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물품 관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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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10-19 02:22 조회1,543회 댓글0건본문
코베이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안동오 도자기에는 그림도 그려져 있는데 서봉 김사달 박사의 작품일 수 있습니다.
근역인수에는 우리 선조님 인장 몇점이 게재되어 있고 (항용, 윤식 종친님 게시물 참조),
김태길 박사의 우편봉투 2점도 경매에 나와 있습니다.
구입하지는 않더라도 관람하는 재미 솔솔합니다.
■ 코베이 홈페이지
○근역인수 40,000 0 lt21 ▶03.10.18 21:30
-1968 년 발행 560 여 폐이지
-상태:그런대로 양호하나 처음한두장 상단부분이 약간 못함
○김태길박사에게 보낸 1차보통 무궁화 페어 첩부 1950.6.26일자 시내우편 실체커버 50,000 0 gaoxing ▶03.10.19 21:30
-1950. 6. 26일자 광화문 접수인 6.27일자 서대문 접수인 날인 1차보통 무궁화 페어 첩부 시내 실체커버. 이 커버는 괴뢰군에게 서울이 점령당하기 직전 날에 발송된 커버이며 김태길박사에게 부쳐진 戀書임. 상태는 양호. 경매는 5만원부터 시작합니다.
○김태길 박사에게 보낸 1차보통 이준열사 단첩 22원 미납부족인 날인 시내우편 실체커버 50,000 0 gaoxing ▶03.10.19 21:29
-단기 4283. 3.29 광화문 접수인 동년 3. 30일 서대문 도착인 날인 1차보통 이준 단첩 22원 미납부족인 날인 시내우편 실체커버 .상태는 양호. 경매는 5만원부터 시작합니다.
○ 인간 문화재 안동오 선생의 도자 다수 100,000 0 zzang104 ▶03.10.22 23:20
○ 인간문화재 안동오 선생의 청화백자 고리연적 22,000 6 zzang104 ▶03.10.18 23: 0
-지름 : 9cm 높이 : 2.5cm
■서봉 김사달 박사 일대기 <영광은 햇빛처럼> (1990, 박형규 저, 범우사 간)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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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때 그에게는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다. 1970년대를 전후하여 우리나라에는 도자기 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것은 옛날 우리 조상들이 만들었던 고려청자나 이조백자를 오늘에 재현시키려는 의욕적인 도예가들이 많이 나타나 각자 경쟁적으로 도자기 연구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청자는 1000년의 翡色(비색)이라고 하는 비취색이 생명이다. 그래서 도예가들은 그 빛깔을 다시 재현시키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그리고 이조백자는 그 청아한 백색도 물론 생명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거기에 조화있게 그려넣는 그림이나 글씨에 따라 그 진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씨와 그림이 누구의 것이냐 하는 것이 그 도자기를 누가 제작했느냐 하는 것 이상으로 그 도예 작품의 가치를 좌우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일류 도예가는 반드시 일류 화가(주로 동양화가)나 명필가의 그림이나 글씨를 받아 名品을 제작하려고 한다.
그래서 도자기 붐이 일면서 일류 도예가들이 이름있는 서화가들과 합작해서 작품을 제작, 전시하는 陶書畵展이 성행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때에 당시 이조백자의 대가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安東五씨가 김 박사의 서화를 받아 도서화전을 열 것을 희망해왔다. 김 박사가 어찌 그 호기를 놓칠 리 있겠는가.
그래서 그 해 봄부터 김 박사는 매주 일요일이면 광주에 있는 안동오 씨의 도자기 가마로 나가서 애벌로 구워놓은 각종 도예작품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느라 바쁜 일요일을 보내야 했다. 도예 작품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가마에서 완전히 구워져 나올 때까지는 꽤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각 단계를 거치는 동안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해서 그 도예품이 망쳐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불 온도의 고저 강약과 굽는 시간의 장단에 따라 잘 구워지기도 하고 잘못 구워지기도 하는데, 색감이나 구이의 정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선별 과정에서 조그마한 미련도 없이 파괴해 버리게 마련이다. 그것이 거의 절반 정도나 되기 때문에 쓰고 그리는 작업은 배 이상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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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만 -
▣ 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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