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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고종-11- 몽고의 2차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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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12-27 18:39 조회1,6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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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의 2차침입
23politics2_02_pic01.gif《원사》(元史)에서 고려가 다루가치 72인을 모두 죽였다고 한 기록이 있는 것처럼 이무렵 잔류몽고세력이 타격을 받고 있었다. 고려의 강화천도와 잔류몽고세력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는 이같은 상황에서 살례탑에 의한 몽고의 두 번째 침입이 개시되었다.

살례탑의 몽고군은 고종19년(1232) 8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고려에 대한 정복전쟁에 종사하게 되는데 이 기간동안 몽고군의 구체적 동태와 군사행동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몽고는 1차침입 이후 다루가치의 설치, 부몽분자(附蒙分子:몽고군에 투항한 고려인들)의 영합에 힘입어 북계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힘입어 몽고군은 고려의 서북부 지역을 점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살례탑은 본격적인 군사행동을 유보하면서 강화도에 사람을 보내어 강화정부의 환도와 그 선행조치로서 국왕과 최우의 몽고입조 혹은 출륙문제룰 요구하였다.

23politics2_02_pic02.jpg살례탑의 몽고군이 아직 북계에 주둔하고 있는 동안 이미 몽고군의 일부는 고려의 내륙 깊숙히 내려와 노략질을 서슴지 않았다.
경상도 일대에서 횡행하던 선발대에 뒤이어 적장 살례탑이 주력부대를 이끌고 남하한 시기는 고종19년(1232) 10월경으로, 11월 광주에서 고려군과 접전하였다.
고종19년 2차침입때 살례탑이 이끈 몽고군 본대는 12월 처인성에서 살례탑이 죽음으로 경기이남 지역을 내려가지 못하고 회군하고 말았다. 이때 현종대 거란 침입기 제작된 부인사 소장 초조대장경이 소실되는데, 이것은 몽고의 선발부대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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