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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湖西士林과 우리가문 23끝 ---간재 전우의 문하 용암 김사우(=김시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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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12-20 17:37 조회1,8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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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마지막 성리학자로도 불리는 임헌회 문하에 간재 전우(1841-1922)가 있고, 간재 문하에 김사우(일명 김시묵, 1857-1907) 선조님이 계십니다. 유고집으로 [勇菴遺稿] 3권이 전하고 있습니다.





김사우(金思禹, 1857-1907) 일명 김시묵(金時默)



◇金思禹 <오창지>

한학자이며, 본관은 안동, 자는 仁父, 호는 勇菴, 청원군 오창면 주성리 출생으로 金好壁의 맏아들이다. ★艮齋(간재)의 문하에서 수학한 한학자로 학행이 뛰어났으며 향리에서 후학들에게 한문을 가르쳤다. 유고집으로 용암집 3권이 있다. 묘소는 청원군 오창면 주성리에 있으며 1987년 吳鼎煥이 짓고 재종손 金英會가 세운 묘갈이 있다.



◇ 김시묵 (金時默) <충청북도인물지 (1987)>

조선말기의 학자로 호는 용암(勇菴), 돈녕 복원(復元)의 현손인데 ★전간제(田艮齊)의 고제로 성리학에 밝고 문장에 뛰어나며 효우독행이 출중하였다. 유고에 사장(祠章) 2권, 성리설문답(性理說問答) 3권, 경증(經證) 1권, 비문(碑文) 1권 등 7권이 전한다. 성리학에서는 선사 간재를 뛰어 넘는다고 한다. 문헌 청주시지



◇金思禹 <청주를 노래한 한시 淸州吟 (임동철, 청주문화원 1998)>

(1856-1907) 한학자, 본관은 안동, 자는 仁父, 호는 勇菴. 청원군 오창면 주성리 인곡마을 출생으로 金好壁의 맏아들이다. 艮齋(간재) ★田遇(전우) 문하에서 수학한 한학자로 학행이 뛰어났으며 향리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유고집으로 [勇菴遺稿] 3권이 있다.





♠전우(田愚) 1841-1922(헌종7-?)

본관 담양(潭陽) 자 자명(子明) 호 구산(臼山)/추담(秋潭)/간재(艮齋) 다른 이름 전경륜(田慶倫)/전경길(田慶吉)

어려서부터 학문이 뛰어나, 14세 때에는 아버지를 따라 서울 정동·삼청동·순화동(順化洞) 등에서 살았는데, 이때부터 ★임헌회(任憲晦)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21세 때에는 ★임헌회를 직접 ▲아산의 신양(新陽)으로 찾아가 사제의 의를 맺었다.

★임헌회가 죽을 때까지 ▲아산·▲전의·▲연기·▲진천·▲상주·▲문천 등지에 따라 살면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후학들을 가르치는 한편, 《안자편 顔子篇》·《오현수언 五賢粹言》·《연원정종 淵源正宗》 등을 편찬하여 많은 학문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 용암유고(勇庵遺稿)

조선말기의 학자 김사우(金思禹, 1857-1907)의 시문집. 7권 3책 활자본. 저자의 본관은 안동. 자는 인부(仁父), 호는 용암(勇庵). 아버지는 선공감역 호벽(好璧)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로 호준(浩準)의 딸이다.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체결 이후 통분을 금하지 못하고 병으로 죽었다. 효학(孝學)을 겸비한 학자로서 당시 학계에 명망이 높았다.

이책은 1984년 손자 덕회(德會), 명회(明會)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서문과 발문 모두 김세기(金世基)가 썼다.

권1-3은 서(書) 202편, 권4는 잡저 64편, 권5-6은 잡지(雜識)로 경설(經說) 7편, 권7은 서(序) 7편, 기(記) 3편, 명(銘) 1편, 발(跋) 1편, 제문 10편, 시 81수, 부록으로 행장, 행장발(行狀跋), 묘갈, 제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書중 상간재선생 (上艮齋先生), 답전선생 (答田先生) 등은 대부분 학문에 관한 토론내용이다. 심성(心性)과 학문, 주기(主氣)와 허령심(虛靈心), 만물일체(萬物一體)와 이기(理氣), 체발(剃髮)과 의리(義理), 달덕(達德)과 이심(理心), 성사심제(性師心弟), 인심과 도심등 성리학 전반에 걸쳐 논의하고 있다.

사문문답(師門問答)은 지각과 마음, 각식(覺識)과 심지(心智), 지각과 성(性), 기정진(奇井鎭)의 견해 등을 다루고 있어 당시 전우학파(田愚學派)의 주기적 처지(主氣的 處地)를 살필 수 있다.

한편, 잡저의 명도식인편설(明道識仁篇說), 생지위성주설(生之謂性註說), 용력어인설(用力於仁說), 대학정심설(大學正心說), 달덕설(達德說), 취정록(就正錄) 등에서는 선현의 학설을 훈고(訓 )하여 이기의 문제를 다루었다.

추담별집부록(秋潭別集附錄)은 전우가 시의(時義)에 대하여 저자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보낸 글들을 모은 것인데, 창의(倡義)와 도학(道學)의 문제를 논변한 내용으로 전우학파의 처세와 갈등을 고찰할 수 있다.

이밖에 잡지에서는 중용과 사서(四書)의 의의를 깊이있게 다루었다. 시 유화양구곡운(遊華陽九曲韻), 덕산구곡(德山九曲), 십이난화(十二蘭畵), 십송화(十松畵) 등은 도학자의 심성수양을 의탁한 내용으로 주목된다. 전북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시열과 우리가문 연재를 일단 마무리합니다.

자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무모하게 시작해서

만족할 만한 연재가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송자대전 국역본을 확보해서

소개하는 기회를 다시한번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 솔내 - 그간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항용 - 그동안 감사합니다. 우리 가문과 송시열과는 정반대로 대립되어 있는줄만 알았는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님을 알았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 김윤식 - 대부님 노고가 크셨습니다. 다음 연재 기대합니다.

▣ 김윤만 -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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