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충렬공의 주변인물들(27)이존비(李尊庇)

페이지 정보

솔내영환 작성일03-10-06 18:47 조회1,678회 댓글0건

본문

이존비(李尊庇)


1233(고종 20)∼1287(충렬왕 13). 고려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초명은 인성(仁成), 자는 지정(持正). 부인은 좌복야 한림학사(左僕射翰林學士) 이주일(李湊一)의 딸이며, 아들은 우(瑀)·정(精)·숙(璹)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외삼촌 백문절(白文節)에게 글을 배워 문장과 예서(隷書)에 능하였으며, 유경(柳璥)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유학에 밝았다.
1260년(원종 1)과거에 급제한 이후 내시(內侍)에 입적되었으며, 이어 비서교서랑(秘書校書郎)·권지합문지후(權知閤門祗候)·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 호부(戶部)·병부(兵部)·이부(吏部)의 시랑을 역임하고 1275년(충렬왕 1) 상서우승(尙書右丞)·예빈경(禮賓卿)을 거쳐 좌승지에 올랐으며, 이때 필도지(必#도62赤)의 일원이 되었다.
1279년 밀직부사로서 장군 정인경(鄭仁卿)과 함께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원나라에 사행하였으며, 이듬해 지밀직사사·세자원빈(世子元賓)에 오르고, 1282년 지공거(知貢擧)를 역임하였다.
1284년 감찰대부(監察大夫), 1287년에는 경상도·충청도·전라도의 도순문사가 되어 여몽군(麗蒙軍)의 일본정벌을 위한 병량(兵糧) 및 군선(軍船)의 조달을 담당하였는데 제반조치가 적의하여 민원을 사지 않았다.
그뒤 벼슬이 판밀직사사에 이르러 죽자, 그의 죽음에 대하여 특히 세자가 울면서 심히 애석해하였다고 한다.
묘지명이 현재 전하며 회당화상(晦堂和尙)에게 보낸 칠언율시가 《동문선》에 실려 있다.
 




▣ 김주회 -
▣ 김윤만 -
▣ 김재원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