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백 김장군 묘비 (송시열 찬) 02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3-11-11 16:15 조회1,303회 댓글0건본문
■ 국역 송자대전 9 (1982.9, 민족문화추진회)
p.357
조증요동백(詔贈遼東伯) 김장군(金將軍) 묘비(墓碑)
-----
이윽고 대풍(大風)이 갑자기 일어나 먼지가 사방에 가득해서 포와 화살을 발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적이 곧 힘을 합하여 충돌(衝突)해 들어오니, 우리 군사는 그 자리에서 다 죽었다. 장군이 손에는 활을 들고 허리에는 칼을 차고서 홀로 버드나무 밑에 의지하고 있었는데, 두 졸병이 가지 않고서 한 사람은 기(旗)를 잡고 한 사람은 화살을 받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장군은 화살을 헛되이 쓰지 않고 쏘기만 하면 반드시 둘씩 맞혀 적의 시체가 쌓여 무더기를 이루었으며, 죽인 적들 가운데는 노(虜)의 귀장(貴將)이 많았으나, 노가 적극 비밀에 붙였다.
장군은 무거운 갑옷을 입었으므로, 화살이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집중되었으나 뚫을 수 없었다. 화살이 이미 떨어지자 마침내 칼로 적을 치되 목을 도리고 허리를 쳐서 휙휙 소리와 함께 적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는데, 소리가 흡사 산을 깨뜨리는 듯 하였다. 적과 열 번 싸워서 열 번 소탕하였다. 이보다 앞서 강홍립(姜弘立)이 통역관인 하세국(河世國)을 노진(虜陣)에 보내자 노가 급히 우리 사람을 불렀으니, 그것은 대개 불러서 유인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군이 응하지 않고 크게 홍립을 꾸짖기를,
"당신의 무리는 몸만 아끼고 나라를 저버려 서로 구원하지 않았다."
하였다. 칼도 부러지고 화살도 떨어진 맨주먹이었으나 오히려 더욱 용기를 분발하는데, 한 적이 뒤에서 던지는 창에 의해 장군이 마침내 땅에 엎어져 절명하고 말았으니, 이날이 3월초 4일이었다. 그러나 장군은 칼자루를 혼에 쥔 채 놓지 않고 노기(怒氣)가 등등하니, 적들이 서로 돌아보고는 놀라 눈을 둥그렇게 뜨고 감히 앞으로 나가지 못하였다.
교 유격도 자살하자 홍립과 경서가 이일원 등과 함께 모두 갑옷을 벗고 노추(奴酋)에게 항복하니, 노추가 그들에게 양진에서 죽은 시체를 묻게 하였다. 그런데 장군의 시체만은 썩지 않았고 칼자루는 아직도 그 손아귀 속에 쥐어진 채였다.
⇒다음에 계속
▣ 솔내 -
▣ 김태영 -
▣ 김정중 -
▣ 김항용 -
▣ 김윤만 -
▣ 김은회 -
▣ 김은회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