서운관정공파 ★金魯(김노) 호 東 (동고)
안렴사공파 ★金澍(김주) 호 寓菴(우암)
익원공파 ★金德龍(김덕룡) 호 駱谷(낙곡)
제학공파 ★金忠甲(김충갑) 호 龜岩(구암)
제학공파 ★金悌甲(김제갑) 호 毅齋(의재)
서운관정공파 ★金弘度(김홍도) 호 南峰, 萊峯 (남봉, 래봉)
익원공파 ★金瓚(김찬) 호 訥菴(눌암)
제학공파 ★金時晦(김시회) 호 養眞齋(양진재)
제학공파 ★金時獻(김시헌) 호 艾軒(애헌)
제학공파 ★金時讓(김시양) 호 荷潭(하담)
문온공파 ★金 (김확) 호 金沙(금사)
서운관정공파 ★金,目+卒(김수) 호 夢村(몽촌)
서운관정공파 ★金瞻(김첨) 호 荷塘, 南岡, 東岡 (하당, 남강, 동강)
서운관정공파 ★金誠立(김성립) 호 西堂(서당)
서운관정공파 ★金正立(김정립) 호 老隱(노은)
제학공파 ★金緻(김치) 호 南峰, 深谷 (남봉, 심곡)
제학공파 ★金得臣(김득신) 호 栢谷, 龜石山人 (백곡, 귀석산인)
익원공파 ★金自點(김자점) 호 洛書(낙서) ?洛西(낙서)
제학공파 ★金素(김소) 호 養拙窩(양출와)
서운관정공파 ★金振(김진) 호 峯(격봉)
익원공파 ★金以鏡(김이경) 호 拙齋(졸재)
제학공파 ★金徽(김휘) 호 四休亭, 晩隱 (사휴정, 만은)
익원공파 ★金 (김전) 호 於考(어고)
익원공파 ★金 (김환) 호 樂涯(낙애)
안렴사공파 ★金天柱(김천주) 호 書眼(서안)
안렴사공파 ★金復元(김복원) 호 忍窩(인와)
도평의공파 ★金士元(김사원) 호 晩翠堂(만취당)
도평의공파 ★金宗德(김종덕) 호 川沙(천사)
도평의공파 ★金宗發(김종발) 호 容淵(용연)
서운관정공파 ★金會明(김회명) 호 石公(석공)
안렴사공파 ★金泰基(김태기) 호 無爲堂(무위당)
익원공파 ★金孝建(김효건) 호 警絃翁, 警翁 (경현옹, 경옹)
▣ 號(호)
본 이름이나 자(字) 외에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
본 이름을 부르는 것을 피하는 풍속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한국이나 중국 등 주로 동양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이래로 호가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일반 ·사대부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보편화되었다.
중국의 경우 호는 당나라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송나라대에 이르러 보편화되었다. 당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인 이태백(李太白)이나 송나라의 문장가 소동파(蘇東坡)는 그의 본 이름인 이백(李白)이나 소식(蘇軾)보다도 호가 널리 알려진 경우이다.
호의 사용이 정착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학자들간에 학문적 교류와 편지 교환이 일반화되면서 본 이름보다는 호나 자를 사용하는 것이 예의를 차리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호는 대부분이 거처하는 곳이나 자신이 지향하는 뜻, 좋아하는 물건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거처하는 곳이 바뀜에 따라 호가 달리 사용되기도 했으며, 좋아하는 물건이 여럿인 경우 호는 늘어나게 마련이었다.
호는 집안에서 사용한다는 의미의 당호(堂號)와 시 ·서 ·화 등에 쓰는 아호(雅號)로 나누어지기도 했으나, 양자간에는 뚜렷한 구별이 없이 혼용되었다.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문신 이규보(李奎輔)의 경우는 초기에는 시 ·술 ·거문고 세 가지를 좋아하여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호하였다가 나중에는 구름에 묻혀 있는 자신의 처지를 좋아하여 백운거사(白雲居士)로 호를 바꾸기도 했다.
조선 중기 이후로 호의 사용은 더욱 확대되었으며 주로 자신이 학문을 배우고 가르친 곳을 호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황의 퇴계(退溪), 이이(李珥)의 율곡(栗谷), 서경덕(徐敬德)의 화담(花潭) 등이 대표적이며, 이들 문인들을 지칭할 때도 퇴계문인 ·화담문인 ·율곡문인 등으로 호를 사용하였다. 성리학자 조식(曺植)의 호 남명(南冥)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용어로서 노장사상에 관심을 가진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표현하였다.
호가 가장 많았던 사람은 조선 후기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로서, 알려진 것만 해도 약 500여 개가 된다. 김정희가 많은 호를 사용한 것은 시 ·서 ·화에 두루 능하였던 예술인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의 대표적인 호는 추사 ·완당(阮堂) ·예당(禮堂) ·시암(詩庵) ·선객(仙客) ·불노(佛奴) ·방외도인(方外道人) 등으로서 유 ·불 ·도 삼교사상을 망라하는 호를 사용한 것이 주목된다.
