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백범선생 신문기사 (5-8월)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3-09-02 19:04 조회1,476회 댓글0건

본문

백범선생 신문기사 (5-8월)



■(소년조선 : 2003.08.31)

일제에 끌려 가는 연기 "눈물 절로…"



◇ 지난달 30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 강당에서 어린이들이 일본군에 징집돼 가족이 떠나는 장면을 실감나게 연기하고 있다.



“조센징은 들어라. 내일까지 각 가정에선 건장한 청년과 처녀를 한 명씩 마을 회관 앞으로 보내라. 대일본제국의 성스런 전쟁에 참여시키기 위해서다!”

일본군 역할을 맡은 연극 지도 교사가 굵은 목소리로 소리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를 어쩌나. 우리 동포들 다 죽게 생겼네.”



“아범아, 너는 옷장 속에 숨어있으렴.”



백범학술원이 주최하고 백범기념관 후원으로 마련된 ‘연극 놀이로 만나는 역사’ 수업이 열린 지난달 30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 강의실에는 초등 4~5학년생 15명이 모여 백범 김구 선생이 살았던 시절의 장면을 연기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기념관을 관람하는 것으로만 끝나던 한국 근ㆍ현대사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것. 어린이ㆍ청소년 연극 교육 단체 ‘북새통’의 강사들이 어린이들에게 백범이 살던 시대 현실을 귀띔해주면 아이들끼리 모여 ‘그때 사람들은 어떠한 생각을 갖고 행동했을까?’를 의논한 뒤 연극으로 재연해보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먹을 것이 없어 걱정하는 가정의 모습, 광복군의 훈련 장면, 전쟁터로 징집되는 가족의 생이별 등 어린이들이 만든 장면은 시대 변화에 따라 차례로 이어졌다. 종군 위안부로 끌려가는 처녀의 역할을 맡아 부모님께 큰절을 하며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연기 도중 눈물을 왈칵 터뜨려버린 백아영(인천 만월초등 4년) 양은 “연극을 하면서 역사 공부를 재미있게 하고 싶었던 게 처음 목표였는데 막상 연기를 해보니 ‘그때 사람들이 얼마나 슬펐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저절로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의 연극 놀이 장면을 지켜보던 ‘북새통’의 남인우(29세) 강사는 “한 편의 연극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어린이들이 창의적으로 표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스스로 깨우치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시작해 오는 27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될 이 연극 놀이 프로그램은 앞으로 기념관의 상설 프로그램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 정범석 기자 ssac@chosun.com











■(조선일보/사람들 : 2003.08.27)

◆ 정경환(鄭京煥·동의대 교수) 백범사상연구소장 은 30일 오후 2시 부산시 북구 금곡동 소재 백범사상연구소에서 ‘북한핵, 어떻게 풀 것인가?’를 주제로 제2회 백범시민강좌를 연다.











■(소년조선 : 2003.07.23)

`어린이 백범 학교` 개최



백범 김구 선생의 나라 사랑·겨레 사랑을 배우는 ‘제23회 어린이 백범 학교’가 다음달 7일부터 3일 과정으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www.kimkoo.or.kr)에서 열린다. 효창원 선열 묘소 참배, 독립군 노래와 민요 부르기, 한국 현대사를 주제로 한 연극 놀이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초등학교 4~6년 대상.

참가비 1만 원(☎ 02-719-1311).











■(조선일보/사람들 : 2003.07.22)

◆ 정경환(鄭京煥·동의대 교수) 백범사상연구소장은 26일 오후 2시 부산시 북구 금곡동 백범사상연구소에서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를 초청, ‘백범이 걸어 온 길’을 주제로 제1회 백범시민강좌를 연다.











■(조선일보/사회 : 2003.06.26)

백범 54주기 추모식 열려



▲ 26일 서울 효창원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김구선생 54주기 추모식에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연합



백범 김 구 선생 54주기 추모식이 26일 오전 서울 효창원공원에서 고인의 가족과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 민주당 정대철(鄭大哲)대표 등 각계인사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박 의장은 추모사에서 “북한핵 문제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워지고 있는데도 국론 분열은 점점 더 심해져가고 있고 국민은 불안감속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국민의 애통한 가슴을 어루만지고 눈물을 닦아준 선생님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고 말했다.

박 의장은 이어 “대한민국의 뿌리가 임시정부인 것처럼 국회의 뿌리는 임시의정원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며 “선생님의 헌신과 절제, 겸손의 가르침에따라 21세기 선진국가, 문화민족이 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추모식에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조화를 보냈으며, 민주당 이만섭(李萬燮)이재정(李在禎) 문석호(文錫鎬) 이희규(李熙圭) 의원과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 의원, 신상우(辛相佑)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등이 참석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선일보/문화 : 2003.06.25)

