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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철원부사 확의 만사 - 이안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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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3-10-28 03:37 조회1,8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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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鐵原(확)正卿輓詞 / 철원수령 정경 김확 만사<?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一世生聯甲 / 한 시대에 나란히 태어나



相知六十年 / 서로 안 지 60년이 되었네.



誰言先白首 / 누가 알았으리 먼저 흰머리 되었으되



此日後黃泉 / 이날엔 황천에 늦게 갈줄을



天근公卿貴 / 하늘은 높은 공경에 인색하지만 (근:革斤)



人欽子姪賢 / 사람들은 아들과 조카 현명하다 존경하네.



豊田互愴別 / 풍전에서 서로 슬프게 이별했으되



高誼憶洪川 / 높은 우의 홍천 시절을 기억하네.



<출전: 동악집(東岳集)>



이안눌 [ 李安訥 ]본관 덕수(德水). 자 자민(子敏). 호 동악(東岳). 시호 문혜(文惠). 1599년(선조 32)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형조 ·호조의 좌랑을 역임하고 예조좌랑이 되어 서장관(書狀官)으로 진하사 정광적(鄭光積)과 함께 명나라에 다녀왔다. 안동(安東)부사를 거쳐 1623년 인조반정 때 예조참판이 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일찍이 특진관으로 있다가 조정의 일에 시비를 가려 극언하여 고관들의 미움을 사 사직했다. 청나라 사신이 사문(査問)하러 왔을 때 실언(失言)한 일로 인해 북변으로 귀양갔다. 정묘호란 때 용서받아 왕의 피란처인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가 되었다가 형조참판 ·함경도관찰사를 지내고 1632년(인조 10) 주청부사(奏請副使)로 명나라에 가서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定遠君)의 추존을 허락받아 원종(元宗)이라는 시호를 받아왔다. 그 공으로 예조판서에 오르고 전장(田莊)을 상으로 받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하였다. 죽은 후 청백리에 녹선되고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시문에 뛰어나 이태백(李太白)에 비유되었고, 글씨도 잘 썼다. 문집에 《동악집》이 있다.



 




▣ 솔내영환 - 이런 귀한 글도 있었군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 김윤만 - 부사공(명리) 산소에서 능선을 따라 100M 정도 가면 확 할아버지 산소가 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김윤식 - 태영 아저씨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 김항용 - 귀하 것 보았습니다. 문온공파 란에 올리겠습니다.
▣ 김발용 - 철원부사공 할아버지 묘를 다녀와서, 이 귀한 글을 보니 더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주회 - 연일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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