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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폭파사건 20주년 - 잊혀진 유족들의 삶 (월간조선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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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10-11 21:01 조회1,5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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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조선 (2003년 10월호)



오늘은 아웅산 폭파사건 20주년 - 잊혀진 유족들의 삶

---秋 明 熙 자유기고가



金大中 정부 출범 후 관심 밖의 일



10월9일 한글날마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사람들이 있다. 묘비를 끌어 안고 우는 사람도 있고, 말없이 손으로 쓰다듬는 사람도 있다. 나이가 지긋한 장년의 여자들 곁에 아들, 딸이 동행하는 게 이들의 특징이다. 이들은 다름아닌 아웅산 폭탄테러 유가족들이다.

아웅산 폭탄테러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지금은 기억이 아련하지만 1983년 사건 당시에는 국민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한글날 휴일인 1983년 10월9일 낮 12시58분(버마 현지 시간 오전 10시28분) 全斗煥 대통령의 서남아시아 순방 첫 기착지인 버마(現 미얀마) 아웅산 묘소에서 북한에서 파견된 테러단에 의한 폭발사건이 일어났다. 이 폭발로 全斗煥 대통령을 수행해 버마를 방문했던 徐錫俊(서석준) 부총리, 李範錫(이범석) 외무장관, 咸秉春(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등 국무위원을 포함한 공식 수행원 17명이 목숨을 잃고 15명이 부상을 당했다. 폭발은 全대통령을 겨냥한 북한의 테러인 것으로 밝혀졌고 全대통령은 묘소 도착이 늦어 목숨을 건졌다. 아웅산 국립묘지는 버마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과 그의 막료 8명이 묻혀 있는 버마의 성역이었다.



테러를 자행한 범인은 북한의 진모 소좌(소령)와 신기철?강민철 대위 등 3명이었다. 이 가운데 신대위는 달아나다가 사살되었고 체포된 진소좌는 사형에 처해졌다. 테러 사실을 자백한 강대위는 원래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강대위는 현재까지 주로 정치관련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미얀마의 인세인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사건 당시 28세였던 강대위는 이제 48세의 중년이 되었다. 북한에 돌아가면 영웅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강대위의 바람과 달리 북한은 아직까지도 아웅산 폭발테러를 남한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며, 한국 정부는 물론 유가족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아웅산 폭발 테러는 10주년까지만 해도 언론에 자주 보도가 되었지만 金大中, 盧武鉉 정부에 들어서는 관심 밖의 일이 되었다. 20년이 흐른 지금 사건과 함께 아웅산 유가족들도 잊혀진 존재가 되고 있다. 유가족 대부분은 신앙생활로 마음을 다잡으며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공식적인 정기 모임은 없고 유가족 중에 경조사가 있거나 특별히 협의할 사항이 있을 시 1년에 한두 번 정도 모인다.









徐錫俊 부총리의 미망인 兪水敬(유수경?63)씨는 국민大 조형대학 의상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1988년부터 세종연구소 이사로 재직하면서 유가족들과 연구소 간의 협의사항을 조절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兪교수는 처음엔 『할 말이 없다,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정중히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兪교수는 1995년 삼풍 사건으로 장녀 이영씨를 잃는 슬픔까지 겪었다. 주변 유가족들은 兪교수가 『고통을 속으로 삭이면서 꿋꿋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강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兪교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우리의 아픈 과거를 너무 모르는 채 親北 성향을 갖고 있어서 걱정이 된다』며 『6?25 전쟁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겪었던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되는데 이제는 정부마저 방관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兪교수는 요즘 「아웅산 폭발 테러 20週忌 추모행사」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를 놓고 유가족 전체의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1993년 10週忌 때는 외무부 주관으로 300여 유족과 全斗煥 前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묘지 현충관에서 추모식을 했다. 이후로는 공식적으로 추모식을 한 적이 없으며 15週忌 때는 유가족들이 자체적으로 공식 추모식을 거부했다.



