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급암집(及菴集)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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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3-08-24 06:18 조회1,591회 댓글0건본문
▣ 급암집(及菴集) 해제 ▣
--민사평(閔思平 : 1295, 충렬왕21-1359 공민왕8)의 자(字)는 탄부(坦夫)요 호는 급암(及菴)이다. 충주(忠州) 여흥(驪興) 사람으로 선대는 여러 대에 걸쳐 관직이 혁혁했던 명문가의 출신이었다. 학문을 열심히 닦아 충숙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예문관(藝文館), 춘추관 수찬(春秋館修撰)에 보직되었으며 후에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 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하고 여흥군(驪興君)으로 봉호되었으며 충정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 즉위에 노고가 많아 찬성사상의회의도감사(贊成事商議會議都監事)에 오르고 공신의 호를 받았다.
--물러나 한가로이 지내기 8년, 공민왕 8년(1359) 65세를 일기로 마쳤다. 묘지명을 쓴 이달충(李達衷)은, "그는 관리로서의 처사에서 어디에 기울어짐이 없이 한결같이 의리를 따를 뿐이었다. 시와 술을 스스로 즐기니 탄탄한 군자였다. 공을 바라볼 때 선비들의 풍모가 지금이 옛날같지 못하다는 말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이 작고한 지금에는 나도 허희탄식하면서 지금이 옛날만 못하다 한 선인들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다." 하였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급암이 당시에 받았던 신망을 알만하다.
--급암집은 <급암선생시집(及菴先生詩集)>이라하여 5권이 전하고 있다. 제목이 시집이라 한 것처럼 모두가 시만 수록되어 있고, 5권의 말미에 사(詞). 소(疏) 몇 편이 수록되어 있다. 번역의 원본은 그의 문생 경상도 안렴사 이이(李이 * 율곡 이이가 아님)1370년 목판으로 간행한 것으로 판형이나 각자가 고르지 못하여 판독에 어려운 곳도 많다. 번역으로 선정한 부분은 되도록 오독이 없도록 노력하였으나 간혹 잘 못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급암의 시는 묘지를 쓴 이달충(李達衷)의 표현처럼 시와 술로 즐겼기에, 당시의 문사들과의 수답이 많다. 이 점은 당시의 문단 상황을 짐작함에 있어 조그마한 자료가 될 수 있겠다.
--그 밖에 익재 이제현의 소악부에 영향되어 주고 받은 소악부 6수는 당시 속요와의 연관을 짐작하기에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출전 : 국역 급암집, 고대민족문화연구소, 1993≫
▣ 김태서 -
▣ 김윤식 -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 김발용 - 잘 보았습니다.
▣ 솔내!!! -
--민사평(閔思平 : 1295, 충렬왕21-1359 공민왕8)의 자(字)는 탄부(坦夫)요 호는 급암(及菴)이다. 충주(忠州) 여흥(驪興) 사람으로 선대는 여러 대에 걸쳐 관직이 혁혁했던 명문가의 출신이었다. 학문을 열심히 닦아 충숙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예문관(藝文館), 춘추관 수찬(春秋館修撰)에 보직되었으며 후에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 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하고 여흥군(驪興君)으로 봉호되었으며 충정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 즉위에 노고가 많아 찬성사상의회의도감사(贊成事商議會議都監事)에 오르고 공신의 호를 받았다.
--물러나 한가로이 지내기 8년, 공민왕 8년(1359) 65세를 일기로 마쳤다. 묘지명을 쓴 이달충(李達衷)은, "그는 관리로서의 처사에서 어디에 기울어짐이 없이 한결같이 의리를 따를 뿐이었다. 시와 술을 스스로 즐기니 탄탄한 군자였다. 공을 바라볼 때 선비들의 풍모가 지금이 옛날같지 못하다는 말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이 작고한 지금에는 나도 허희탄식하면서 지금이 옛날만 못하다 한 선인들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다." 하였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급암이 당시에 받았던 신망을 알만하다.
--급암집은 <급암선생시집(及菴先生詩集)>이라하여 5권이 전하고 있다. 제목이 시집이라 한 것처럼 모두가 시만 수록되어 있고, 5권의 말미에 사(詞). 소(疏) 몇 편이 수록되어 있다. 번역의 원본은 그의 문생 경상도 안렴사 이이(李이 * 율곡 이이가 아님)1370년 목판으로 간행한 것으로 판형이나 각자가 고르지 못하여 판독에 어려운 곳도 많다. 번역으로 선정한 부분은 되도록 오독이 없도록 노력하였으나 간혹 잘 못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급암의 시는 묘지를 쓴 이달충(李達衷)의 표현처럼 시와 술로 즐겼기에, 당시의 문사들과의 수답이 많다. 이 점은 당시의 문단 상황을 짐작함에 있어 조그마한 자료가 될 수 있겠다.
--그 밖에 익재 이제현의 소악부에 영향되어 주고 받은 소악부 6수는 당시 속요와의 연관을 짐작하기에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출전 : 국역 급암집, 고대민족문화연구소, 1993≫
▣ 김태서 -
▣ 김윤식 -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 김발용 - 잘 보았습니다.
▣ 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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