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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아들 태완에게 들려주는 할아버지 이야기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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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10-09 18:02 조회1,5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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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서 아빠는 아빠가 뵙지 못한 우리집안 어른들의 이야기, 특히 너의 증조부이신 아빠의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를 알게 되었단다.



너의 증조부는 20세기 초에 이미 일본유학을 하신 일찍 개화된 분이셨다. 불우한 시대를 타고 나서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 있을 때 시골에 파묻혀 농사를 지으셨지만 자식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모든 힘을 아끼지 않은 분이셨다.



자식들을 모두 서울로 보내 좋은 학교의 최고 교육을 받게 하시고 일찍부터 집안에서 아들딸 구별을 없애 모두 고모할머니들까지 미국유학을 하게 되신 것이다.



또 아빠는 할아버지로부터 한국전쟁의 슬픈 얘기도 듣게 되었단다. 할아버지가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세 형을 전쟁에서 잃으신 일, 부산으로 피란가서 살던 일 등을 들으면서 우리가족과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연결하여 이해하게 되었단다.









아빠가 나이를 더 먹고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할아버지와의 대화도 그 폭과 깊이가 더해 갔단다.



아빠가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우리의 대화는 경제적인 또는 정치적인 문제를 많이 다루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하고 계시던 경제계획의 내용과 그 정치적인 연관성에 대한 토론을 많이 하셨다.



1970년대에 닥친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적 타격과 국제적인 경제 연관성, 또 오일 대체 에너지원인 원자력이나 태양열에 대한 얘기도 많이 했지.



또 인구의 증가에 따르는 자원의 배분과 경제성장의 한계와 그 대처방안 등, 할아버지는 무슨 주제에 관해서도 무궁무진하게 아시는 게 많고 얘기를 재미있게 하시는 분이셨다.



그것은 할아버지는 누구보다도 독서량이 많은 분이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빠에게도 읽은 것을 많이 내주셨지. 아빠가 고등학교 때부터 영국의 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를 많이 읽은 것도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위한 숙제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또 역사에 관한 얘기도 많이 했다. 할아버지의 첫 번째 석사학위 논문도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식민 경제정책에 관한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경제학 석,박사학위 외에도 국제정치학, 통계학에 석사학위를 받으셨다.)



우리는 20세기에 들어 와서 아시아의 여러나라들의 독립을 위한 투쟁, 특히 인도의 간디의 독립운동이나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 등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다.









할아버지는 아주 복잡하게 보이는 일을 간결하고 확실하게 정리하여 설명하시는 남다른 재주를 가지셨다. 항상 추상적이고 애매한 개념을 구체적이고 특정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하시고



또 아빠가 상투적인 구호나 선전 때문에 잘못 알고 있는 문제를 지적해 주시고 올바르고 명확한 용어의 개념을 통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를 확인하셨다.









아빠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 영자신문반에서 활동을 했단다. 한번은 아빠가 논설을 쓰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때가 마침 월남이 패망한 후 몇 년 안되는 패전 기념일이었단다.



그래서 아빠는 월남이 망한 이유를 국민들의 민주의식 부족과 정치적인 분열로 인한 사기저하를 들었고, 공산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면 무엇보다도 국민들에게 제도적인 교육기회를 확대함으로써 정신무장을 해야한다는 단순한 결론으로 꿰어 맞추었단다.



아빠는 할아버지께 한번 읽어 보시고 틀린 곳이 있으면 고쳐 주시라고 보여 드렸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읽어 보시더니 상당히 심각한 어조로 아빠의 애매모호한 용어의 개념과 그것들에 기초한 논리, 또 논리의 비약 등에 대해 조목 조목 지적해 주셨다.



그날도 할아버지는 일거리를 잔뜩 가져 오셨지만 그건 다 제쳐 놓으시고 새벽까지 아빠가 쓴 글을 가지고 우리는 토론을 했다.













▣ 김항용 - 가정 교육 방법의 모범을 봅니다.

▣ 김영윤 -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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