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권상하의 한수재집---김공석(안)의 손녀사위 원덕유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3-12-30 09:35 조회1,534회 댓글0건

본문



■ 국역 한수재집 4 (권상하 著, 1997중판, 민족문화추진회)



p.348

원공덕유묘표 (元公德裕墓表)



낙성(洛城) 동쪽 화산(華山) 아래 봉긋한 언덕이 있는데, 여기는 고 독행지사(篤行之士) 원공 공윤(元公 公潤)의 묘가 있는 곳이다.



공의 휘는 ★덕유(德裕)인데, 원주인(原州人)이다.

-----

고 휘 ★상(相)은 통제사(統制使)를 지냈는데 청렴하고 검소하기로 일컬어졌다. 비(女+比) 정부인(貞夫人) 안동김씨(安東金氏)는 참의(參議) ★공석(公奭)의 손녀이며 장사랑(將仕郞) ★훤(暄)의 딸인데, 숭정(崇禎) 병신년 10월 25일에 공을 낳았다.



그런데 공은 늦게 종숙부(從叔父)인 부사용(副司勇) 휘 ★두(枓)의 후사가 되어, 원천군(原川君) 휘 숙(肅+羽)을 조(祖)로, 좌랑(佐郞)인 덕수(德水) 이목(李穆)을 외조(外祖)로 삼았다.



공은 성품이 인자하면서도 굳세고 모가 났는데, 어려서부터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속이거나 숨기는 일이 없었고, 수시로 일에 따라 간언(諫言)을 드렸으므로, 통제공(統制公)이 기특하여 여겨 사랑하였다.



자라서는 외재(畏齋) 상국(相國) ★이단하(李端夏)에게 글을 배웠는데, 외재가 칭찬하기를 "청수(淸秀)하여 속되지 않고 성실하여 거짓이 없다." 고 하였다.

-----



신묘년 5월 29일에 산증(疝症)으로 별세하니, 향년이 56세였다. 공인(恭人) 양씨(梁氏)와 함께 신좌(申坐)의 언덕에 장사지냈는데, 그 동(洞)을 도천(道川)이라 한다. 공인은 본관이 영주(瀛洲, 제주의 별명)로 기묘명현(己卯名賢)인 교리(敎理) 팽손(彭孫)의 현손이고 -----





■ 안동김씨 홈페이지

조선시대 충북지역의 학맥과 학풍 (2002.11.8, 충북학연구소)

우암 송시열의 학맥 학풍과 화양서원 ---김문준 (건양대)

2. 尤庵의 학맥

(2) 門人

송시열은 사계의 문인 가운데 가장 많은 문인을 배출했는데, 이름난 문인으로는 ★권상하(수암), ★김창협(농암), 임영(창계), 이희조(지촌), ★이단하(외재), ★김만중(서포), 박광일(?재), 정호(장암) 등이 있다.





■ 안동김씨 홈페이지

5. 김익량(金翼亮) [1622 ~ 1674](광해14 ~ 현종15)

字:재치(在治) 號 송정(松亭) 孝宗1年(1650) 成均生員이 되고 음사(蔭仕)로 서사동몽교관(筮仕童蒙敎官), 세자사(世子師), 용안현감(龍安縣監), 병마진절제도위(兵馬鎭節制都尉)를 역임하였다.

墓: 파주읍 연풍리산 3번지 오좌 유갈

配: 원주변씨

묘갈명: 일찬선(逸贊善) 영가(永嘉) 김원행(金元行) 撰

현종15년 4월 7일에 호남 관사에서 운명하여 영구(靈柩)가 고향파주까지 六百里길을 올때에 각읍의 목사(牧使)와, 부사(府使)가 곡하며 만사(輓詞)로서 교정(交情)을 표(表)하였다. 외제(畏齊) 문충공(文忠公) ★이단하(李旦夏)가 만사(輓詞)를 썻으며, 운구가 노성(魯城)에 도착하여서는 명제(明齊) 문성공(文成公) 윤증(尹拯)이 크게 통곡하며 만사세의(輓詞世誼)를 썼으며 서울에 도착하니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과 가제(稼齊) 김창업(金昌業)이 장막을 치고 영구(靈柩)에 제문(祭文)을 올렸다.

公은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문인(門人)으로 남인(南人)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면서 소론의 진보세력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외제집(畏齊集)> <노가재집(老稼齋集)>











▣ 김윤만 -

▣ 솔내 -

▣ 김윤식 -

▣ 김항용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