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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군(김주)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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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12-18 02:38 조회1,6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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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2003년 송년의 밤 행사시

화산군(김주) 후손 용주 종친님께서 전해 주신 자료 중에

화산군 설화 한편이 있어 이를 타이핑해서 소개해 드립니다.



그리고 지난 4월 여주군 흥천면 귀백리 백양동 답사시

도정공(김공석) 후손 태현 종친님께서 들려주신 내용 중에

역시 화산군 설화가 있어 첨부해 봅니다.



의미가 약간씩 다르므로 다시한번 정리하는 기회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화산군(김주) 께서는



1563년 9월 17일 향년 52세로

연경(燕京) 관사(館舍)에서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명나라 황제가 관과 수의를 특사하여

서장관 李陽元으로 하여금 염습과 호상을 치르게 하였고,



1년 4개월이 지난 1565년 1월, 여주 백양동 선영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화산군(휘澍)와 요령에 관한 설화 (2003. 12, 화산군후손 김용주 제공)



440년전 화산군(휘澍)께서 조선조 명종때 종계변무사로 명나라에 가시었다가 책무를 완수하시고 그곳 연경 옥하관에서 병환을 얻어 52세에 순직하시었다. 명나라 황제께서 관(棺)과 수의를 特賜하여 서장관 李陽諺으로 하여금 염습과 護喪을 치르게 하였다.



공의 장례시 서장관 지시에 의하여 喪輿앞에 搖鈴(작은 종)이 있어야 魂이 따라가는 護喪이 된다 하여 연경, 만주를 지나 요령을 흔들며 압록강을 건너

경기 광주 넋고개(지금의 동원대학 정문 앞) 밑에 상여를 쉬었다가 가려고 하는데 인부가 요령을 흔들지 않자 상여가 움직이지 않아 이상히 여겨 다시 요령을 흔들자 상여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넋고개는 화산군의 혼백이 머물다 갔다 하여 넋고개라 불리기 시작하였으며, 이때부터 상여를 모실 때 요령을 사용하는 풍습이 생겼다 하며 넋고개를 넘고 백고개를 넘어 억억다리 (지금의 하다리와 귀백리를 잇는 다리이다. 이 다리는 세종대왕께서 승하하셨을 때 영릉으로 모셔가기 위하여 돌로 만든 다리라 한다.)을 건너 귀백리 先塋에 모셨다.



그후 몇 년이 지난후 어느 장군이 화산군(휘澍)의 묘 앞길로 말을 타고 지나가는데 갑자기 말이 움직이지 못하여 옆을 보니 묘가 있어 가보고 화산군의 묘임을 알고 말의 목을 베어 상석에 올려 놓고 예를 올린 후 지나갔다고 한다.

말의 목을 올려 놓았던 상석은 지금도 묘앞 제전 좌측 옆에 흑에 반쯤 묻혀 있다. 상석에는 지금도 그때 말의 피자욱이 있다고 한다.



*** 이 이야기는 여주군 흥천면 일대와 우리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이다.







■ 화산군(김주) 묘역 전설 (2003. 4, 도정공후손 김태현 제공)

전설1

화산군(휘주) 할아버지는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돌아가셨는데, 사후 20년만에 고국 조선으로 운구되어 돌아 오셨다고 한다. 운구가 두만강에 건너 쉴때는 상여 앞에서 치는 요령이 멈추고, 다시 움직일때는 요령이 울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요령을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까지 조선에서는 장례 행렬에 요령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설2

옛날에는 이곳 화산군 묘역 앞 도로를 지나갈 때 담배를 피면 입이 달라 붙어서 담배를 피울 수 없었고, 말을 탄 채로 지나가면 말굽이 땅에 들어붙어서 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정시대 때 일본놈이 말을 타고 이 묘역 앞을 지나가는데 말굽이 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자 말 다리를 그 자리에서 잘라서 화산군 상석에 문지르니 이후부터는 이러한 현상이 없어졌다고 한다. 혼령과 말의 피는 상극이라고 한다. 이때의 상석은 묘역 주변 어디에 묻어 버렸다고 한다.







■ 화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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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3년(명종18년 계해) 제학으로 있을 때 종계변무사(宗系辨誣使)로 명나라 북경(北京)에 가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아버지가 이인임(李仁任)이 아닌 이자춘(李子春)이라는 것을 끝까지 주장하다가 1563년 9월 17일 향년 52세로 연경(燕京) 관사(館舍)에서 병으로 죽었다. 명나라 황제가 관의 수의를 특사하여 서장관 李陽元으로 하여금 염습과 호상을 치르게 하였다.



○ 1565년(명종20, 을축, 가정44)---1월, 여주 백양동 선영에 장사 지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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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영 - 장례행렬에 요령을 사용한것이 화산군 할아버지 장례때 부터... 설화 흥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 김윤식 -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 김윤만 - 넋고개 전설. 잘 알게 되었습니다.

▣ 김항용 - 요령 전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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