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의 6차침입 ▶ 고종41년(1254) 7월 차라대(車羅大)를 지휘관으로 하는 몽고군이 또다시 침략을 감행하였다. 6년이라는 장기간동안 몽고군은 고려를 침략하였다가 다시 철수하였다가 또 재침략하였다.
▶ 종래 본토 내륙에 대한 공성전(攻城戰)만을 구사하던 몽고군이 적극적으로 해안의 섬을 침공을 시도하는 전략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강도에는 계엄이 선포되었다. 이것은 고려의 해도입보책에 대한 몽고군의 대응이라 할 수 있는데, 차라대가 전라도지역에서 군사행동을 전개하는 동안 그 서해안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시도되었다.
▶ 고종44년(1257) 윤 4월 최항이 죽고 그 아들 최의가 집권하였지만, 여전히 대몽정책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몽고군의 파상적인 공세에 결국 강도정부는 8월초 태자의 입조를 약속하는 입장을 전달하였고, 이러한 화의의 진전에 따라 몽고군의 군사행동이 점차 수그러들었고, 10월에 고려로부터 철수하였다. 그러나 강도정부는 태자입조를 조건으로 위기는 넘겼지만, 이에 대한 이행은 지연되고 있었다. 대신 왕자 안경공 창을 파견하였는데, 이는 몽고를 만족시키지 못하였고, 고종45년(1258) 6월 몽고군의 침략이 다시 감행되었다. 11월부터 고려의 동북면의 방어체계가 와해되는 처지에 직면하자 고종46년(1259) 초부터 태자 입조를 조건으로 하는 몽고군의 철수는 다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해 4월 태자입조가 이루어졌고, 이로써 여ㆍ몽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6월말 대몽전쟁을 줄 곧 경험하였던 고종이 사망하고 7월 원의 헌종 역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