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 김수의 시 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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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3-10-28 03:58 조회1,464회 댓글0건본문
耆老所壽筵詩<?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八十期이近 / 팔십세의 노인은 기이(期 臣頁:百歲)에 가까우니
國成慶壽筵 / 나라에서 수연경사(壽筵慶事) 베풀었네.
人間無此會 / 인간에 이러한 모임 없으리나
天上有群仙 / 천상의 신선(神仙)들에게나 있겠지
少長蘭亭계 / 소장(少長)의 사람은 난정의 계우(禾契 友)들이요
賓朋洛社賢 / 빈붕(賓朋)은 장안에서 모인 제현(諸賢)일세
年年好時節 / 해마다 좋은 시절에
盛事당相傳 / 성사(盛事)가 아마도 영원히 전승하리
이시에 대한 친필서찰은 홈페이지 역대주요인물(김수)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題羅州壁上
吾先五代祖 / 우리 오대(五代)선조(先祖) (諱: 自行)께서
成化二年冬 / 성화2년(明나라年號, 朝鮮世祖十一年) 겨울에
作宰錦城館 / 금성(나주)의 목사(牧使)가 되시고
齊名勃海壟 / 명망은 발해의 롱(壟)과 가지런 하네
何從詢父兄 / 어느 곳에서 선조의 유풍(遺風)을 찾으리오
只自想音容 / 다만 스스로 선조의 음용(音容)을 회상(回想)하네
獨坐高樓夜 / 높은 루대(樓臺)에 외로히 앉은 밤에
沈吟月上峰 / 심음(沈吟)하노라니 달이 봉(峰)에 오르네.
몽촌(夢村) 김수(金 目卒)
김수(金 目卒)[1547 ~ 1615]본관 안동. 자 자앙(子<?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 ). 호 몽촌(夢村). 시호 소의(昭懿). 이황(李滉)의 문인. 1573년(선조 6)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예문관검열을 지냈다. 홍문관교리(校理)로 있을 때, 왕명으로 《십구사략(十九史略)》을 주해(注解)하였다. 직제학, 승지를 거쳐, 1587년 평안도관찰사에서 면직되었으나, 경상도관찰사에 복직되었다. 1591년 정철(鄭澈)의 건저(建儲)문제로 남 ·북 2개파로 갈리자 남인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감사로서 진주에 있다가 동래가 함락되자 밀양 ·가야를 거쳐 거창으로 도망하였다. 이광(李洸) ·윤국형(尹國馨)이 근왕병(勤王兵)을 일으켰을 때 겨우 100여 명을 이끌고 참가하였다. 근왕병이 용인에서 왜군에게 패하자 경상우도로 되돌아가던 중 영남초유사 김성일(金誠一)로부터 패전에 대한 질책을 받았다.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와 불화가 심하였으며, 지방의 백성들로부터 처사가 조급하고 각박할 뿐만 아니라 왜란 초기에 계책을 세워 왜적과 대처하지 못하고 적병을 피하여 전라도로 도망갔다는 비난을 받았다. 1592년 한성부판윤이 되었으며, 중추부지사(知事) ·우참찬(右參贊) ·호조판서를 지낸 뒤 중추부 영사(領事)에 이르렀다. 1613년(광해군 5) 손자 비(秘)가 옥사할 때 탄핵을 받고 삭직되었다. 문집에 《몽촌집》이 있다.
▣ 솔내영환 - ~~~~~~~
▣ 김영윤 -
▣ 김윤만 -
▣ 김윤식 - 태영 아저씨, 연일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 김상석 - 율시 잘 보았습니다.
▣ 김항용 - 홈에 올렸습니다.
▣ 김주회 - 태영 종친님께서 소개해 주시는 자료는 제목만 보아도 솔깃솔깃합니다. 이번에는 무슨 새로운 내용이 있을까 하고요. 덕분에 즐겁게 공부 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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