兪교수는 『20週忌 추모행사는 공식적으로 해야겠지만 유가족인 우리가 요구해서 하는 것은 너무 싫기 때문에 그 문제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20週忌 행사를 성대하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작게라도 국민들이 그 사건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유가족들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관료들이 국가를 위해 일하다가 순국한 건데 그걸 국가가 기억하지 않으면 누가 기억 합니까』



兪교수는 기자를 쳐다보며 담담히 말했다.



지난 9월9일 유가족들은 모임을 갖고 20週忌 추모식 관련 회의를 했다. 10週忌를 제외하고는 해마다 유가족들이 각자 조용하게 추모식을 지냈지만 올해는 20週忌로 매듭을 짓고 가는 週忌이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외교통상부에 공식 추모행사를 요청할 것인지, 예년처럼 자체적으로 조용하게 넘어갈 것인지에 대해서 각자 의견을 나누었다. 『공식행사를 요청하자』는 쪽보다는 『지금까지 조용히 살았는데 그냥 지나가자』는 쪽이 더 많았다고 한다.





외교부 『특별한 행사 계획 없다』



兪교수는 『20週忌 추모식을 유가족인 우리가 요구를 해가면서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정말 자존심이 너무 상하고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그는 『유가족 중 누구보다 강력하게 「요청하지 말자」고 주장 한 나였지만 이런 현실이 마음이 아프고 서운한 것은 매한가지』라며 『공식행사를 요청하자고 하는 사람들이나 하지 말자고 하는 사람들이나 어차피 마음은 다 같은 것』이라고 전했다.



이 날 모임에서 「정부주관 공식 추모식 요청」과 관련한 유가족들의 공동입장은 결정되지 못했고 兪교수가 대표로 외교통상부의 주관 부서와 협의해서 결정하기로 결론이 났다.



같은 날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필자와의 통화에서 『아웅산 20週忌와 관련해 예년과 비교해 특별한 행사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에서는 매년 10월9일 오전 8시에 실?국장 이상 간부들이 국립묘지 아웅산 순국자 묘역에 가서 참배하고 오는 것이 의식의 전부다.



1983년 아웅산 폭발 테러 사건 후 全斗煥 前 대통령은 아웅산 테러 순국자들의 유지를 받들고 유가족들의 생활을 도울 목적으로 「日海재단」을 세웠다. 5共 청산과 맞물리는 정치적 우여곡절 끝에 日海재단은 현재의 「세종재단」으로 바뀌었고 목적과 성격도 달라졌지만 아웅산 유가족에 대한 지원은 계속하고 있다.



세종재단 산하에는 「세종연구소」와 「아웅산 유가족 지원 사업팀」이 있으며 「유가족지원 사업팀」에서는 유가족이 사망할 때까지 年金을 지급하며 자녀들의 국내 대학원 및 해외 유학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 年金은 순국 당시의 급여를 기준으로 차등 지급하는데, 매년 소비자 물가 상승률에 맞추어 인상해 오고 있다. 장관급 유가족의 경우 현재 월 200만원 가량의 연금이 지급된다.





『정권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일한 분들인데…』



세종재단 산하 「유가족 지원사업팀」에서는 매년 10월9일이면 아웅산 유가족들에게 화환을 보내고 관계자들이 묘역에 참배한다. 팀장 김진국씨는 『올해 20週忌를 맞아 우리 쪽에서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싶지만 유족들은 민간단체인 우리가 하는 것보다는 정부가 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金팀장은 『10週忌 때도 외무부 주관으로 했지만 비용은 세종재단에서 지불했다』며 『이번에도 정부차원에서 20週忌 공식 추모행사를 한다면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만약 만약 외교통상부에서 못하겠다고 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 볼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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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在益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의 미망인 이순자씨는 숙명여대 명예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고 있다.