조선 후기 이래로 호 사전의 성격을 띤 많은 ‘호보(號譜)’들의 편찬은 호의 사용이 일반화되었던 당시 상황을 반영해주고 있다.
1945년에 편찬된 《대동명가호보(大東名家號譜)》에는 호를 유형별로 분석하고 있는데, 당(堂) ·암(巖) ·실(室) 등으로 끝나는 호가 많았다. 내용별로는 자신이 거주했던 곳이나 인연이 있었던 곳을 따서 지은 경우와, 인생관이나 수양목표를 한 경우, 완호물(玩好物)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일제강점기에서는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주시경(周時經)의 ‘한힌샘’, 최현배(崔鉉培)의 ‘외솔’ 등의 호가 나타났으며, 순수문학을 지향하던 김정식(金廷湜)의 소월(素月), 박영종(朴泳鍾)의 목월(木月) 등의 호도 우리에게 이름보다는 친숙하게 다가온다. 이 외에 이상백(李相佰)의 호 상백(想白)과 시조시인 이호우(李鎬雨)의 호 이호우(爾豪愚)는 이름과 호의 음을 같게 한 경우이다.
오늘날에는 사회체제가 다원화되면서 2종 이상을 쓰는 호보다는 자신의 실명(實名)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문학 ·예술 등 일부 분야에서 호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호를 통하여 당시 인물들의 세계관과 인생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號譜(호보)
삼국시대~조선 후기의 주요 인물을 그 호(號)의 종류에 따라 분류하고 그들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붙인 책.
구분 : 필사본
시대 : 조선 후기
필사본. 6권 6책. 편자 미상. 정조 이후의 묘호(廟號)가 나타나지 않고 인물도 정조 때의 인물까지 수록된 점으로 보아 순조 때쯤 편찬된 것으로 보이며, 몇 종의 이본(異本)이 있다.
첫권에서는 호의 형태, 즉 <이자당호(二字堂號)> <일자당호(一字堂號)> <삼자재호(三字齋號)> <이자재호(二字齋號)> 등과 같은 방식으로 당(堂) ·재(齋) ·암(菴) 등 호의 끝 글자가 같은 호끼리 분류하여 약 2,500명의 호와 성명을 정리하고, 별호(別號)가 있는 경우 중복하여 실었다.
둘째 권부터는 이(李) ·조(趙) ·김(金) ·박(朴) 등 50여 개의 성씨별로 분류하여 호와 성명을 제시하고, 그 사람의 자(字) ·본관 ·혈연관계 ·사우(師友)관계 ·등과(登科) ·관직 ·일화(逸話) ·문집 유무 ·배향(配享) 사실 등을 수록하였다. 수록 인물은 대부분 조선시대의 인물이지만 그 전시대의 인물도 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大東名家號譜(대동명가호보)
조선 후기에 송주헌(宋柱憲)이 편찬한 호보(號譜).
구분 : 석판본
저자 : 송주헌
시대 : 조선 후기
소장 : 규장각도서
석판본. 2책. 규장각도서. 권두에 송주헌과 김영한(金寧漢)의 서문이 있는데, 김영한은 입덕(立德) ·입공(立功) ·입언(立言)의 업적에 관계된 인물을 영원히 기억하려는 의도에서 이 책을 편찬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편찬연대는 미상이나, 간지가 을해(乙亥)이고 고종대의 인물인 우당(愚堂) 윤희구(尹喜求:1867~1926) 등이 수록된 것으로 보아 1945년으로 추정된다.
상 ·하 2책으로 각 호의 끝자가 같은 인물을 함께 수록하였으며, 같은 호인 경우에는 시대순으로 정리하였다. 상책에는 68종의 호를 수록하였으며, 하책에는 231종의 호를 수록하였다.
호보에 수록된 호를 유형별로 보면, 거주지를 근거로 한 호가 가장 많으며, 인생관과 수양 목표, 좋아하는 물건을 호로 삼은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여러 종의 호를 가진 경우에는 각각의 호를 모두 기재하였으며, 다만 그에 관한 사적은 가장 알려진 호 밑에 기록하였다.
인물의 사적부분에는 자(字) ·본관 ·세계(世系) ·과거입격여부 ·관직 ·문인관계 ·배향서원 ·시호 및 인물의 품성 등을 간략히 기재하였다. 이 책은 호만 알고 이름을 모르는 불편함을 해소해 주는 책으로서, 문집을 비롯한 각종 사료를 이해하는 데 기초 자료가 되며, 호를 통하여 당시 지식인의 인생관과 삶의 단편적인 모습도 알 수 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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