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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왕도(周文王圖)- 김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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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3-12-05 21:24 조회1,4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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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왕(文王)때에 여상(呂尙)이란 이가 있었는데 나이 八十여세에 위수(渭水)에서 낚시질을 하였다. 문왕이 사냥을 가려고 점을 치니 점장이가 말하기를 사냥할 것은 용(龍)도 아니고, 이무기도 아니며, 범(虎)도 아니며, 곰(熊)도 아니고, 왕자(王者)의 보좌(補佐)입니다 하였다. 드디어 사냥 나가 반계(磻溪)에 이르러서 과연 여상을 만나 같이 수레를 타고 돌아와 스승을 삼았다. 일찍이 못을 파다가 썩은 뼈가 나왔는데 명하여 장사(葬事)하게 하니 좌우에서 말하기를 이것은 주인이 없는것입니다. 하니 문왕이 말하기를 천자(天子)는 천하(天下)의 주인이고 제후(諸侯)는 한나라의 주인인데 과인(寡人)은 진실로 뼈의 주인이다. 하고 드디어 장사지내 주었다. 천하(天下)에서 그 말을 듣고 서백(西伯: 문왕의 작호)의 인덕(仁德)은 썩은 뼈에까지 이르렀는데 하물며 산사람이겠는가! 하였다.



그래서 김뉴(金紐)의 시는



(周)나라의 기업(基業)조성 문왕(文王)때 높았으니



삼분한 천하(天下)에서 하나를 차지했네



기산(岐山)까지 감화된 덕화에 봉황이 울었으며



위수에 어린 상서는 보필 얻었도다



천자(天子)의 덕(德)은 영대(靈臺)에서 전파되고



주역(周易)의 이치는 유리(유里)에서 연구했네 (유:착한말할유)



묻지 말라 생민이여 성인 은혜입은 것을



구원의 마른 뼈도 그 은혜 입었다네



김뉴(金紐) 자(字)는 자고(子固), 호는 금헌(琴軒) · 취헌(翠軒) · 쌍계재(雙溪齋)



<원봉(圓峰)유고>에서



이극기(1426∼1491) 문신. 본관은 廣州(광주). 자는 伯溫(백온) . 호는 圓峯(원봉) . 集(집) 의 증손. 之直(지직) 의 손. 1446년(세종 28)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53년(단종 1)     식년문과에 丙科(병과)급제, 직제학, 지제교와 예조, 이조, 공조의 참판, 예문관, 홍문관의 제학을 지냈으며, 同知成均館事동지성균관사) 를 역임하였다. 1471년(성종 2) 성균관대사성과 외직으로 강원도관찰사를 지냈다. 1477년 승정원 우승지를 거쳐 좌승지가 되었고, 1479년 사헌부 대사헌이 되었으며, 이조참판으로 한성부우윤을 겸하였고, 通信使(통신사) 로 日本(일본)에 다녀왔다. 1482년(성종 13) 예조참판 겸 한성부우윤으로 正朝使(정조사) 가 되어 明(명)에 다녀왔다. 1484년 공조참판 겸 동지성균관사가 되었고, 이듬해 가정대부에 올라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全南 靈光(전남 영광) 의 甫村書院(보촌서원) 에 제향되었다.



 




▣ 김항용 -
▣ 김주회 - 이극기의 원봉유고에 김뉴 선조님의 시!!! 기억하겠습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잘 보았습니다.
▣ 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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