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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의 주변인물들(76)원종-4- 원종폐위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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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4-01-08 20:34 조회1,5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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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탐구 - 원종 폐위사건 title_back3.gif title_logo.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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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row3.gif 원종 폐위사건
원종대 집권무인들은 국왕폐위를 고려하였거나 실제로 폐위시켜 당시 사회문제를 야기시켰고 이같은 사실은 집권무인들의 존립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원종9년 3월 개경에 출배도감(出排都監)을 설치하여 출륙준비를 서둘렀다. 개경환도와 출륙준비의 진행이 진행되면 될수록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화되는 무인집권층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김준은 원 사신을 죽이고 먼섬으로 가려하던 그의 계획에 반대한 원종을 폐위하고자 하였지만 실현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원종은
김준임연의 갈등을 교묘히 이용하여 김준을 제거하였다. 김준을 제거하고 난후 원종은 국왕권을 확고히 하고자 하였다.

김준 제거 후 원종은 행정능력이 부족한 임연보다는 국왕 측근세력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였을 것이다. 이에 자신이 소외됨과 동시에 김준처럼 제거되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여 김경ㆍ최은ㆍ최기를 죽이고, 어사대부 장계열, 대장군 기온(원종의 서매부) 등은 귀양보냈다. 이후 그는 삼별초, 6번 도방을 모아놓고 왕의 폐위에 여부를 의논하였다.
국왕의 폐위라는 중대한 현안문제에 직면하여 각 세력간의 대응은 폐위에 찬성하느냐, 폐위가 아닌 손위(遜位)의 방법을 택하느냐, 폐위를 반대하느냐 하는 방향으로 나누어졌다. 폐위를 지지했던 세력들은 임연과 이해관계를 함께 하며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려는 자들이었다. 관료세력들은 절충안으로 손위라는 차선책쪽이었는데, 그들은 정치적으로 임연과의 마찰을 피하면서 국왕폐위로 인한 원의 책임추궁도 피하고자 하였다.

원종이 폐위되고 안경공 창이 왕위에 즉위한 5개월 간 임연은 원에 사신을 보내 그 반응을 탐색하고 조정에서는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고자 하였다.
원 세조는 진상규병과 관련자 색출에 적극적이었다. 이에 임연은 9월 추밀원사 김방경을 보내 원종이 위독하여 부득이 순위하였다고 하는 표문을 올렸으나, 원에서는 믿지 않았다. 11월 원은 진상규명 사절단을 파견하여 원종ㆍ안경공 창ㆍ임연 등이 직접 원으로 올 것을 강요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는 군사적 행동을 하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고려조정에 알려왔다.
원의 이러한 태도에 위기를 느낀 임연은 재추들과 의논하기도 하고 사절단에게 뇌물을 주는 등 애를 써보았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결국 폐위 5개월만에 원종을 복위시킬 수 밖에 없었다.
국왕 폐위와 복위라는 정치적 중대사안은 임연정권의 결정적인 실책이었고, 이로써 임연ㆍ임유무 정권의 종말이 가까워졌던 것이다.




▣ 김윤만 - 연재 잘 읽고 있습니다.
▣ 김항용 -
▣ 김윤식 -
▣ 김태영 -
▣ 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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