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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의 주변인물들(71)고종-13- 몽고의 4-5차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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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12-31 19:27 조회1,6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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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의 4ㆍ5차침입
23politics2_04_pic01.gif고종25년부터 32년까지 여ㆍ몽 양국은 사신의 교환을 통한 부단한 신경전을 전개하였다. 몽고의 요구는 국왕의 친조, 강도로부터의 출륙, 민가의 호수 파악ㆍ보고였다. 몽고의 고려에 대한 4차침략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정종 즉위 이듬해인 고종 34년(1247)이었다. 몽고군의 원수 아모간(阿母侃)은 개경 및 강화연안까지 밀고 들어와 주둔하여 강도정부를 위협하였다.
경기일대를 휩쓴 고종34년 아모간이 이끄는 몽고군은 8월 이후 충청도를 거쳐 전라도 방면으로 남하, 그곳의 여러 성의 공격하면서 남부지역에까지 이르렀다고 보여진다.
이들은 이듬해 초 고려 사신 파견 및 정종의 죽음을 계기로 철수하게 된다.

고종36년(1249) 강화천도의 주도자였던 최우(이)가 사망하고 고려측이 출륙의 기미가 있자 몽고는 이러한 변화에 기대를 걸고 사신을 파견하여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고 했다.
그러나 후계자 최항은 이전의 대몽정책을 고수ㆍ계승하였다. 강도의 중성(中城)을 새고 구축하고, 팔만대장경을 완성하는 등 대몽고 대항체제를 정비해가고 있었다.

23politics2_04_pic02.gif새로운 원의 황제 현종은 즉위하자마자 고종의 친조와 개경에의 환도를 촉구하는 사신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고종40년(1253) 야굴(也窟)에 의한 몽고의 5차침입이 시작되었다. 몽고는 전쟁과정에서 항복한 고려이민(吏民=부몽분자)를 최대한 활용하였다. 그들로 하여금 향도적 역할 뿐 아니라 고려의 여러 성들에 대한 항복을 유도하거나 고려군의 사기를 꺽었으며 동시에 이들을 식량확보에 이용하는 등의 수법으로 전쟁을 이끌었다.
동주ㆍ충주ㆍ양근성ㆍ천룡성을 함락시키고 남하한 야굴의 몽고군이 충주에 10월경에 당도하고 영남지역으로의 남하를 위한 전초기지를 확보하고자 집중공격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방호별감 김윤후와 충주민들이 성을 사수하여 몽고군의 남하를 저지하였다.
충주성함락 실패로 몽고군 지휘부에 분열이 일어났고, 결국 고종41년 정월 몽고군은 철수하였다.

 



▣ 김태서 -
▣ 김윤만 - 대부님의 보살핌 속에 보람된 한 해를 보냈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
▣ 김주회 - 몽골의 침략 과정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 김윤식 - 올해도 대부님 큰 그늘 덕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새해에도 뜻하시는 일 잘 이루어지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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