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기언(眉叟記言)-허목(許穆)의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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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3-10-12 01:13 조회1,496회 댓글0건본문
조선 중기의 학자 허목(許穆:1595∼1682)의 문집인 미수기언(眉叟記言)을 보다보니 우리문중의 출가한 할머니들의 기록이 있어 옮겨봅니다.
이 상국(李相國)의 묘지명(墓誌銘)
공의 휘는 성구(聖求), 자는 자이(子異)이다. 계보는 왕의 종실에서 갈려 나왔으니 태종대왕의 여러 왕자 중에 경녕군 비(敬寧君裶)의 후손이다. 증조는 하동군(河東君) 유(裕), 할아버지는 병조 판서로 영의정에 추증된 희검(希儉)이고, 아버지는 이조 판서로 영의정에 추증된 문간공(文簡公) 수광(睟光)이다. 어머니 안동 김씨는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대섭(大涉)의 딸이고 상락공(上洛公) 방경(方慶)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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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는 양주군치 서쪽 30리 밖 장흥에 있다.
용주(龍洲) 신도비(神道碑)
공의 휘는 경(絅)이요. 자는 일장(日章), 성은 조(趙)씨이며 본관은 한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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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4월(현종10, 1669)에 선영의 북쪽 10리에 있는 녹문산(鹿門山) 북쪽 기슭에 남향으로 장사하였다.
정경부인 김씨는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국초(國初)에 좌정승을 지낸 사형(士衡)의 9세손이며 이조 판서 찬(瓚)의 딸이다. 온순하며 삼가고 근칙해서 말소리가 문밖에 나가지 않았고, 시부모를 섬기매 가정에서 이간시키는 말이 없는 지가 50년이 지났다. 뽐내거나 사치하지 않았고, 공이 현달하여 구경(九卿)의 지위를 넘었어도 여알(女謁)을 행하지 않았고 뇌물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공이 칭찬하기를
“내조(內助)의 법도는 옛사람에 비해 손색이 없다.”
하였다. 부인은 만력12년(선조17, 1584)에 태어나서 효종 원년(1650)에 졸(卒)하니, 향년이 67세였다. 처음에 선영의 곁에 장례하였다가 이때에 이르러 공과 합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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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회 -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이성구의 어머니 안동김씨(김대섭의 딸, 이수광의 배위), 조경의 처 정경부인 김씨(김찬의 딸) 기억하겠습니다.
▣ 김윤만 - 귀한 자료를 또 하나 발굴하셨습니다.
▣ 김은회 - 발용아우님 오랜만입니다.
▣ 솔내영환 -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문온공파 란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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