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충렬공의 주변인물들(77)원종-5- 임유무의 반란

페이지 정보

솔내영환 작성일04-01-08 20:36 조회1,941회 댓글0건

본문

사건탐구 - 임유무의 반란 title_back3.gif title_logo.gif
title_back4.gif
 

arrow3.gif 임유무의 반란
원종의 개경환도와 출륙 주장은 또다시
임연과 갈등을 유발하였다. 임연도 개경으로 환도하게 되면 원의 내정간섭이 심해질 것이고 그에따라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타격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정권을 잡은지 5개월만에 원종을 폐하고 안경공 창을 왕으로 세웠다. 원에서는 임연의 국왕폐위를 묵인하지 않고 임연, 원종, 안경공 창을 소환하였다.
24event_03_pic01.jpg임연은 원의 이같은 강경자세에 원과의 일전에 대비할 수 밖에 없었다. 각 지역에 야별초를 보내 백성들을 산성과 섬으로 이주시키는 등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1270년 임연은 그만 등창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가 사망하자 원종을 대신해 왕위를 지키고 있었던 순안공 왕종은 임연의 둘째아들 임유무를 교정별감으로 임명하였다.

바로 이무렵 원의 후원을 받은 원종은 복위되어 개경으로 환도하려 하였다. 임유무 또한 개경환도에 반대하여 원종의 개경환도를 막기 위해 야별초를 움직여 경상도 주민들을 섬과 산성으로 이주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안찰사 최간과 동경 부유수 주열 등이 경상도로 온 야별초를 모두 체포함으로써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원에 머물고 있던 원종이 결국 고려에 당도했다는 소식을 접한 임유무는 군사를 이끌고 북으로 도주하였다. 원종의 행렬이 개경에 임박했고 이미 대세는 원종의 복위와 개경환도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홍문계와 송송례가 임유무를 살해하여 100년간 지속되던 무인정권시대는 완전히 종결되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원이라는 외세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 김윤만 -
▣ 김항용 -
▣ 김윤식 -
▣ 김태영 -
▣ 김주회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