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충렬공의 주변인물들 (60) 고종시대(2)-팔만대장경

페이지 정보

솔내영환 작성일03-11-26 17:58 조회1,566회 댓글0건

본문

고려 고종의 재위기간은 1213~1259년 입니다.

충렬공께서는 2세~48세의 청장년기에 해당합니다.

이시대의 사건과 인물 사회 문화를 살펴보는 것도 충렬공할아버님의 일생과

할아버님의 면모를 살피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 같아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팔만대장경 조판
▶ 팔만대장경은 고종때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만든 목각판으로 현재 해인사에 보관하고 있어 ‘해인사고려대장경도감각판’이라 한다. 고려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하고, 매수가 8만여 판에 달하고 8만4천 번뇌를 풀어내는 8만4천 법문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 현종대 거란족 침입때 판각한 ‘초조대장경’, 선종대 의천이 이 초조대장경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판각한 ‘속장경’은 부인사에 보관되어 있었다가 몽고침입으로 소실되었다. 이에 최이는 1236년 대장도감을 설치케 하고 다시 한번 대장경을 판각하는 대역사를 시작하였다. 12년만에 팔만대장경을 판각을 완료하게 되었다. 판각작업은 최이의 후원과 개태사의 승통 수기(守其)의 교정을 바탕으로 강화도의 대장도감과 남해와 강화의 분사 대장도감에서 이뤄졌다.

 

선원사지
 선원사(禪源寺)터는 선원면 지산리 산 692의 1번지 일대에 있다. 강도시대의 실권자 최우의 원찰로 한때 그 규모는 웅대했다.
강화천도 후 최우는 대몽항쟁을 위한 국민총화의 일환으로 선원사를 세우게 된다. 강화를 도읍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하기 위해 궁궐 뿐 아니라 고려의 이데올로기 불교와 관련하여 사찰의 건립도 중요했다. 선원사는 당시 송광사와 함께 2대 사찰로 손꼽힐 정도로 중요한 사찰이었고, 이 사찰에는 금으로 만든 불상 500기가 모셔져 있었고 고종이 1246년 여기에 행차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찰이었다.
이 절이 팔만대장경을 새기고 보관하던 간경도감(刊經都監)이 있던 자리가 아니었는가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이 대장경이 어디에서 판각되었는지는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 김태영 - 앞으로 200년후면 수명이 다하여 동판으로 제작 영구보존 한답니다.
▣ 김항용 -
▣ 김윤만 - 하 그렇군요.
▣ 김정중 -
▣ 김주회 - 팔만대장경도 한차례 연구거리 입니다. 상서공(김효인)께서 서하신 (전남 강진)월남사지 진각국사비 건립에 참여했던 몽여, 정안, 최이, 이규보 등이 팔만대장경 제작의 핵심 역할을 한 점, 상서공께서 구양순체를 잘 쓰시고 팔만대장경이 구양순체인 점 등을 고려할때 상서공께서도 팔만대장경 제작에 직간접 역할을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 김은회 -
▣ 김윤식 - 감사합니다.
▣ 김태도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