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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싸이트 자동번역 재정리(충렬공의 상륙과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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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3-12-02 07:13 조회1,6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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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의 아침이 되었다.
안개낀 새벽을 틈타 고려군의 대장 김방경이 지휘하는 상륙부대(고려군약 5000명)가 뱃머리를 사가라강하구의 모모치원에 일제히 저어대었다. 기슭에 가까워지자 선단에서 북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신호로 선두의 배로부터 붉은기를 들어 그것을 신호로 나팔과 고들이 울려퍼졌다. 동시에 종과징 그리고 북이 일제히 아침의 침묵을 찢는듯 하였다. 멀지않은 선함으로 부터 종고를 쳐 울렸기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이미 굉음이 되어 귀를 뚫어 하늘에 메아리 쳐 근처를 진동시켰던 것이다. 이 일련의 동작은 몽고의 전투 개시의 수단이 었지만  일본군은 처음 격는 경험으로  속수무책 이었다.
무사와 말은 많이 놀라  뛰어 넘어 지고, 미친것처럼 날뛰는것 등 진열은 흐트러져 가라앉히는데 혈안이 되어있어 이 틈을 타 고려군은 잇달아 상륙해 왔다. 놀랄만한 작전였다.
이렇게 일본군이 우왕좌왕 하고있을때 고려군은 저항을 만날 것도 없이 상륙을 끝냈던 것이다.
상륙한 고려군은 모모치원으로 부터 추하라, 아카사카 방면으로 전투를 전개하였으며 무방이 인솔하는 선발대와 아카사카 부근에서 고려군과 격렬한 전투가 전개되었다. 아카사카의 땅은 일본,고려 양군의 피로 물들이는 격전장이 돠었다. 김방경휘하의 고려군의 목표는 외교에 관계한 관청의 점거에 있고 그 주력을 하카타에 집중시킨 것 같다  경자휘하의 일본 주력군이 하카타·하코자키 방면에 있어 미노각으로 부터 일몰까지 전투가 계속되었다.  전화(戰火)에 위해서 하코자키 하치만신을 모신 신사 신전은 이전을 해  승속사관이 신위 가마를 받들어  우의 부근에 피난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고려군의 추하라·아카사카 방면의 진출은  일본군을 견제하기 위한 작전이라고 생각되며. 이마즈는 아카사카 방면의 전투지구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고려군의 독립적인 작전으로 보인다.



▣ 감윤만 - 감사!
▣ 김윤식 -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 김주회 - 일본측에서 기록한 자료!!! 충렬공의 일본원정 기록의 객관성과 무게를 더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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