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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서공(휘 휘) 서찰자료 발견 및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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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3-08-23 17:42 조회1,3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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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제2회 여름캠프시 주회(안) 대부님께서 제게 전해 주셨던 자료입니다. 판서공 김휘(하담 김시양 子)의 친필 서찰입니다. 지난 7월 경 주회대부님께서 국립중앙도서관의 고전문헌실 <운곡보첩>속에 실려 있는 귀한 자료를 찾아 내신 것입니다. 주회대부님 감사합니다.  친필 서찰로는 3번 째 찾은 자료입니다. 곧 분석하여 알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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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곡보첩>(판서공의 서찰이 실려있는 서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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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서공 친필>

 

김 휘(金 徽) 1607(선조40)∼1677(숙종3).

조선의 문신. 화가. 字는 돈미(敦美), 호는 사휴정(四休亭)·만은(晩隱), 시양(時讓)의 아들. 1642년(인조20)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봉교(奉敎)가 되었고, 1646년(인조 24년) 민회빈(愍懷嬪) 강씨가 억울하게 사사(賜死)되자 정언(正言)으로 재직하면서 사사(賜死)의 배후를 규명하라고 상소를 했다가 파직되었다.

1649년(효종즉위) 부수찬(副修撰)에 기용, 이조 좌랑과 정랑(吏曹正郞), 교리(校理), 응교(應敎), 헌납(獻納), 사간(司諫), 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현종 연간에는 충청도 관찰사, 도승지 (都丞旨), 함경도 관찰사를 거쳐 1665년(현종6)에는 경상도 관찰사에 이어 강화유수, 황해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666년 남인(南人)의 탄핵으로 삭직(削職) 당했다가 1668년(현종 9)에 형조 참판(刑曹參判)이 되고, 대사헌을 거쳐 1675년(숙종1) 이조판서를 지내고 이듬해 예조판서, 개경유수(開京留守)를 역임하였다. 그림을 잘 그렸다.




▣ 김주회 - 또 하나의 보물 발견!!! 기쁩니다.
▣ 김상석 - 주회님의 열의와 집념이 큰 힘이 됩니다.
▣ 김윤만 - 선조님들의 귀중한 자료 하나하나가 쌓여가는 즐거움을 어디에다 비하겠습니까?
▣ 김윤식 - 문중 보물이 또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주회 대부님 노고가 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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