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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의 주변인물들(23) 박항=춘천박씨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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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10-01 17:52 조회1,5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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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朴恒)
1227(고종 14)∼1281(충렬왕 7). 고려 후기의 문신. 춘천박씨의 시조.

초명은 동보(東甫), 자는 혁지(革之).


원래 총혜(聰慧)하고 수염이 아름다웠다 한다. 고종 때 과거에 급제, 몽고군이

침입하여 춘천을 함락할 때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몽고군에 포로가 되어

연경(燕京)에 있는 것을 두번이나 구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림원에 보직되었다가 충주 지방관이 되어 치적이 있었으므로 우정언

(右正言)에 임명되었고, 경상도와 전라도를 안찰(按察)하여 치적에 명성이

있었다.


1269년(원종 10) 우사간(右司諫)으로 몽고에 가서 원종이 몽고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렸으며, 이듬해 하정사(賀正使)로 몽고에 다녀왔다. 충렬왕초에

승선(承宣)이 되어 전주(銓注:人事行政)를 관장하였는데, 그동안 정방(政房)

에서 전주를 행할 때 집에 나가 잤으므로 인사를 청탁하는 자가 문전을

메웠으나 그가 처음으로 전주를 마치고 금중(禁中)을 나옴으로써

그 폐단을 없애었다.


1277년(충렬왕 3)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으며, 그해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왔다.


1278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가 되었고, 그해 왕과 공주를 수행하여

원나라에 갔다가 참문학사(參文學事)가 되었다. 김주정(金周鼎)·염승익

(廉承益)·이지저(李之#저17) 등과 함께 필도치(必#도62赤)가 되어 금중에서

 기무(機務) 처리에 참여하였고, 그해 또 왕을 수행하여 원나라에 갔다.


1279년 찬성사(贊成事)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진사(進士)를 취하였다.

원나라의 세조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전함·군량·기장(器仗)을 징발할 때

 원나라의 원수 흔도(#흔05都), 우승(右丞) 홍다구(洪茶丘) 등이 와서 이를

감독함에 횡포가 심하므로 왕으로 하여금 원나라 세조에게 장계(狀啓)를

보내게 하여 왕을 좌승상행중서성사(左丞相行中書省事)에, 김방경(金方慶)

을 정동도원수(征東都元帥)에 임명하게 하여 흔도와 홍다구의 횡포를

견제하게 하였다.


제2차일본정벌 때 고려의 전쟁물자의 공급책과 군기(軍機)의 조치가 그

에게서 나왔다. 문장을 잘하고 마음이 너그러워 사람들을 잘 접대하고

부지런히 봉공(奉公)하여 이치(吏治)에 뛰어났으나, 고집이 강하여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 김주회 -
▣ 김윤만 -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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