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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지금은 ‘깨어져 없어진 비석’...관련 기록 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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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4-01-09 13:19 조회1,6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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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님 올리신 글 잘 보았습니다. 명확하고 논리 정연한 말씀에 매번 놀라기만 합니다.

충렬공 할아버지 묘소와 김해 공 장례 문제는 제1회 여름 캠프 당시 김동식 선생께서 ‘가설이라는 전제하에’ 그렇게 이야기하였으나 그 당시도 석연치 않다는 느낌이 컸습니다.
이 문제는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데, 뭔가 알 듯 말 듯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아직 확증은 하나도 없지만, 혹시 김해 공의 장례 때가 아니라 다른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청도공(휘 예생)과 <선성지>에 기록된 예안현감 김예생이란 분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동일 인물이라고 봅니다.
지난 번 대부님께서 올리신 <경진보(庚辰譜)상의 예생(禮生)>이란 글에서 적으신 것처럼 예안현감 재임 기간이 ‘1492년의 지례현감’과 ‘1515년 이전의 정읍현감’ 사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이 문제는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읍지 등을 살피면서 다른 지역의 현감으로 계셨던 자료를 추적 중입니다. 자료를 더 모아 나머지 기간들을 조합해 보면 확인이 되겠지요.)
예안현감 김예생의 전임자와 후임자는 동시대 인물인 데에다 동일 지역 현감을 지냈으므로 함께 추적해 보면 어떤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음 자료를 보면, 설헌 선생과 설곡 선생은 예안현이 아니라 안동부의 회곡동에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예안현 읍지인 <선성지>가 아니라, 안동부 읍지인 <영가지>에 수록된 거겠지요.

다만 ‘정구’ 공의 안동부사 재임 기간을 고려하면, 대부님께서 가설로 말씀하신 충렬공 묘소 실전 기간을 재고해 볼 필요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충렬공 할아버지 묘소는 문영공(휘 순)께서 고향에 가셔서 묘소를 돌보신 기록 등을 고려할 때 대대로 지극 정성으로 돌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후 비문의 풍화라든가 어떤 사유로 족보에 기록된 것처럼 청도공께서 새 비석을 세우셨을 것이고요.
우리 족보 기록처럼 청도공께서 새 비석을 세우셨다면 그 비문 내용을 찾아내야 하는 새로운 숙제가 생기겠지요.

중요한 문제를 매번 거론해 주시는 대부님 노고에 새삼 감사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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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보의 원본 부분과 보사한 부분
-- 짙은 부분이 원본, 옅은 부분이 보사한 부분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글씨체가 약간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kyung01.jpg

kyung02.jpg

◆설헌, 설곡 선생 관련 자료
회곡촌(檜谷村) - 하계곡(下桂谷) 서쪽 몇 리쯤에 있다. 중앙에 작은 시내가 있는데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들어간다. 외로운 산이 강과 시내가 합치는 곳에 있으니 여기가 충렬공이 정자를 지은 곳이다. 마을 입구에 남쪽으로 향하여 큰 밭이 있는데 유전(流轉)하기를 이는 충렬공의 집터라고 한다. 충렬공은 대대로 여기에 살면서 여러 대에 걸쳐 벼슬하였다. 문극공(文克公) 설헌(雪軒) 정오(鄭䫨)와 대사간(大司諫) 설곡(雪谷) 정포(鄭誧)는 외가이므로 와서 살았다.
- <국역 영가지> 56쪽

◆정구 공의 안동부사 재임 기간
부사(府使) 정구(鄭逑) - 품계는 가선(嘉善)이다. 만력(萬曆) 정미(1607년) 부임하여 같은 해 사임으로 교체되었다.
- <국역 영가지> 399쪽

◆청도공 관련 자료
<예안현감>
통선랑(通善郞) 김예생(金禮生) - 연산군 원년 을묘년(1495년) 8월 부임 무오년(1498년) 6월 체직됨.
- <국역 선성지> 73쪽
◇전임자 : 승훈랑(承訓郞) 노윤리(盧允釐) - 갑인년(1494년) 10월 부임 을묘년(1495년) 7월 체직됨.
◇후임자 : 권휴 - 무오년(1498년) 9월 부임 신유년(1501년) 7월 체직됨.

 




▣ 김항용 - 꼬리를 무는 추론과 확증---잘 읽었습니다.
▣ 솔내 - 계속 이어지는 군요. 감사...
▣ 김태영 - 설곡 정포가 복주 외가에 머물렀을때에 지은 글을 올렸던 것이 생각납니다.
▣ 김주회 - 꼬리를 무는 밑받침 자료!!! 무게가 더해 갑니다.
▣ 김영윤 -
▣ 김윤만 - 정구께서는 1607년 안동부사에 부임하셨으니 실전 묘소를 찾은 이후에 제사를 지내신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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