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첨과 정해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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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3-08-28 08:01 조회1,595회 댓글0건본문
○ 송국첨(宋國瞻)이 졸하였다.
국첨은 일찍이 김창(金敞)과 함께 최이를 아첨으로 섬겼으나, 그 본성은 강직하고 아부하지 않아서 최이 역시 그를 꺼렸다. 항이 정권을 이어받자 화가 미칠까 두려워 세상에서 물러나 숨이 살았으나, 이때에 이르러 지서북면 병마사(知西北面兵馬事)가 되었는데 울분 속에 죽었다.
6월찬성사정해(鄭?)가 졸하였다.
해(?)는 의(?)의 손자로 처음에는 필도치(必?赤)가 되어 이혼(李混)ㆍ윤보(尹珤)와 이름을 나란히 드날렸다. 뒤에 전주(銓注)를 맡아서는 법을 지키고 공정하여, 비록 왕의 총애를 받고 권세를 부리는 자가 왕의 뜻이라 하여 청탁하여도 듣지 않았다. 이해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는데 장자빈(張子贇)ㆍ한종유(韓宗愈)ㆍ김영돈(金永旽)은 모두 그가 뽑은 사람들이다. 학사연(學士宴)에서 왕이 글씨 족자를 내렸는데, 해가 기뻐서 펴보니, 그 한 연구에,
모든 일은 이루어지지 않고 몸은 문득 죽네 / 萬事不成身便死
하였다. 해는 얼굴빛이 변하고 좌객은 소스라쳐 놀랐는데, 얼마 안 있다가 졸하였다. 시호는 장경(章敬)이다.
▣ 김윤식 - 영상시 CD 관계로 바쁘실 텐데 이렇게 할아버지 자료까지 찾아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 김상석 - 여말 정계의 이면을 빼곡히 올려 주시어 흡족 합니다.
▣ 김항용 - 새 자료들입니다. 출전을 함께 알려주시면 홈에 올리겠습니다.
▣ 김태서 - 출전은 동사강목 입니다.
▣ 김주회 - 송국첨은 김창 선조님과, 정해는 김영돈 선조님과의 인연! 기억하겠습니다.
▣ 김윤만 - 귀한 자료 발굴 축하드립니다.
▣ 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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