李교수는 『가족들에게는 인생이 달라지는 계기였지만, 사람들은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너무 빨리 잊는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는 특히 『최근의 對北관련 정부의 정책과 사람들의 의식을 보면 나라가 어디로 갈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李교수는 2000년 6월 남북 頂上회담 때 全세계 언론이 아웅산 테러를 지시한 金正日에 대해 「인간적이고 자상하고 정중하고 겸손한 사람」이란 표현한 데 분노했다. 李교수는 月刊朝鮮에 기고한 글(2000년 7월호)에서 「그렇다면 내 남편을 포함한 열일곱 분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은 가짜 金正日에 의해 이루어진 사건이냐」고 반문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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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斗煥 前 대통령의 한 측근은 『全 前 대통령은 해마다 이맘 때면 아웅산 폭발 테러 사건을 상기하며 「내 처지가 이렇다 보니 챙겨 주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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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範錫 외무부 장관의 미망인 李貞淑씨는 2001년 金正日의 답방 소문이 보도되자 아웅산 유가족 대표로 「진정서」를 썼다. KAL 858 사건 유가족들이 金正日을 상대로 고발장을 내었을 무렵이다. 아웅산 유가족들 사이에서도 『李여사가 작성한 「진정서」를 언론에 미리 발표를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金正日이 당초 약속대로 방한을 하지 않는 바람에 이 진정서는 李여사의 서랍 속에 묻히고 말았다.



李씨는 필자에게 진정서를 건네며 『여기에 나를 비롯한 우리 유가족 모두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李여사는 『우리라고 북한과의 통일을 안 원하고 화해를 안 원하겠냐』며 『남편이 그걸 위해 일하다 목숨을 바쳤는데… 하지만 순서가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남편은 그 때 나에게 敵을 알아야 화해도 하고 교섭도 한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정부도 그렇고 젊은 세대들도 북한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어차피 먹고 남는 식량을 북한에 지원하고 돕는 것은 좋지만 그보다 먼저 북한을 제대로 아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예요』



李씨는 『지금처럼 우리가 끌려 다녀서는 진정한 화해도 통일도 요원하기만 하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金正日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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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한이 하늘에 사무치는 통한의 세월을 살아왔다



김정일 방한에 즈음한 성명서



북한의 악랄한 테러행위로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공식 수행원 17명의 유가족의 충격과 슬픔은 도저히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원한이 하늘에 사무치는 통한의 세월을 살아왔다.



이제 많은 세월이 흘러 동서냉전이 풀리고 끝까지 냉랭하던 북한조차 화해의 명분을 앞세워 남북간의 왕래가 이루어짐에 있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반대할 뜻은 조금도 없다.



희생자 17명은 당시 대한민국 정부의 요인으로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통일을 염원하여 밤낮으로 뛰어다니다가 종내 내 몸마저 희생시킨 애국자들이었다.



진정한 남북화해를 위해서는 먼저 서로간의 불신을 씻고 신뢰를 구축해야 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 우리는 과연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만으로 테러국이 우방이 되었다고 신뢰하고 환영할 수 있을 것인가?



수많은 사람을 테러에 의하여 살해한 金위원장이 이제 아무런 사과의 말도 없이 방한한다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철면피적인 오만한 태도이지 이것을 화해의 뜻이 담긴 방문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진정 남북간의 화해와 민족의 평화를 원한다면 방한에 앞서 과거의 엄청난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받기 위해서 먼저 아웅산 사건 등의 테러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나오는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뿐 아니라 앞으로 그가 진정 화해와 평화를 원한다는 것은 실천으로 보여야만 대한민국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전 세계에 테러국의 오명을 조금이라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웅산 테러사건 희생자 17명의 유가족 일동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아픈 가슴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삼키며 남편과 아버지들의 염원이자 유지이기도 한 조국통일을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진실된 반성과 사과를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아울러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서도 삼가 한 말씀 건의하는 바이다.



국가를 위해 순국한 순국선열의 충정을 좀더 애국적 견지에서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위해 일했던 것이지 어떤 정권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기에 정권이 바뀌었다고 무관심해진다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덮어버리는 일이다.

그런고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과도 정부 차원에서 다루어 주기를 바란다.



이 정도의 조치마저도 없다면 대한민국을 위해 충성을 하고 목숨 바쳐 일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시 한번 깊은 배려가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2001년

아웅산 희생자 17명의 유가족 일동.









▣ 솔내영환 -

▣ 김윤만 -

▣ 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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