[역사속의 오늘] 6월26일



<국내>

▲金九, 경교장에서 암살당해



1949년 6월 26일 낮 12시30분, 서울 경교장(현재의 강북 삼성의료원)에 갑자기 4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육군 소위 안두희가 조국광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백범 김구 선생에게 쏜 총소리였다. 73세 노혁명가의 목숨을 앗아간 안두희는 손에 권총을 쥔 채로 “선생은 내가 죽였어!”라고 태연하게 말하며 검거에 순순히 응했다. 범인이 확보되고 철저하게 준비된 암살이었음도 밝혀져 사건의 전모가 곧 드러날 것으로 예상됐으나 사건은 지금까지도 배후설만 난무할 뿐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먼저 신병을 확보한 헌병대가 범인을 감방에 가두기는커녕 의무실에 보호조치한 점, 임정계열인 헌병사령관을 이튿날 춘천지구로 전격 발령한 점 등이 의문이었다. 특무대로 넘겨진 안씨에게 김창룡이 “안의사, 수고했소”라고 격려하며 술·담배 등을 제공한 사실은 의혹을 더욱 부채질했다. 무기징역을 언도받았으나 6·25 발발과 함께 특사조치로 석방돼 육군 중령으로 복귀한 점 역시 배후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었다. 배후에 대한 물증은 없고 심증만 구구한 채 54년의 세월이 흘렀다.











■(조선일보/사회 : 2003.06.04)

백정기 의사 유해 발굴 사진 공개



▲ 윤봉길,이봉창과 함께 3의사 중 한명으로 꼽히는 백정기 의사의 상하이 육삼정 의거 직후 사진./연합



서울 효창원에 윤봉길.이봉창과 함께 3의사 중한 명으로 안장된 독립운동가 구파(鷗波) 백정기(白貞基.1896-1934) 의사 유해를 해방 직후 한국으로 봉환하기 위해 발굴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상임이사이자 윤봉길 조카인 윤주(尹洲.57)씨는 백범김구가 주도한 해외 독립운동가 유해 봉환 사업 일환으로 1946년 2월 일본 나가사키현 이사하야(諫早) 형무소 묘지에서 백 의사 유해를 발굴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 1장을 찾아내 4일 공개했다.



이 사진에는 ’故白義士之遺骨’(고백의사지유골. 돌아가신 백 의사의 유골)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인부를 포함해 남자 8-9명이 백 의사 유해를 묘지에서 파낸 다음 그 묘지를 덮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 사진에 대해 한국독립운동사 연구 권위자인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는 “윤봉길.이봉창 의사 유해 발굴 장면은 더러 사진으로 남아있어 당시 실상을 엿볼 수 있으나 백 의사 유해 발굴 사진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윤주씨는 이 사진을 백범기념관에 소장된 사진 자료에서 찾아냈다고 말했다.



이 때 수습된 백 의사 유해는 같은 해 6월15일 부산항을 통해 귀환한 뒤 같은달 6월30일 효창원에 안장됐다.

▲ 윤봉길,이봉창과 함께 3의사 중 한명으로 꼽히는 백정기 의사 유해 발굴 사진./연합



전북 정읍 출신인 백정기는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독립투쟁을 전개했으며, 아나키스트로 활약하기도 했다. 1924년에는 일본 도쿄에 잠입해 수력발전소 폭파를 시도하기도 했으며 1931년에는 BTP라는 흑색공포단(테러조직)을 조직하기도 했다.



1933년에는 주중 일본대사 아리요시(有吉明)가 중국 상하이 홍커우의 육삼정(六三亭)이라는 일본 음식점에서 일본 정객 등 100여 명과 연회를 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곳을 습격, 아리요시 폭사를 시도하다 붙잡혔다.



일본 나가사키현 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언도된 백정기는 수감 생활 2년만인 이듬해 6월5일 지병인 폐병으로 숨졌으며 유해는 이곳에 안장됐다.



1963년 대한민국정부는 백정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선일보/사회 : 2003.05.12)

[2004大入 1학기 수시] 대학별 논술 기출문제 분석



지난해 1학기 수시 모집의 각 대학 문제를 살펴보면 경희대의 경우 타임지에 실린 월드컵 관련 영문 기사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서 발췌한 두 글을 제시하고 그 내용을 통해 민족주의와 세계 평화의 관계, 여기에 월드컵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











■(조선일보/지역 : 2003.05.09)

[호남] 뉴스 브리핑



광주전남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의회 고문인 ㈜삼면 고영두 회장이 백범 김구 정신계승 사업 기금으로 1000만원을 기탁했다. 작년 1월에도 500만원의 기금을 기탁한 바 있다. 첫째도, 둘재도, 셋째도 근면해야 한다며 아호를 ‘삼면(三勉)’으로 칭한 고 회장은 그동안 한·중(韓·中)공동 항일투쟁 특별기획전, 백범 겨레사랑 백일장, 백범 김구의 나의 소원전, 백범 역사기행, 강연회 등의 협의회의 각종 사업에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광주시 농업기술센터는 도시민 농사체험을 위해 채소 및 분화를 분양한다. 12일까지 선착순 500명의 신청을 받아 5월28일~6월1일 분양한다. 가구당 지원내용은 분화 3종 4개(싱고니움·아이비·임파첸스), 쌈채소 3종 12개(적상추·시저스·치커리), 저면관수 매직배드 1개, 플라워박스 3개 등이다.



전북도는 9일 문화재위원회를 열고 남원시 견두산 마애여래입상과 임실 관곡서원 고문서, 순창 석산리 마애여래좌상 등 3건을 도 문화재로 지정했다. 이로써 전북도 문화재는 국가지정 176건을 포함, 모두 699건으로 늘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 솔내 - 소식 감사합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